1등보다 아름다운 꼴찌의 뒷모습

영화 <쿨 러닝>을 2026 동계 올림픽 기념으로 다시 꺼내며

by 잇다

창밖을 보니 겨울바람이 꽤 매섭습니다. 내일이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전 세계의 겨울 축제, 동계올림픽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선수가 0.001초를 단축하기 위해 얼음 위를 질주하겠지요. 세상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영웅을 기다리고, 카메라는 승리자의 환호성을 담기 위해 분주할 것입니다.


화려한 개막을 앞둔 오늘 밤, 저는 조금 낡은 비디오 테이프 같은 영화 한 편을 꺼내 들었습니다.

일 년 내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나라, 눈 이라곤 냉동실 성에밖에 본 적 없는 자메이카 청년들이 얼음판 위를 달렸던 실화, 영화 <쿨 러닝>입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비웃을 때, 맨몸으로 겨울에 부딪혔던 그들의 뜨거운 여름 이야기를 통해,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달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맨땅에 헤딩? 아니, 잔디 위에서 썰매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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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데리스는 100m 달리기 선수였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탈락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서 꿈을 접었겠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는 대신 아무도 가지 않은 다른 길을 찾습니다. 단거리 선수의 폭발적인 힘이 봅슬레이 스타트에 유리하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무작정 팀을 꾸립니다.


하지만 자메이카엔 눈도, 얼음도 없습니다. 그들은 포기하는 대신 바퀴 달린 나무 카트를 만들고, 울퉁불퉁한 잔디 언덕을 구르며 연습합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넘어지면서도 그들은 웃습니다.


우리는 종종 꿈을 꾸기도 전에 조건을 먼저 계산합니다. "난 돈이 없어서", "난 재능이 부족해서",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서..." 수만 가지 핑계로 내 가능성을 불가능이라는 서랍 속에 가둬두곤 하죠.

하지만 이 청년들은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꿈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건 완벽한 환경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 나가는 무모한 열정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조건이 갖춰져야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시작하면 조건은 만들어집니다.







거울을 봐, 우린 스위스 사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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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주눅이 듭니다. 그래서 봅슬레이 최강국인 스위스 선수들을 흉내 내기 시작합니다. 그들처럼 딱딱하게 걷고, 그들처럼 "하나, 둘, 셋!" 독일어 구호를 외치죠.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남의 옷을 입었으니 몸이 굳을 수밖에요. 그때 팀원 중 한 명이 동료들을 붙잡고 말합니다.


"거울을 봐. 우린 스위스 사람이 아니야. 우린 자메이카 사람이라고!"


그들은 비로소 뻣뻣한 구호를 버립니다. 대신 자메이카 특유의 흥겨운 리듬을 타고, 헬멧에 알록달록한 국기를 칠하고, 랩을 하며 썰매에 오릅니다. 가장 그들다울 때 썰매는 기적처럼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혹시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서, 성공한 사람들의 방식을 억지로 따라 하느라 나를 지우고 있지는 않나요? 영화는 말합니다. 최고의 기록은 남을 완벽하게 흉내 낼 때가 아니라, 나만의 호흡과 리듬을 찾았을 때 비로소 나온다는 것을요.








금메달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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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관통하는 명대사는 과거 금메달을 박탈당했던 코치 어브가 제자에게 해주는 말입니다. 꼭 우승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다는 데리스에게 코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금메달이 없어서 불행한 놈은, 금메달을 따도 불행해." (If you're not enough without it, you'll never be enough with it.)


2026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증명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합격만 하면", "연봉이 오르면", "집을 사면" 행복해질 거라 믿으며 현재의 나를 유예합니다. 마치 금메달이 없으면 내 인생은 실패작인 것처럼 스스로를 채찍질하죠.


하지만 코치는 알려줍니다. 금메달은 그저 결과물일 뿐, 그것이 당신의 빈 마음을 채워줄 수는 없다고. 당신은 금메달이 없어도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도, 혹은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진짜 웃을 수 있으니까요.








결승선까지 걸어서 가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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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은 뻔한 승리가 아닙니다. 메달을 목전에 둔 순간, 낡은 썰매의 나사가 풀리며 그들은 거칠게 전복되고 맙니다.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에서 얼음판 위에 내동댕이쳐진 꿈. 하지만 전설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상처 입은 몸을 일으켜 뒤집힌 썰매를 어깨에 메고, 결승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비웃던 관중들은 침묵했고, 이내 경기장엔 1등을 향한 환호보다 더 뜨거운 기립 박수가 쏟아집니다.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진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비록 기록은 실격이었고 등수는 꼴찌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 들어오는 그들의 당당한 표정은 그 어떤 금메달보다 빛났습니다.








속도의 시대, 당신의 완주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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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시작될 올림픽, 우리는 또 0.01초 차이로 갈리는 승패에 환호하고 탄식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번 올림픽을,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빠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빨리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믿고, 넘어진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는 냉정한 트랙 위를 달리고 있죠. 그래서 자주 불안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숨이 찹니다.


그럴 때마다 <쿨 러닝>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주세요. 중요한 건 썰매를 타고 얼마나 빨리 내려왔느냐가 아닙니다. 썰매가 뒤집히고 남들이 다 앞서가더라도, 무거운 썰매를 어깨에 짊어지고 내 두 발로 결승선까지 걸어가는 그 태도입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폼이 좀 엉성하면 어떤가요. 결과가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당신의 길을 완주해낸 당신의 땀방울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인생이라는 올림픽, 포기하지 않고 걷고 있는 당신은 이미 금메달입니다.









� 잇다의 질문 (Q)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걸어갔던, 당신만의 쿨 러닝 같은 순간이 있나요? 그때의 당신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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