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전하는 삶의 자세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하고, 영혼 없이 일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삶. "내일도 오늘 같겠지." 우리는 종종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한 감옥처럼 여기며, 어딘가에 있을 거창하고 특별한 행복만을 찾아 헤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직업은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비루하고 지루해 보이는 삶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충만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살아갑니다. 거창한 사건이나 반전 없이도, 잔잔한 호수처럼 우리 삶을 어루만지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입니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시계추처럼 정확합니다. 이웃집 할머니의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고,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낡은 승합차에 오릅니다. 그는 화장실을 청소할 때 얼굴을 찌푸리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변기 뒤쪽까지 작은 거울을 비춰가며, 마치 장인이 예술 작품을 다루듯 묵묵하고 정성스럽게 자신의 공간을 닦아냅니다.
우리는 흔히 루틴(Routine)을 쳇바퀴라 부르며 지겨워하지만, 히라야마에게 루틴은 거친 세상으로부터 내면의 평화를 지켜내는 단단한 닻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정성껏 조립해 나가는 것. 그것이 그가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매일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히라야마의 점심시간은 늘 같습니다. 신사의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베어 물고, 구형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를 꺼내 머리 위 나뭇잎들을 찍습니다.
일본어에는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아른거리며 비치는 햇살을 뜻하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햇살의 모양은 매 순간 변합니다. 즉, 이 세상에 똑같은 코모레비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가출해 자신을 찾아온 조카 니코가 바다에 가고 싶다고 조르자 히라야마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에.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행복은 다음에 도착할 거창한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점심에 올려다본 하늘,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퇴근길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 단 한 번도 같았던 적 없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온전히 음미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인생을 사는 법임을 영화는 조용히 일러줍니다.
현대인들은 늘 새로운 자극을 좇습니다. 최신 스마트폰, 숏폼 영상, 쏟아지는 트렌드 속에서 우리의 뇌는 쉴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삶은 철저히 아날로그를 향해 있습니다.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루 리드(Lou Reed)와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올드팝을 듣고, 밤에는 헌책방에서 산 1달러짜리 문고본 소설을 읽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스르르 잠이 듭니다. 남들이 보기엔 시대에 뒤떨어진 삶이지만, 그의 내면은 그 어떤 현대인보다 풍요롭습니다.
무언가를 계속 더하고 소유해야만 행복해진다는 강박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히라야마의 고요한 저녁 시간은 너무 많은 정보와 관계에 치여 스스로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때로는 스위치를 끄고, 삶을 덜어내야만 내가 더 선명해진다"는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3분은 전 세계 관객들을 먹먹하게 만든 압도적인 명장면입니다. 다시 밝은 새로운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흘러나옵니다. 운전대를 잡은 히라야마의 얼굴 위로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와 알 수 없는 눈물이 동시에 차오릅니다.
인생은 늘 기쁠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아픔이 떠올라 눈물이 나고, 고독함이 밀려오기도 하죠.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 슬픔마저 담담히 껴안은 채, 또다시 시작된 오늘 하루를 벅차게 맞이합니다. 눈물과 미소가 뒤섞인 그의 얼굴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말이죠.
어쩌면 우리의 하루도 누군가가 보기엔 평범한 화장실 청소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순간을 정성껏 살아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쳇바퀴를 굴리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 출근길에는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건 어떨까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당신이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낀다면, 내일은 분명 당신만의 퍼펙트 데이즈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