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이티백

세 명의 이타심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5년차 청년 창업가, 엘리사

by 아이티백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모여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게 됐고 그게 지금의 창업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대학생 때 창업을 하다보면은 취업을 안 하고 창업을 해야 된다는 걸 선택해야 되는 순간이 언젠가 오는데 그걸 되게 두려워해요. 창업에 실패해도 이걸 가지고 취업을 할 수가 있나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게 돼요.
예전에는 하나의 눈덩이만 굴리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면 요즘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생긴 거예요. 그래도 저희 공동 창업자 관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사실 이타심이라고 생각을 해요.


아이티백 엘리사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엘리사입니다.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5년 차 창업가이고요.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창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회사를 만들고 운영을 하고 있는 엘리사라고 합니다.

5년 차 창업가라니 너무 놀랍습니다. 사회생활을 창업으로 시작하신 거예요?

네, 인턴 했던 거 말고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은 창업을 하면서 시작한 게 맞아요

인턴은 얼마나 하셨는데요?

인턴은 6개월 정도 했습니다.

인턴 6개월 하고 바로 그냥 창업을 해버렸어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가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전공이 교육학과인데 같이 교육 각 전공인 친구들이랑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게 됐어요. 근데 저희가 그때 당시에 교육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게 돼서 처음에 하게 됐었던 프로젝트는 사실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었는데 그걸 하면서 제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론에 대한 걸 익히게 됐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나는 교육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싶고 그런 문제들을 같이 풀 사람들을 좀 찾고 있는데 청각 장애인에 대한 교육 문제보다는 좀 더 제가 몰입해서 대상자가 아니다 보니까 몰입하고 공감해서 오래오래 풀 수 있는 그런 문제를 좀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 지금의 공동 창업자 두 명을 만나게 돼서 저희가 그때 처음 풀었었던 문제는 대학생들이 대학교 들어가면은 대학 가기 전에는 살짝 다 저희가 답이 있는 그런 문제들을 풀잖아요. 1번은 4번 답이고, 2번은 5번 답이고 이런 식으로. 근데 대학교에 입학하다 보면은 본격적으로 어떤 삶을 살지를 자기가 주도적으로 그려봐 이런 순간에 놓이는데 대학에 오기 전까지는 답 있는 것만 풀고 학과 같은 것도 내가 원하는 과에 가려면 거기에 맞는 활동만 해가지고 입학을 해야 되고 하다가 어떻게 갑자기 20살이 넘었다고 그렇게 주도성을 펼수가 있겠어요. 그거에 대해서 모두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도 여대를 나왔는데 여대 특성상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늦게 하는 친구들이 많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애들이 다 같이 놀다가도 내가 이런 활동을 할 때도 좋지만 나 이제 곧 졸업반이 되니까 빨리 정해진 길에 따라서 취업해야 되고 대기업 가고 싶으니까 그거에 맞는 취업 활동들을 해야 되고 이런 식으로 결국은 고등학교 때랑 똑같은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였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내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야 나랑 잘 맞을지도 모르겠어. 근데 일단 대기업 가야겠어 아니면 일단 이런 걸 사람들이 다 해야 된다고 하니까 해야겠어. 요런 식으로 마지막에 결정을 다시 우회해서 정해진 길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답답함을 느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는 그런 특성이 아니었고 고등학교 때부터도 내가 이걸 꼭 원해서 해야겠어라는 것들을 저도 몰랐지만 그런 걸 추구하고 살았었나 봐요. 그렇다 보니까 여대에서의 저의 그런 특성들이 남들과는 다르게 튀는 것처럼 여겨졌었던 부분들이 있었고 제가 만났었던 저희 공동 창업자 친구들도 다들 개성 있게 누구보다 자기만의 삶을 살아왔던 그런 친구들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만나서 우리가 똑같이 느꼈었던 그런 문제 의식에 대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같이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그걸 교육으로 한번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모여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게 됐고 그게 지금의 창업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대표님이어서 문제 의식부터 솔루션까지 그냥 술술술술 나왔습니다. 너무 훌륭하네요. 고등학교 때 교육학과를 가야겠어라는 거는 엘리사님의 선택이었나요?
사실은 고등학교 때는 제가 교육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못 갔어요. 왜 못 갔냐면은 고등학교 때 제가 독일어를 배웠었거든요. 그래서 독일어를 배운 걸 살려서 교육학과도 몇 군데 넣고 독일어학과도 넣었는데 교육학과는 다 떨어지고 독일학과 된 거예요. 독일학과에 갔어요. 근데 가서도 그런 계속 마음에 나 교육학과 가고 싶다라는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저도 창업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회사에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뭘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원래는 HR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인사 팀에 들어가려고 내가 가진 전공에서 뭘 더 할 수 있지 이렇게 보다 보니까 저희 학교에 인재개발학과라고 하는 복수 전공이 있었는데 그거를 처음에 복수 전공을 해서 듣다가 보니까 인재개발학과라는 전공은 애초부터 교육학이나 경영학을 본 전공으로 하는 친구들이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을 갖고 있다라는 전제를 하고 추가적인 걸 실무적인 부분을 교육하는 학과였던 거예요. 제가 교육학에 대한 그런 부족함을 느끼고 근데 저는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가지고 석사는 하기 싫었거든요. 석사를 바로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전과를 해야겠다. 그때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게 전과밖에 안 남았어가지고 4학년 때 교육학과로 전과를 했어요. 그래서 4학년 때 전과를 했다는 게 되게 큰 결정이거든요. 그래서 4학년 때 교육학과로 전과를 결국은 하게 됐고 학교를 한 2년 정도를 거의 풀학점 25학점을 꽉꽉 채워 들으면서 4학년 때 전과하고 그러고 1년 반을 학교를 더 다녔어요. 교육학과로.

그 전에 독일학과 수업 들었던 건 다 그냥 자율 전공으로?

부전공으로 했어요. 그거를 복수 전공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 독일어로 논문을 하나 더 써야 돼가지고 근데 그거는 하고 싶지 않아가지고 그냥 부전공으로 돌렸어요.

교육학을 왜 공부하고 싶었어요?

저는 뭔가를 제가 배우거나 뭔가를 가르쳐줄 때 똑같은 거를 배우더라도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어떤 식으로 배우는가에 대해서 되게 흥미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방식이라는 거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교육학과는 학문을 가르치지 않거든요. 영어나 국어나 이런 걸 가르치는 게 아니고 정말 인간이 인간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거나 혹은 스스로 학습을 할 때 되게 다양한 방법론들에 대해서 배우는데 그거를 배우고 싶어서 교육학과에 가게 됐어요.

특정한 주제를 배우는 것보다 어떤 것을 가르치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고 그걸 공부하고 싶어라는 걸 고등학교 때 생각했다는 거잖아요. 계기가 있을까요?

이건 되게 중학교 때부터 했던 일인데 제가 완전 뼈 속까지 문과예요. 숫자를 지금도 잘 안 좋아하고 숫자로 된 거를 기억을 진짜 못하거든요. 사람 생일이나 핸드폰 번호 같은 것도 진짜 기억을 잘 못하는데 근데 제가 중학교 때 과학이라는 과목을 100점을 맞은 적이 딱 1년 동안 있어요. 근데 그 계기가 뭐냐면 과학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과학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랑 너무 친해지고 싶어서였거든요. 학원 선생님이셨는데 제가 어떤 특정한 과목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게 꽃힐 때가 한 2, 3년에 한 번씩은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한 분,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이렇게 한 분씩 계시는데 그 선생님들이랑은 지금도 되게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거든요. 근데 그 선생님들이랑 친해져서 공부를 하는 그거 자체에 흥미를 느끼다 보니까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이 과목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럴까라고 생각을 해 보니까 그게 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어떤 방식과 이 학문에 대해서 그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 이런 것들이 저한테 잘 전달되고 그게 나랑 핏이 맞는다고 느껴질 때 그 과목에 대한 흥미 자체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거를 느끼고 나서는 나는 이 선생님들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공부법 혹은 교수법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룰 수 있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알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 학과를 알아보면서 그때 그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각각 한 분씩 선생님이 계셨다고 했는데 세 분의 교육하는 방식은 같았어요?

다 달랐어요. 초등학교 때는 아무래도 과목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그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 되게 맞는 건 맞고 아닌 건 아니고 하지만 이론만 전달하기보다 학생들이 실제로 다양한 걸 느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궁금한 거를 발견해 내게 하는 훈련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호기심 노트라고 일주일에 하나씩 그때 GPT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그냥 일상을 살면서 내가 궁금했던 거에 대해서 찾고 그거를 왜 그랬는지를 인터넷에 찾아서 적어오게 하는 그런 훈련을 1년 동안 했는데 예를 들면 막 그런 거예요. ‘왜 소변을 누고 나면은 몸이 떨릴까?’, ‘달팽이는 똥을 싸면 어떨 때는 빨간색이고 어떨 때 초록색일까?’ 제가 발견했었던 질문들인데 진짜 어렸을 때 그런 거 좀 발견하면 재밌잖아요. 근데 그거에 대해서 되게 과학이랑 엄청 연결돼 가지고 그 답변을 하게 되면 그게 기억에 더 잘 남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선생님이 직접 주입으로 알려주는 것보다 내가 궁금했고 이거를 내가 답을 하는 그런 방식도 있었고 그리고 중학교 때는 외울 게 진짜 많았는데 그거를 특히 과학 원소기호 이런 거 있잖아요. 이런 걸 항상 노래를 만들어서 선생님이 가르쳐줬어요.


주로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거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는 논술 선생님이셨었어요. 제가 고3 때 입시 논술을 했었거든요. 그게 원래는 답이라는 게 정해져 있을 있지만 그 답에 대해서 어떻게 답을 찾아가는지를 풀어주는 방식이 다 달라요. 근데 그 선생님의 수업에서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앞이랑 뒤에 중요하게 내 의견을 넣을 부분과 넣지 않을 부분을 구분해서 그걸 머릿속에 도식화 시켜주는 걸 되게 잘하셨어요. 근데 그 선생님이 연세대학교 교육학부셨거든요. 그래서 그때 ‘교육학과 가면은 이런 거 배우는구나 선생님 짱이다’ 이런 생각하면서

교육학과 가니까 어떠셨어요? 내가 생각하던 그런 거를 가르쳐주던가요?
아니요. 교육학이라는 학문이 정말 다양한 융합 학문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알고 싶었던 건 딱 교육 방법론에서만 알 수 있었고 그 외에도 교육 정치, 교육에서도 통계 이런 다양한 것들을 배우거든요. 그래서 교육이라는 게 둘러싸고 있는 부분이 되게 많다 보니까 저는 진짜 교육 방법만 재밌는 것 같아요.

졸업하고 인턴 6개월 정도 하셨다고 했는데 거기는 어떤 계기와 이유로 들어가셨어요?

제가 스무 살 때 대학교에 독문과로 입학을 하고 인생의 재미를 못 느꼈어요. 제가 원하던 학과가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독일어를 배웠고 제가 여중이랑 여고 같은 공학을 나왔는데 대학교도 여대잖아요. 그러니까 여대에 내가 계속 고등학교 때 배웠던 그걸 전공으로 한다는 게 재미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부에서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리고 다른 활동들을 해보기도 했는데 되게 겉돌았었어요. 그래서 재미없게 살다가 21살 때 처음으로 학점 잘 준다는 PF 수업을 Pass or Fail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창업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으로 따지면은 와디즈 같은 크라우드 펀딩의 아이템을 찾고 그거를 직접 시제품을 만들어서 올려보는 거기까지 해야 패스를 준다는 거예요. 빡세잖아요. 종강하는 거 다 빼면 한 3~4개월 정도 되거든요. 그 기간 안에 처음 만나서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수업에 거기까지 간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팀부터 짜서 그러다 보니까 제가 그때 4학년 언니들 3명이랑 저랑 동갑인 친구 두 명 이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4학년 언니들이 얼마나 빡셌겠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은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갑자기 21살짜리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심지어 저랑 같이 수업 들었던 애는 재수해가지고 1학년이었어요. 그러니까 저희 둘은 그냥 학점 잘 준다 해가지고 그걸 들었던 거죠. 그러니까 언니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자기들은 이걸 무조건 패스를 받아야 되는데 얘는 아무것도 몰라. 심지어 둘 다 디자인 이런 전공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의견을 내도 별로 도움되는 의견이 아니야. 그러다 보니까 언니들한테 살짝 잡도리를 당한 거죠. 너네는 우리가 시키는 것만 해. 그냥 우리가 알아서 리드 할 테니까 너는 시키는 것만 해. 그래서 언니들을 따라 보다 가니까 패스가 나왔어. 근데 그게 어떻게 해서 저희가 아이디어를 내게 됐냐면 시골에 한글을 아직 모르는 할머니들이 계세요. 저희가 여대다 보니까 그런 시골 특히 할머니들 이런 여성과 관련된 문제에 포커스 해가지고 그걸 찾기 시작했고 그래서 거기에다가 지금은 없어졌는데 다음 카카오 스토리 펀딩인가 그런 게 있었어요. 이거는 아예 비영리쪽 펀딩을 하는 거였는데 그래서 여기에다가 할머니들이 책상도 없이 바닥에서 한글 공부를 하고 계세요. 그런 뉴스 기사랑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근데 그게 지속적으로 후원이 되지 못하고 다 일시적으로 지원을 해 주는 거에 그치기도 하고 이게 봉화라는 지역이었는데 그 봉화라는 지역 자체가 되게 넓은데 경로당은 다 마을마다 떨어져 있다 보니까 그거를 찾아가는 학교를 만들어야 돼서 선생님이 한 분밖에 안 계신데 이 교실을 3개월 가르치고 여기 또 쉬었다가 이 교실을 3개월 가르치고 이런 식이라서 중급반을 못 가신다는 거예요. 할머니들이 되게 디테일하죠. 그래서 이거를 문제를 그때 다 잘 정의를 하고 그렇게 해가지고 펀딩을 올려서 결국은 그거를 달성을 했어요. 저희는 그때 디자인과 다니는 언니가 있어서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는 것처럼 우리도 캘리그라피를 배워보자 해서 할머니들이 쓰셨던 문구를 캘리그라피를 따라 쓸 수 있는 키트를 만들어 가지고 그거를 팔았어요. 그래서 그걸 팔아가지고 그래서 그거를 성공을 했는데 그때 그거를 하다 보니까 언니들은 졸업한다. 빠빠이가 학기 말이 됐는데 학교에서 그때 창업 경진대회나 이런 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언니들이 저희한테 조언을 해준 거죠. 너네 이거 우리 한 거 되게 너네는 잘 모르겠지만 값진 거야. 이거를 여기서 끝내지 말고 뭐라도 해 봐. 우리는 취업하러 가야 되니까 이만 간다 수고 이러면서 간 거예요. 그래가지고 저희가 그거를 가지고 창업 경진대회를 나갔어요.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때가 이제 17년도였거든요. 그러니까 아직 한국에 창업의 초창기이던 시절이어서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나왔는데 아이디어만 갖고 온 게 아니라 뭐라도 해봤어라는 것 자체가 되게 큰 가점이 되던 그런 시절이었죠. 저희가 우리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뒤에 아이디어는 기억도 나지 않아요. 뭔가 되게 어려운 거를 그러니까 플랫폼을 만들겠다 이런 생각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하려고 하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걸 해서 펀딩을 100%를 했어 라고 하니까 ‘어 그래? 너네 뭔가 해 봤어?’ 이러면서 상도 막 주고 다른 대회도 나갔더니 멘토링도 해주고 이러면서 그거를 가지고 처음에 창업 비슷한 활동을 예비 창업 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게 21살 때 근데 하다가 당연히 잘 안 됐죠. 그때 저희가 하려고 했던 게 어쨌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거에서 시작됐다 보니까 소셜 벤처 관련된 거를 하는 멘토링이나 그런 걸로 계속 연계가 됐어서 저도 소셜 벤처를 또 해보고 싶기는 하더라고요. 근데 잘 모르겠잖아요. 특히 소셜 벤처라는 돈도 벌어야 되는데 그거랑 마찬가지로 좋은 일을 해서 사회적인 가치도 만들어야 돼. 근데 솔직히 돈 버는 방법도 모르겠는데 사회적인 가치를 만드는 방법 두 가지 같이 하는 게 너무 머리가 터지잖아요. 그때 제가 결심했던 게 뭐냐면 내가 나중에라도 창업을 해보고 싶어. 소셜 벤처랑 관련된 걸 해보고 싶은데 그때가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한 번에 갈 수 있는 것도 우리는 사회 경험이 없어서 너무 삽질을 하면서 가다 보니까 일단 이건 여기서 홀드하고 공부를 더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는데 그때 그런 경제적인 거 관련된 거를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생들이 하는 경영 컨설팅 학회도 들어가고 동시에 사회적인 걸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인턴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인턴을 했던 사회공헌센터라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했어서 어떻게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런 사회적인 창업가들도 만나고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기사로 만들어 가지고 싣고 이런 일을 6개월 동안 했었어요.

의도가 있어서 거기에서 인턴을 한 거네요. 6개월 인턴을 하고 나니까 이제 사회생활은 됐어 나는 창업할 때가 되었군. 이렇게 해서 창업을 한 건가요?

그건 아니었고 그때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건 뭐냐면 되게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기관이었어서 저는 배우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이 다 칼같이 컷당하고 인턴은 사실 정해진 거를 해야 되잖아요. 지금 제가 생각해 봐도 너무 나댔어요. 그런 것들을 또 좋게 봐주시고 거기에 팀장님들도 저한테 나중에 저는 그런 회사랑 안 맞는다는 거예요. 그냥 성질 자체가 너는 대기업 말고 공공기관 공기업 이런 데 말고 차라리 작은 스타트업 같은 회사를 가거나 네가 만들어라.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해 주셨을지 지금은 알죠. 근데 그렇게 느낀 것도 있었죠. 그러니까 내가 나중에 일 하고 싶은 환경은 자유로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 그러니까 책임감 있고 오너십 있고 하지만 내가 많이 내 의견을 내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라고 그때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창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거를 계속 사이드 프로젝트로 가져가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HR을 어쨌든 전공했고 인사팀에 들어가려면은 스타트업 인사팀보다는 큰 기업에서 아무래도 TO가 더 많이 나다 보니까 무조건 대기업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서비스 뭔지 소개 좀 해주세요.
저희 서비스는 <건강한 취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 콘텐츠와 솔루션인데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취업 쪽 관련된 교육 콘텐츠랑 그 콘텐츠에 맞춰서 내가 지금까지 했었던 경험들을 정리하고 그리고 자기소개서랑 포트폴리오 같은 걸 쉽게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서비스 예요.

교육 프로그램을 준다거나 누군가가 멘토링을 해준다거나 방법이 여러 가지일 것 같은데 <건강한 취준>은 어떤 방식으로 도와주는 거예요?

저희는 일단 교육 과정이 존재를 하고요. 저랑 같이 창업한 공동 창업자 중에 그 친구도 그때는 학사였는데 최근에 박사가 됐어요. 그래서 각자 다 자기의 사업을 위한 목표 달성이 하나씩 있었는데 저희가 그걸 교육 과정화하는 기간이 있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에 대한 자기를 찾는 그런 자아를 찾는 과정이 있고 그 다음에는 내가 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랑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발견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래서 나를 중심을 세워둔 다음에 내가 지금까지 했었던 경험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고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나에 대한 관점을 바라봤다면 그 이후에는 취업에서 회사의 관점에서 그러면 내가 세일즈를 어떤 포인트에서 할 수 있을까 근데 그런 게 나답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저희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팔리는 것만 중요한 건 아니고 내가 내세우고 싶은 가치랑 그리고 회사에서 먹힐 만한 가치의 교집합을 잘 찾아주는 거를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들을 실제로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를 질문 기반으로 저희 수많은 질문 리스트가 있어요. 그런 거를 유튜브 숏폼처럼 짧게 잘라서 질문을 주고 그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고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그걸 기반으로 나온 그런 키워드들로 자기소개서랑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디지털 솔루션 이렇게 두 가지가 같이 있어요.

세명이 공동 창업하는 케이스는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세 분은 어떤 인연으로 그렇게 함께 창업하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저희가 처음에 만나서 창업 활동을 했었을 때는 저 말고 다른 두 명의 공동 창업자 친구들이 먼저 뭔가 해보자라는 의견이 있었고 저는 그때만 해도 대기업에 취업을 하려고 그렇다 보니까 저는 그냥 취업 전에 스펙도 쌓고 적당히 나의 자아 실현을 할 목적으로 같이 조인을 했었던 거였어요. 근데 그때 저희가 예비 창업 기간이어 가지고 정부에서 예비 창업자들한테 돈을 준다고 친구들이 알아왔대요. 그래서 저한테 월마다 80만 원씩인가 줄 테니까 그때 제가 이전에 창업 활동을 몇 번 해봤다 보니까 전공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러 가지 기획이나 디자인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본 만큼은 따라 할 수 있는 정도의 제너럴리스트 성향이 살짝 있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우리는 교육에 대해서 흥미랑 전문성도 어느 정도 있으면서 자기들의 손발이 돼 줄 수 있는 친구를 찾고 있다. 같이 하지 않을래? 하고 저를 한 3개월 동안 돈도 줄게 이렇게 하면서 꼬셨어요. 그래서 3개월 동안 꼬셨는데 그래서 그래 재밌겠다. 대신 나 일주일에 시간 이만큼밖에 못 써 하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까 얘네가 잘못 알았던 거예요. 뭘 잘못 알았냐면은 그 활동을 하는 6개월 내내 80만 원씩을 준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6개월 동안 80만 원을 한번 준다는 거였던 거예요.

예비창업 패키지 이런 게 아니고 그 이전 단계에 뭐가 있나 보죠?

더 마이너한 사업들이 그때는 꽤 있었어요. 어떻게든 창업을 하게 만드는 그런 예비 창업의 사업들이 되게 많았어요. 근데 그거를 알게 된 시점이 우리가 뭐라도 해보자 하고 뭔가를 많이 펼쳐놨던 시점이라서 저도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한 거에 대해서 욕심이 생기고 그리고 이 친구들이 되게 진심이니까 그걸 또 도와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냥 됐어. 나 그냥 그만큼만 받고 같이 할게

시간을 줄인 건 아니고요?

시간을 좀 줄였어야 했는데 시간을 줄이지 않고 사실 더 많이 시간을 쓰게 됐어요. 왜냐하면 이 친구들은 그걸 안 해 봐서 그때는 머릿속에 생각만 있고 그거를 하나도 프로그램화를 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거를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 우리가 이걸 강의 같은 콘텐츠로 만들고 싶은데 강의 콘텐츠를 만들려면 교안 같은 것도 필요하고 강의 PPT로 이렇게 할 때 뒤에 깔리는 PPT도 되게 예쁘게 제작이 되어 있어야 하고 영상을 촬영해 주고 편집해 주고 이렇게 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그 친구들이 잡아놓은 예산에서 저한테 줄 거 말고는 다 영상을 촬영해 주는 데 들어가는 그런 비용들이었어요. 그럼 나머지 교안이라든지 뒤에 들어가는 PPT라든지 이런 거를 저한테 원래 맡기려고 했는데 저한테 80만 원으로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근데 그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자기들이 생각한 어떤 수준이 있는데 저는 이거를 그 높지 않은 퀄리티로 만들 거면 이걸 왜 하지 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거를 이런 퀄리티로 제가 그때 당시에 낼 수 있었던 최대한의 퀄리티를 낸 거예요. 제가 그냥 그래서 그거를 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많은 시간들을 할애를 했었죠.

엘리사님을 거기에 끌어들인 그 두 분은 역할이 뭐였어요?

초기의 아이템 구상.


아이템 구상이라고 할 때 구상은 뭘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박사까지 하고 있는 그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적인 집안의 환경에 노출돼서 자랐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 다 교육자시고 학자 집안에서 그런 논리들을 많이 섭렵해가지고 그래서 지금은 저희 거가 교육 과정이 증명된 논문으로 나와 있거든요. 그때부터 그런 걸 준비를 해가지고 우리의 교육 과정은 정말 어떠어떠한 과거의 학자들이 했던 논리에 입각해서 이런 게 만들어진 거다. 그다음에 한 명은 완전 강사

세 분의 공동 창업자가 서로의 역할과 강점이 달라서 잘 맞을 때도 있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을 거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해요?
어려움이 있을 때도 많죠.

주로 어떨 때 어려움이 느껴져요?
아무래도 회사가 커지면서 발생하는 과정 중에 최근에는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앞서서 말씀드렸던 지금은 운영 쪽 일을 완전히 덜어내고 새로운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에 들어가 있는데 그래서 R&R이 바뀐 게 저는 어떻게 보면 COO에서 CPO로 넘어간 거고 그리고 한 명의 공동 창업자 친구가 이제 COO를 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사업적인 그리고 저희가 회사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있게 하는 커리어를 초반에 쌓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사업자 등록을 하자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이미 취업을 해 있던 상태였어가지고 제가 공동 창업자중에 제일 어리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가 대기업에서 경영 컨설팅 업무를 담당을 했어서 지금은 CEO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총괄적인 경영 그리고 재무 쪽을 보고 있고 원래는 교육 전문성 학술적인 백그라운드를 담당하던 친구가 이제는 완전히 운영 쪽으로 넘어가 가지고 교육도 하고 운영도 하고 총괄도 하고 이런 좀 큰 R&R을 가져가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예전에는 우리가 하나의 눈덩이만 굴리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면 요즘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저희 회사가 지금 10명인데 두 개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보니까 인원은 5명, 5명씩 쪼개지거든요. 그래서 저희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과 해야 되는 그런 이해관계가 또 있고 이 안에서 맞춰야 되는 특히 제품 개발 일정 같은 거는 위에서 쫀다고 제품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거를 고려하면서 이런 걸 또 맞춰야 되고 저희 회사에 돈 떨어지는 거랑 쉽게 말해서 투자 받아야 되는 시점이랑 근데 또 내부에서 지금 캐파로 할 수 있는 개발 일정이 되게 다른데 그런 거를 저는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항상 저희 C-레벨 친구들한테는 안 돼 안 돼 그거 안 돼 그때까지 못 해 이런 얘기밖에 못 하는 거고 또 CEO 친구는 자기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 지만 어쨌든 저희가 투자를 받아야 되면은 그거에 맞춰야 되는 최소한의 지표가 있다 보니까 ‘이 지표 언제까지 나와, 이거 언제까지 나와’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저는 항상 안 돼 안 돼 이렇게 얘기하니까 그리고 운영 쪽에서는 아무래도 제품을 신규 제품 만드는 데 돈이랑 인력을 많이 태우다 보니까 이쪽 인력을 충원을 잘 못 해줘요. 그러니까 아니 우리가 돈을 다 벌어 오는데 여기 사람 좀 채워주면 안 돼? 너무 이해가 되시죠?

보통은 학생 때 창업을 하게 되면 1~2년 하다가 잘 안 되거나 아니면 내가 원래 생각했던 대기업에 가거나 이런 사람들도 있는데 이렇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찌니님이 주셨던 질문들이 제가 대학생 창업가들을 만나면 제일 많이 저한테 하는 질문들이거든요. 왜냐하면 대학생 때 창업을 하다보면은 아무래도 취업을 안 하고 창업을 해야 된다는 걸 선택해야 되는 순간이 언젠가 오는데 그걸 되게 두려워해요. 친구들이. 왜냐하면 내가 취업 경험이 없는데 창업을 바로 해도 될까? 이런 것도 있고 그리고 창업이라는 게 성공이라는 거를 정의하기 나름일 수 있겠지만 하기가 쉽지가 않고 근데 성공을 못했을 때 내가 낙오자가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취업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창업에 실패해도 이걸 가지고 취업을 할 수가 있나 이런 고민들을 친구들이 많이 하게 돼요. 저도 그 고민을 되게 오랫동안 했었어요. 제가 올해 29살인데 5년 전에 그러니까 예비 창업 기간이 한 20년부터 21년도까지 1년 정도 있었고 그리고 21년도에 사업자를 냈으니까 스물넷, 스물다섯 이 정도부터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들을 계속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창업이라는 과정을 하다 보면은 처음에는 정말 내 인건비 하나 못 버는 기간이 되게 긴데 그 기간 동안에 저는 계속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나 취업할까 창업할까 근데 버틸 수 있었던 건 사실 부양 가족이 없는 게 제일 컸고 내가 먹여 살릴 사람이 나 하나이니까요. 제가 예비 창업 활동을 할 때는 과외를 3개 뛰었거든요. 과외 3개 하면서 제 인건비 하나 벌고 그리고 그때는 지금 공동 창업하고 있는 친구가 회사에 다녔으니까 그 친구도 자기의 최소한의 생활비를 말고는 다 회사에 그냥 돈을 넣었어요. 그러니까 전주가 돼줬던 거죠. 일정한 기간 동안에. 그래서 자기 월급에서 자기 월급 빼고 저랑 그때 저만 했던 게 아니라 예비 창업팀에 지금도 같이 하고 있는 디자이너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둘이서 저희가 맨날 이걸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돈이 없잖아요 둘 다 그래서 운영 자금을 댄 거죠. 그래서 그렇게 해줬었고 그래서 그 기간을 버틸 수가 있었던 것 같고 왜 창업을 시작하게 됐냐 이게 계기가 있었어요. 예비 창업 활동들을 하는 거에 목적지는 다 예비창업 패키지라는 사업으로 수렴하거든요. 예비창업 패키지를 하게 되려면은 사업자 등록증을 결국엔 내야 돼요. 근데 그때는 저희가 법인이 아니라 개인 사업자를 냈었는데 그럼 그걸 누구 이름으로 할 거냐 라고 했을 때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친구는 회사를 다니니까 일단 안 되고 그리고 다른 친구 한 명 그 친구 박사가 된 친구는 남자거든요. 근데 그때 당시에 여성벤처협회라고 여자들 지원해주는 거기에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았어요. 그 우리 여성벤처협회를 할 건데 그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처럼 너 이름으로 사업자를 내지 않을래? 그래서 어쨌든 그 전까지 내가 쏟은 시간과 이런 게 있고 나도 취업을 할 거여도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해서 뭐가 됐습니다 라는 성과의 한 줄을 남기고 싶었는데 예비창업패키지가 됐습니다. 이렇게 하면 있어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거를 남기기 위해서 제가 그래 내 이름으로 대표를 낼게 라고 얘기를 했던 거죠. 근데 그렇게 하고 나서 시작이 됐는데 되고 나니까 지원금도 주고 그러면 새로운 다음 목표도 세워야 되고 하는데 그때 조금 더 욕심이 났던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더 해볼까 이제 뭔가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때 제가 스물다섯 스물여섯이었으니까 사실은 그때 취준을 했어도 됐지만 한 1~2년 더 늦게 한다고 문제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거 1~2년 더 하다가 취준하자고 살짝 미뤘던 거죠. 그렇게 해서 시작을 했는데 하다 보니까 또 본격적으로 계약이나 이런 것도 사업화가 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도 조금씩 더 욕심이 났던 것 같아요. 우리 처음으로 하나 대학이랑 계약해 봤는데 그거 더 해서 한 10개까지 만들어 볼까 이런 식으로 노력을 인정받기까지의 시간이 또 되게 길었거든요. 나름대로

엘리사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몇 년 동안 보다가 계약을 처음으로 대학교랑 땄다 이런 포스팅을 봤는데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처음에 어떠셨어요?

저희가 처음 계약을 딴 게 예비 창업 단계부터 사업자 등록증 내고 나서 거의 1년 만에 계약을 땄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너무 오래 기다려서 이제야 될 게 됐다 라는 생각 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뭐였냐면은 저희가 처음에는 B2C 사업으로 구상을 하다가 이거를 테스트를 해봤는데 저희가 교육 콘텐츠만 처음에 팔아가지고 매겼던 가격이 한 20만 원 정도였거든요. 근데 20만 원이면은 자기소개서까지 다 쓸 수 있는 비용인데 대학생들이 안내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고 아 우리가 사업화를 하려면 B2B를 해야겠다. 대학이랑 계약을 해서 대학생한테 뿌려야지 대학생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대학이랑 계약을 하려면 입찰도 해야 되고 제안도 해야 되고 근데 그때 제가 대학 5학년이었거든요. 근데 솔직히 대학에서 대학생이 만든 그리고 아무리 저보다 몇 살씩 나이가 많다 해도 아무것도 없는 신생 업체가 만든 곳이랑 계약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이 줬었던 퀘스트를 깨는 데까지 1년이 걸린 거예요. 너네 이러한 이력을 갖추고 와야지, 이거부터 해가지고 그런 거를 깨는 데 1년이 걸렸고 그때 계약서 다 찍고 그러고 나서 좀 실감이 났었던 게 뭐냐면 저희가 첫 계약을 입찰로 해서 고려대학교랑 계약을 했어요. 그러고 고려대학교랑 하고 있는 거를 열심히 알리고 다니니까 서울대학교에서 인바운드 계약이 들어온 거예요. 저희 걸 보고 너무 이런 업체를 찾고 있었다면서 서울대 애들이 되게 특이하거든요. 그러니까 애들이 아무래도 서울대학교라는 그게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취업을 한 학생들이 의외로 별로 없어요. 외국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박사를 바로 가고 로스쿨 가고 하지 취업한 학생은 전체의 3~40%밖에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서울대학교에서 되게 신경 쓰는 게 우리 학교 애들이 솔직히 삼성, SK를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취업을 원하는 곳에 하는 걸 되게 하게 해 주고 싶어 하고 우리 애들이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데 그런 니즈를 커스텀에서 맞춰줄 수 있는 교육을 하는 업체를 찾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다른 취업 업체들은 다 그냥 SK로 가는 지름길 삼성가는 질게 근데 저희는 너네가 취업을 하든 대학원에 가든 외국어로 나가든 우리는 그거를 앞단부터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좀 도와주는 게 시작하니까 그거에 되게 끌리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거를 알아봐 주셔서 인바운드로 계약이 됐었을 때가 되게 기뻤어요.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첫 번째 이타심, 두 번째 티키타카에요. 그 둘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은데 이 두 가지가 중요한 가치인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 회사가 아무래도 교육 콘텐츠 자체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또 내가 인생을 살 때는 어떤 가치를 갖고 있고 그리고 내가 일할 때는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파는 회사다 보니까 이 가치에 대한 질문을 되게 생각을 많이 해 봐서 길게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타심이라는 가치는 저희가 공동 창업자 관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사실 이타심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눈으로만 보면은 나만 희생했어라고 얘기할 수도 있거든요. 저희 교육 회사인데 박사인 사람 한 명밖에 없고

박사까지 간건 본인이 가고 싶어서 간 거 아니에요?
그것도 맞지만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리고 박사를 쉬었다 갈 수도 있는 건데 회사에서 필요하니까 진짜 꽉꽉 채워서 그걸 더 빨리 당겨가지고 갔거든요. 그래서 되게 어린 나이에 박사 됐거든요. 그 친구도 학업이랑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희생한 부분이 있고 그리고 저랑 같이 회사에 들어갔었던 그 친구도 사실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는 게 회사에서 열심히 치열하게 하고 남은 시간을 시간을 짜내가지고 그걸 하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 회사에 들어올 걸 생각하면서 주말도 다 반납하고 저희 주말에도 밤새고 새벽까지 하고 그리고 이 친구 회사가 그때 남산 근처에 있었는데 저희가 사무실도 남산 근처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금요일에 퇴근하고 오면은 다음 날 월요일에 출근도 사무실에서 했어요. 그러니까 한 2~3시간 자고 광기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월요일에 출근하고 이 루틴을 거의 1년을 했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자기 생활비 빼고 남은 거 다 회사에 쏟고 그동안 저는 불 꺼진 사무실을 밤새 그렇게 지키면서 풀 타임으로 시간을 쏟고 이렇게 저희가 1년을 넘게 시간을 보냈거든요. 저희 회사 특성상 저희가 B2B를 하려다 보니까 달성해야 되는 조건들이 많았고 그때 대학교에서 요구한 게 되게 많았어요. 근데 그중에 하나가 예를 들면은 자기들의 학교에 맞는 그런 형태의 플랫폼도 만들어 달라고 하지. 그다음에 그거에 맞게 다 커스텀 해달라고 하지. 이런 요구 사항을 저희가 처음에 다 받았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했던 학교들이랑 계약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공동 창업자 세 분이 서로를 생각하면서 일해왔기 때문에 이타심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럼 티키타카도

요즘에 새로운 제품을 저희가 만들고 있는데 그걸 만들면서 서비스 기획이라는 거를 제가 작년부터 조금씩 알아오고 있거든요. 저도 전공을 하거나 그런 그 업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니다 보니까 생각하는 프로세스 자체를 뜯어 고치는 데 시간이 되게 많이 걸렸어요. 기획이라고 하면은 저는 이전까지는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은 그게 얼마나 걸릴지 어떤 순서대로 하는지 몇 명이 필요할지 이런 거를 생각하는 게 저한테 기획이었다고 하면은 이건 어떻게 보면 선형적인 과정이거든요. 근데 서비스 기획은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은 내가 A를 할 거야. 그럼 A가 뭔데 이걸 정의하고 그러면 A-1, A-2, A-3 이런 식으로 세부적인 과정들을 엄청 많이 다 정의해 가지고 잘 맞는지 맞추고 이런 식으로 맞추고 논리를 뜯어 붙이는 과정들이 되게 초반에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상위 기획만 하던 사람이라서 어떻게 보면은 서비스 기획할 때 너무 큰 아젠다를 되게 쉽게 던지는 거예요. 근데 그게 서비스 기획한 사람들한테는 개구리한테 돌을 던지는 거 같은 거죠. 이거에 대해서 지금 논의하자고 그러면 3박 4일을 논의해도 이 사람들한테는 모자란데 그러다 보니까 저도 A라는 걸 말할 때 내 머릿속에서 아 그렇지 A는 A-1부터 0까지 이루어져 있지 그러면 그 안에서 다시 A-1은 어떤 사람이랑 얘기해야 하고 A-2는 어떤 사람이랑 얘기해야 하고 그러면 우리는 이번 페이지에는 여기까지 해야 하고 그다음에 여기까지 해야 하고 이제 이런 식으로 나눠 가지고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거를 제가 이렇게 두 가지 과정을 다 겪다 보니까 그 대화를 해야 되는 방식이 또 서로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서비스 기획을 프로덕트를 만드는 IT 업계에서는 A라는 걸 얘기할 때 A부터 1 그다음에 A부터 10까지를 얘기한다고 하면은 저희 공동 창업자를 얘기할 때는 A를 얘기하면 A 얘기는 10초 만에 끝나 ABCDEFG 이렇게 얘기가 간단 말이죠. 그래서 이걸 제가 얘기를 둘 다 저는 두 개 다 겪어봤다 보니까 그런 중간 과정에서 내가 A라는 거에 대해 얘기했을 때 A-1, A-2, A-3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고 그걸 그렇게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이는 대화가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이 비즈니스 단에는 야 우리 A에 대해 얘기하자. 그러면은 진짜 제가 A-1부터 10까지 얘기해도 아 그래 그럼 A라는 거지 그럼 B로 넘어가자. 되다 보니까 그냥 네가 알아서 하시고요. 그러니까 알아서 하고 이렇게 되다 보니까 나는 A에 대해서 오늘 하루 종일 얘기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이건 30분 만에 아젠다로 정리되서 나는 내가 앞으로 대화를 할 때 A-1에 대해 얘기하면은 그걸 A가 아니라 A-1로 해석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랑 더 대화를 하고 싶다.

IT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던 거잖아요. 근데 이렇게 IT 직군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걸 위해서 엘리사님이 했던 노력이 있을 것 같아요.

이거에 대해서 진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또 있거든요. 저희가 21년도에 예비 창업 패키지에서 5천만 원을 받았었어요. 그때 3천만 원을 어디에다 썼냐면 외주 개발을 하는 데 썼어요. 홈페이지 외주 개발을 하는데 저희가 그때까지는 영상 콘텐츠만 있다 보니까 그거를 작성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러니까 자기소개서 같은 걸 작성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웹사이트가 필요했고 그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그때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거를 외부 업체에 턴키로 맡겼어요. 그래서 프론트 디자인을 정말 예쁘게 뽑아줬어요. 너무 예쁘다. 왜냐하면 저희 예쁜 거 보고 계약한 거였거든요. 아는 게 없으니까 알아볼 수 있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러고 사용자들이 그거를 쓰고 한 1년쯤 뒤에 데이터를 뽑아봤는데 전체 필드에 작성한 3 페이지 정도 필드에 작성한 모든 데이터가 엑셀의 한 칸에 떡처럼 뭉쳐져 있는 이상한 알 수 없는 그 쿼리 기호와 함께 나오는 거예요. 진짜 충격을 받아서 그때 백엔드의 DB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게 됐죠. 그러고 나서 주변 개발자들한테 얘기를 해 봐도 이걸 뜯어 고쳐서 개발을 하느니 그냥 새로 하나 만드는 게 훨씬 낫다. 이렇게 얘기를 해서 아 그렇구나 우리는 300만 원을 땅바닥에 버렸구나 이 생각을 하면서 그다음에 한 23년도 쯤에 그때도 외주로 개발을 하긴 했는데 그때는 아예 백엔드 1명, 프론트엔드 1명 이렇게 개발자 분들을 뽑아가지고 이거를 만들었어요. 그때 지인이었던 다른 대표님이 자기 사업을 엎고 서비스 기획자로 취업을 하셔가지고 남는 시기에 저희 그거를 도와주는 PM을 하셨던 거예요. 그분이 저희 지금까지 PM으로 계시고요. 그때 처음으로 내부에서 개발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제가 그걸 좀 더 면밀하게 볼 수 있던 기회가 있었던 거죠. 그때 서비스 기획자분이 그러니까 지금은 PM님이시지만 그때는 기획만 하셨기 때문에 사실상 프로젝트 리드를 제가 해야 됐어요. 잘 모르지만 근데 그래도 일정이나 우리가 필요한 게 뭐고 요구 사항이 뭐고 언제까지 뭐가 나와야 되니까 일주일에 한 번 회의를 소집해서 내용을 듣는 거 이거는 제가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거를 하면서 서비스 기획에 대해서 보고 개발자랑 디자이너랑 어떻게 다 소통하는지 보게 되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죠. 그러다가 중간에 거기 백엔드랑 프론트 엔드 분들 다 현직이었는데 시니어 현직자였어요. 그래서 저녁 시간이랑 주말에 저희 거 해주시는 그런 거였는데 저희가 만들려고 하는 범위가 되게 커가지고 결과적으로는 그거 만드는 데 한 1억 정도 들었거든요. 근데 그거를 만드시다가 그분이 프론트엔드 개발자 한 분이 회피형이셨는데 자기 본업을 치다가 너무 바빠져가지고 저희 거를 아예 런을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잠수를 타신거예요.

돈은 받은 상태로요?

돈 다 받고요. 그래서 중간중간에 얘기를 했었을 때 되고 있다 되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근데 그때쯤에 백엔드 개발자 분이 백엔드 개발자랑 프론트 개발자랑도 서로 모르는 그 사이여 가지고 그러니까 팀이 아니라 모르는데 저희가 한 명 한 명씩 불러가지고 작업을 한 거라 딱 회의 때만 이렇게 얘기를 했었고 그 백엔드 개발자분들한테 부탁드려 가지고 프론트에 대한 데이터를 다 까보니까 깃헙에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상 시작도 거의 안 한 상태로 런을 치시고 그래서 백엔드 개발자분이 본인이 아는 프론트를 몇 명을 데려와서 그러고 한 3~4개월 안에 그걸 다 만들었거든요. 그 1년의 과정이 1년이 넘게 걸렸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제가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었고 그 안에 서서히 녹아들어가는 시간이 되게 온보딩이 길게 있었었어요. 그러고 나서 저희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 때에는 그 이전에 있었던 교육쪽 제품을 만들던 기획자분이 아예 PM으로 입사를 하셔가지고 저희 제품을 쭉 도와주시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온보딩 기간이 꽤 길게 있었던 만큼 그래도 이제 개발자들 기획자들이랑 회의를 할 때 알아 들을 수 있고 알아 들으면서 내 의견을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낼 수 있고 말이 되는 얘기를 할 수 있고 이 정도까지 오게 됐던 거예요.


오늘 차 한잔 한 소감 궁금해요.

5년 동안의 얘기를 압축해서 말하려다 보니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잘 짧게 전달을 드리는 거에 의미를 뒀던 것 같고요. 말을 웃기게 한 건 아니라도 약간 이런 흐름이 왔다 갔다가 있어가지고 듣기에는 꽤 빠른 속도로 재밌지 않았을까. 잘 압축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저도 사실 이렇게 말씀드릴 때는 아 나한테 그런 이런 많은 일이 있었구나. 이렇게 다시 깨닫게 되지만 실제로 하루하루를 살 때는 그런 생각을 잘 못 하고 살다 보니까 되게 세 분이 저 하나에 집중해 주셔가지고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되는 경험이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CREDIT

오잉

인터뷰 오잉, 찌니,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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