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이티백

두려운 이유가 그냥이면 그냥 하세요.

7년차 창업가, CEO 유빈

by 아이티백
왈라(walla)는 폼을 만드는 사스(SaaS)인데요. 기업에서 사용하기 더 좋게 만들었어요. 보안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인증까지도 다 맞춰줄 수 있는 규격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창업을 21살 때 했으니까 누구를 책임지는 게 뭔지도 잘 모르고 시작을 했잖아요. 저희 회사에 와주신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이 시간에 보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되게 강했어요.
도전하지 않았다면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것들도 알게 되다 보니까 해보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인 거죠. 예비 여성 창업자분들도 도전을 두려워한다면 그냥 해보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두려운 이유가 그냥이면 그냥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이티백 유빈님 모셨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트업 하고 있는 김유빈이라고 합니다.

스타트업 하고 계신다라고 표현해 주셨는데 몇 년 차세요?

스타트업을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예비 창업부터 시작했던 건 사실 7년째인데 근데 지금 뭐 법인 설립하고 시작한 거는 5년 정도 됐어요.

어쩌다 IT 쪽으로 창업을 결심하셨어요?

처음에는 IT쪽에 전혀 생각이 없었던 그냥 경영학부 학생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스타트업 해커톤 캠프라는 학교에서 했던 해커톤에 참여를 했어요. 그래서 그때 지금의 공동 창업자를 만나게 돼서 그때부터 IT쪽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IT에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해커톤에 참여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그것도 좀 사연이 긴데요. 처음에 학교에서 인턴십을 신청을 했었는데 그래서 전화가 와서 인턴십을 못한다라고 하신 거예요. 다 합격을 했었는데 취소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왜 그러죠? 했더니 이전에 제가 했었던 스타트업 인턴십이랑 학습 번호가 겹친대요. 근데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인데 학교에서 이거를 인턴십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묶어 놨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이걸 두 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던 거잖아요. 그래서 전산상의 이유로 두 번 할 수 없다고 해서 학교에다가 그러면 제가 뭘 할 수 있냐 했더니 마침 이번에 새롭게 스타트업 해커톤 캠프라는 게 열리는데 이걸 해보지 않겠냐 해가지고 지원을 했다가 돼서 그 해커톤에 참여를 하게 됐는데요. 그때부터 IT쪽은 처음으로 접하게 되고 시작을 하게 됐어요.

보통 대학생들이 대학생 때는 마케터 해야지 이런 게 있잖아요. 그런 게 있으셨어요?

저는 경영학부다 보니까 경영이 크게 4가지로 나뉘어서 학생들이 네 가지 진로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회계 재무 인사 마케팅 요것 중에 선택을 하거든요. 근데 제가 다 들어봤을 때 회계랑 재무는 너무 재미가 없다라고 생각을 했고 인사랑 마케팅 중에 마케팅은 뭔가 본질적이지 않다라고 그 당시에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본질인데 그때는 짧은 생각으로 ‘이거는 그냥 포장 아닌?’가라고 생각해서 마케팅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그때 그래서 남은 게 인사잖아요. 그래서 내가 사람을 이렇게 관심 있게 보고 이 사람이 이 조직에 맞는지를 내가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인가 했을 때 다른 세 가지보다는 그래도 나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어떤 회사에 인사 쪽으로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뭐예요?

제 인생에서 제가 막 뚜렷하게 뭔가를 원해서 시작했던 게 단 하나도 없었던 정말 흘러흘러에 가까운데요. 원래는 미대 입시를 시작을 했었어요. 그래서 미술을 고등학생 때 미대 입시를 하다가 수능 100일 전까지 미술학원에서 계속 하다가 학교를 입시를 할 때 제가 미대를 쓸 수 있는 한계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미술 같은 경우는 학교마다 시험의 유형이 달라 가지고 제가 지원할 수 있는 게 두 곳밖에 없어서 나머지를 뭘로 할까 하다가 예술 경영 쪽으로 하다 보니까 나머지를 다 경영으로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경영으로 썼었다가 그래도 나는 미대에 가고 싶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 경영대에 붙게 돼서 미대는 떨어지고 경영대를 붙은 거예요. 그래서 이게 뭐지 하고 경영대에 가게 됐는데 가고 나서도 경영대만 듣고 싶지는 않아서 미술 관련된 수업을 꼭 들어야겠다. 이게 학점으로 경영 전공으로 인정은 안 되더라도 들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교양 수업을 듣다가 저희 학교에 융합 디자인이라는 연계 전공과가 있는데 거기를 전공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루트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학기에 마지막 수업에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과목은 이제 사라진다. 이 전공은 사라진다라.’고 말씀을 하신 거예요.

지금 없나요?

네, 없습니다.

이름이 바뀐 거 아니에요?

아니요. 그냥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때 같이 수강하시던 저보다 고학년이었던 선배님들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그러셨는데 알아서 이제 살 길을 찾아가야 되는 거다라고 하셔가지고

그럼 그 사람들은 졸업과가 뭘로 찍혀요?

아마 그분들까지는 어떻게 융합 디자인을 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저는 그때 당시에 저학년이었으니까 그냥 내 살 길을 찾아야 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리고 그때 제가 그 학기에 또 다른 수업도 들었었는데 그 수업을 들었던 이유는 제가 수강 신청을 할 때 디자인이라고 쳤는데 치고 나서 수강 신청을 아무거나 한 다음에 제가 수강 신청 정정 기간이 초반에 일주일 정도 있잖아요. 그때 학교를 안 가고 열심히 놀았습니다. 근데 정정을 못하는 시기에 딱 갔더니 이게 뒤에가 디자인이지만 앞쪽에는 스타트업 캡스톤 디자인인 거예요. 그래서 ‘이 수업 뭐지 했더니?’ 다들 스타트업 쪽에 관심이 있으셔서 오셨고 저는 몰랐기 때문에 또 고학년 선배님들이랑 수업을 들으면서 ‘이게 무슨 수업이지?’ 하다가 이거 스타트업이구나 하다가 그 수업이 신촌에 있는 어떤 공터를 새롭게 만들면서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상권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스타트업들을 어떻게 육성할지 이런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분석해서 1등을 하면은 학교 대표로 실제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하고 하는데 그것도 된 거예요. 그래서 다들 교수님들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했었는데 좀 저는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다가 그러다 보니까 스타트업 괜찮다 하면서 스타트업 인턴십도 했었던 거고 그리고 그다음에 인턴십도 또 지원을 했었다가 떨어지고 나서 해커톤 캠프에 들어갔다가 사실 그 해커톤 캠프도 제가 너무 하고 싶어서 했던 건 아니다 보니까 제 마음가짐이 어땠냐면 반드시 뽕을 뽑겠다. 계절 학기 30만 원을 내고 하니까 저는 돈을 벌 수도 있었는데 내고 하니까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제일 먼저 도착을 하거나 5일 동안 진행되는 해커톤 캠프였는데 집에 안 가고 학교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6시에 앉아 있고 다들 오면은 왔어 이렇게 하고 다시 또 집에 안 가고 학교에서 노숙을 하고 머리도 학교에서 감고 머리 바작바작한 상태로 겨울이었거든요. 드라이기가 없어가지고 그냥 머리를 턴 다음에 가서 앉아 있거나

30만 원을 계절학기 비용으로 냈으니까 뽕 뽑아야지라고 했을 때 전기세 수도세로 뽑는 건가요? 오랫동안 앉아 있음으로써 어떻게 뽕을 뽑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어서

이게 네 학교 연합이었는데 우리 학교에 기숙사 신청 기간이 지나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재워줄 수 없지만 다른 학교 학생들은 재워줄 수 있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이게 무엇이지 하는 항의의 뜻이기도 했고 그래서 다른 학생들이 거기서 기숙사를 신청을 했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거절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가서 어떤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생활관에서 숙박을 하고 가서 앉아 있고 사실 그것도 뽕을 뽑아야지의 일종일 수도 있었고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제가 스타트업에 대한 정이 좀 떨어지고 있는 차였어요. 그러니까 스타트업을 이전에 인턴십을 하고 나서 온 거다 보니까 그냥 못 가게 됐던 거다 보니까. 그래서 내가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내 인생에서 마지막이니까 뽕을 뽑겠다.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에 대해서 전부를 알아가겠다.

예술 경영이 어떻게 보면 산업 디자인에 좀 가까웠던 걸 꿈꾸셨던 건데 고등학교 때 예체능이셨어요?

아니요. 고등학교는 또 공부를 해서 들어갔는데 들어가고 나니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지 찾다 보니까 이쪽으로 가게 됐는데요. 사실 이전에도 계속 미술에 대한 꿈은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디자이너셨어가지고 절대로 이 길은 안 된다 하고 그래서 그때 5살 때부터 저는 미술 디자인 이쪽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저한테 만약에 네가 미술을 너무 하고 싶으면 저희 집 베란다에 이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베란다에 이젤에 스케치북을 큰 걸 놔줄 테니까 그 두꺼운 스케치북을 선으로 다 채워서 이 선이 완벽해지면 시작하게 해줄게라고 하셨어요. 저는 5살짜리 애기가 이걸 하고 싶지 않잖아요. 저는 그냥 공주님 그리는 게 재밌었을 텐데 그래서 아빠 미워 이거 아니야 하고 그때 안 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걸 안 하면 너는 시작을 못한다 라고 하셔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라고 하셔서 시작을 못 했다가 그리고 계속 공부만 하다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지라는 거를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내가 원하던 게 이건가 하다가 중간에 그림을 그리면서 좀 쉬게 됐는데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너무 자유롭고 이거다. 난 이걸 하면서 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그때 아버지 어머니한테 하고 싶다 나 미술을 하고 싶다 하면서 엉엉 울면서 밥 먹다가 갑자기 숟가락 내려놓고 나 이거 하고 싶어요.

운명의 해커톤, 그 해커톤은 어떻게 운영됐던 거예요?

그때 당시에 서울대, 이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네 학교가 연합으로 진행을 했었고 각 학교에 창업 관련 교수님들께서 오셔 가지고 각 학교만의 커리큘럼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짧게 짧게 강의를 해 주시고 그리고 전반적인 프로세스는 이랬어요. 처음에 팀 빌딩을 하고 스타트업을 정말 하나 만드는 것처럼 팀 빌딩하고 아이디에이션 하고 내부적으로 실제로 프로덕트를 만들어보고 광고를 돌려보고 데모데이를 해보고 모의 투자 같이 받아보는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까지 하는 그런 프로세스를 진행을 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동업자분을 거기서 만나신 건데 그럼 어떤 부분에서 갑자기 꽂혔어요?
사실 그 동업자도 약간 괴짜 같은 경향이 있어요. 지금도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그분 같은 경우에는 원래 수강 신청을 하려다가 까먹고 못 한 거예요. 그래서 교수님한테 ‘교수님 저 까먹었는데 이 수업 너무 듣고 싶습니다’라고 해서 스텝으로 온 학생이었어요. 그리고 오셔가지고 하셨던 게 이제 사진을 찍어주고 나눠주고 안내해 주고 그런 역할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만약에 같이 참여를 했었어도 다른 조였으면은 그냥 서로 못 만나고 끝인데 그분 같은 경우는 이제 전지적으로 이렇게 보다 보니까 그 촬영 레이더에 딱 걸린 거죠. 사진 찍다가 이 사람 뭐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왜 맨날 앞에 앉아 있지? 마지막 날에 다 같이 학생들끼리 뒷풀이를 하자 우리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그래서 신촌에 있는 어디 막걸리집에서 뒷풀이를 하게 됐는데 그랬더니 저한테 잠시만 와보시라고 해가지고 어 뭐지? 나 좋아하나 이렇게 했는데 그게 아니고 왜냐하면 자꾸 두리번 두리번하니까 그게 아니었고 사실 제가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같이 해보시겠냐고 해가지고 그때 고민을 잠깐 해봤어요. 근데 나쁠 것 같지 않아서 왜냐하면 그분도 제가 봤을 때 약간 정상인의 눈 반짝임을 벗어나서 약간 눈이 그냥 조금 돌아 있는 광인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저 사람이 하는 거면 재밌겠다라는 생각도 했었고 그리고 그때 당시에 같이 하던 형도 그 해커톤 캠프에 참여를 했었는데 형이랑 제가 같은 조였어요. 근데 형과 본인이 매일 거의 싸우다시피 의견 개진을 했었는데 제가 그 형이랑 거의 싸우다시피 의견 개진을 하는 걸 보면서 우리 팀이랑 정말 잘 맞겠다 어떤 수용하는 그런 자세가 아니고 이게 더 나은 것 같은데요. 하면서 서로 보드마카 뺏어가면서 이야기하는 게 독특한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대요. 근데 또 저도 생각을 해보니까 나쁘지 않은데 뭐 와이 낫 해가지고 시작을 하게 됐죠.

처음에 제안을 받을 때 어떤 사업을 하자라는 거 없이 그냥 우리랑 하자, 나랑 같이 하자 이 제안을 받았는데 오케이를 했다는 거예요?

그쵸. 사실 그들이 원래 말했던 거는 저희가 지금 이미 이런 것도 하고 있고 한데 같이 하시겠습니까라고 했었는데 일단은 그럼 제가 그다음 주에 하고 계신 곳으로 갈게요 했는데 저한테 말씀해 주셨을 때는 이미 사무실도 있고 자기들은 이미 진행이 됐다라고 말했는데 가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사실 사무실이라고 했던 것도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안에 있는 작은 카페 앉아 있다라는 거였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 보니까 그렇게 크게 진행이 안 돼 있었어요. 그러니까 정말 개발로서의 테스트 정도가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그래서 막상 가보니까 아무것도 안 돼 있는데 오히려 좋다 같이 이제 시작하면 되겠다라고 해서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초창기 멤버 3명 맞나요?

네, 형이랑 사진가 분이랑 형님 저랑 3명이 시작을 했다가 그 형은 나중에 본인이 더 하고 싶은 다른 아이템이 있어서 저희가 여러 가지 아이템 중에 지금의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다른 나왔던 다른 아이디어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분은 나가셔서 지금 다른 걸 하고 계시고 저희는 이걸 하고 있어요.

지금 창업한 서비스는 어떤 거예요?

폼 빌더라고 해서 폼을 만드는 사스(SaaS)인데요. 보통은 구글 폼이나 이런 폼 만드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근데 저희의 차별 포인트가 뭐냐라고 하면 기업에서 사용하기 더 좋게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있는데 구글 폼 같은 경우에는 되게 가볍게 쓰기 좋지만 기능 자체가 사실은 응답을 받고 보는 거 정도밖에 없잖아요. 근데 기업에서는 워낙에 고객들에 대한 데이터도 봐야 되고 하다 보니까 조회수나 이탈률이나 혹은 어떤 히든 필드라고 해서 다른 기능들도 추가하고 그리고 가장 킥은 보안에 많이 초점을 맞췄어요. 그래서 보안적으로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아니면 어떤 인증을 꼭 받아야 되는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런 인증까지도 다 맞춰줄 수 있는 규격을 가지고 있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서비스의 이름이 뭐예요?

왈라(walla) 입니다.

왈라가 글로벌적으로 조금 더 파워풀해질 수 있는 포인트가 뭘까요?
저희가 다른 구글 폼처럼 다른 서비스들도 물론 있지만 우리나라에 그 어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이 인증을 받아야 되는 게 있거든요. IMSP라고 해서 예를 들어서 앱으로 치면은 100만 다운로드 이상이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그런 인증이 있어요. 근데 그 인증에 이제 포함되는 준수해야 되는 요건 중에 하나가 데이터를 데이터라고 하면 이제 고객의 개인 정보를 국내에 저장을 해라. 근데 만약에 저장을 하지 않을 거면 국외 이전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구글 폼을 만약에 쓰는 상황이면 우리가 구글 폼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외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거가 괜찮아라는 거를 이제 항상 받아야 되는 거죠. 근데 이런 과정들이 사실은 굉장히 번거롭기도 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지에서도 국외 이전 가능 여부 이런 것들이 조금 무겁고 좋지 않기 때문에 또 있어요. 그래서 그런 모든 여러 가지 보안 요건들 중에서도 사실은 데이터에 대한 저장 위치 리전이라고 하는데 그 위치가 중요한데 리전을 한국으로 설정을 하거나 혹은 다른 나라 사람이면 다른 나라에 저장할 수 있도록 리전을 멀티 리전이라고 해서 여러 리전으로 분산시켜서 데이터 센터를 여러 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내부적인 역량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한테 인기가 많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처음에는 왜 이 기업이 연락을 했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처음에 저희가 만들고 나서 얼마 안 있을 때 되게 이름 있는 기업들에서 이거 써도 되냐 이런 거 가능하냐 하면서 왔는데 처음에는 뭐지 우리가 만든 게 뭐가 좋았지를 정말 몰랐는데 한 1년쯤 지나니까 이러이러한 보안 요건들이 다 가능한가요라고 한 100가지 질문이 여러 기업한테서 온 거예요. 근데 다 겹쳤어요. 그러니까 그 보안 요건이 ISMP라는 인증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는 거였는데 이것들을 준수를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하나씩 맞추다 보니까 이제는 다 되게 됐고 그 기업들 같은 경우에는 만약에 저희 거를 안 쓰면 그리고 만약에 구글 폼을 쓰는데 그런 동의를 받지 않거나 그러니까 그냥 무방비 상태로 만약에 그냥 살아간다면 영업 정지가 됩니다. 영업 정지를 당해요. 국가로부터 국외 이전에 대한 동의를 정확히 받지 않거나 혹은 무방비 상태로 그냥 그대로 사용을 할 경우에는 심각할 경우에는 그런 제재까지 가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이거 다 돼요?라고 들고 찾아올 수밖에 없는 거였고 저희는 이걸 맞춰주면 되겠다라는 생각이었고 그리고 이런 인증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고 다른 나라들의 그런 여러 이전에 있었던 사례들을 바탕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제 이런 인증들을 찾아야겠다. 우리나라랑 이런 요건이 비슷한 곳이 어디일까라고 찾다 보니까 아시아 쪽 그리고 중동 쪽이 많이 비슷했어요. 그 데이터에 대한 국가의 어떤 통제에 대한 그런 니즈가 있는 기업 국가 기관들 같은 경우에 그렇게 니즈가 있다 보니까 그래서 저희도 그쪽에 맞춰서

지금은 정책이나 기준들을 계속해서 디벨롭해가면서 오늘이 왔지만 처음에 이런 서비스를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할 때는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처음에 이런 서비스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거는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을까요?

사실 저희가 이전에는 데이터를 모아주는 앱을 했었어요. 쉽게 말해서 앱 테크인데 뭔가 사진을 찍고 이미지에 대한 위치를 저장하면 하나당 한 500원 이렇게 주는 그런 앱테크 미션 앱테크를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당시에 저희가 그 미션을 받고자 했었던 어떻게 보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저희의 미션 받는 창구에 가까웠어요. 처음에는 그래서 저희가 많이 유명해졌었던 게 그때 당시에 수원에 떼까마귀라고 해서 까마귀가 떼를 지어 다니거든요. 근데 이게 수원시에도 문제였고 이걸 연구하고 계시는 마침 그때 서울대학교 때까마귀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계셨어요. 송영근 교수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때 당시에 수원시에서는 이게 계속 새가 앉아 있으니까 새똥이 떨어지면 이게 부식이 되기도 하고 되게 더러워지기도 하고 그리고 새가 앉아 있는 그 전깃줄이 끊어지면 이제 사고가 나기도 하고 하다 보니까 이걸 다 퇴치를 해야 되는데 겨울이 되면은 이제 추우니까 주변에 낮에 화성시 이런 쪽에서 막 쪼아 먹고 논밭에 이제 떨어져 있는 그런 거 쪼아 먹고 따뜻한 수온으로 오는 거예요. 구시가지에 있는 전봇대에 이렇게 졸졸졸 있었는데 그것들이 문제가 되다 보니까 처음에 저희가 앱테크를 시작할 때 이걸로 처음 시작해 보자라고 해서 수원시한테는 저희가 이 데이터를 다 그러니까 이 떼까마귀를 퇴치할 수 있도록 저희가 지도를 만들어서 떼까마귀 퇴치관이 있었거든요. 그 퇴치관 분들한테 드려서 지금 당장에 떼까마귀가 어디에서 어디로 갔는지 이동했는지를 다 보여드리겠다라고 하고 때까마귀 교수님한테는 저희가 사람들이 떼까마귀 데이터를 찍어서 보낼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계속 데이터를 쌓아줄 테니까 돈을 주세요 해가지고 수원시에서는 홍보를 해 주시고 서울대학교에서는 돈을 주셔가지고 저희는 홍보력과 자본력으로 처음에 그걸 시작하게 됐는데 이게 너무 성공적이어서 한 3년을 그걸 계속했어요. 그리고 나서 떼까마귀가 좀 퇴치가 됐었어요. 실제로 그래서 제가 논문에 공저자로 들어가 가지고 떼까마귀가 퇴치 됐다 이게 이동을 했다까지 갔는데 그러다가 이 떼까마귀 친구들이 까마귀잖아요. 굉장히 똑똑하거든요. 그래 다시 돌아왔어요. 그래서 평택이랑 이쪽으로 다 갔다가 최근에 보니까 다시 뉴스에 나오는 거예요. 다시 요즘에 또 돌아왔다는 소식이 있어서 다시 연락을 드려볼까 해요.


앱테크로 시작해서 거기에 데이터를 받기 위한 도구였을 뿐인 이것이 독립적인 주인공으로 탄생하는 순간이 있을 거잖아요. 그건 어떤 계기였어요?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어떻게 보면 이미지 플러스 위치 데이터라는 비정형 데이터의 로우 데이터 자체가 누구에게 팔릴 것이냐 했을 때는 연구실이나 아니면 국가 기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환경부나 아니면 연구실들이랑 일을 했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 예를 들어 저희가 했던 게 벚꽃의 개화 시기 혹은 수목의 겉에 나무 껍질에 대한 이미지랑 위치 뭐 이런 식으로 이미지랑 위치에 대한 조합으로 판매를 하다 보니까 이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엄청 많은 경우는 아니었어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은 더 커질 수 있지 정말 기업에서 원하는 데이터가 뭘까라고 생각을 했을 때 기업한테 진짜 물어보니까 기업은 사실 이미지 플러스 위치 데이터를 안 보고 싶은 거죠. 그렇게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럼 기업은 무슨 데이터가 제일 중요하지라고 보니까 고객 데이터가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럼 고객 데이터는 어떻게 모으지 했더니 구글 폼으로 모으고 있는 거예요. 구글 폼은 만족스러운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근데 그중에 가장 처음으로 제 공동 창업자가 말했던 건 구글 폼은 예쁘지 않다였어요. 근데 저는 제가 미술을 공부를 하면서도 저는 그냥 예쁘고 예쁘지 않다는 저한테는 와닿지가 않는 거예요. 그냥 기능적으로 완벽한데 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 공동 창업자가 한 번만 믿어달라 이게 예쁘지 않아서 이걸 예쁘게 바꾸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야라고 하면서 그때 당시에 구글 폼을 파싱해 올 수 있는 구글 폼 링크를 넣으면 왈라 폼으로 바꿔주는 조금 예쁘게 바꿔주는 그런 사이트 하나를 운영을 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고 구글 폼을 월라폼으로 바꿔줄 수 있는 빈칸만 존재하는 그런 거였는데 그때 당시에 그렇게 해서 왈라로 바꿔서 유입이 꽤 많이 된 거예요.


어떻게 홍보를 하셨어요?

사실상 홍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에 너무 초기였기 때문에 구글 폼을 그냥 변환하는 구글 폼 변환기 그리고 네이버 폼을 또 변환하는 네이버 폼 변환기 이런 식으로 만들었었는데 그리고 나서 저희 첫 번째 고객이 삼쩜삼이었어요. 유입이 정말 운 좋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삼쩜삼이 처음에 딱 들어왔을 때 저희는 그냥 이게 예뻐서 썼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었죠. 나중에 삼쩜삼에서 이것도 되나요? 이거 왜 안 되나요? 이거 이것도 하게 해 주세요 해가지고 거기서 엑셀 파일로 막 정리를 해서 보내주셨어요. 근데 저희는 그때 다 안 되고 너무 죄송하고 이럴 거면 그냥 다른 폼을 쓰시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끝까지 안 가시는 거 왜 그래서 정말 여기 턱밑까지 타입 폼쓰세요. 여기까지 들어와 있었는데 안 가시길래 뭐지 이러면서 그냥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을 했으니까 필요하다고 하는 걸 다 아주 스펀지처럼 흡수를 한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그냥 우리는 삼쩜삼이 필요한 걸 만들자라는 게 됐어요. 저희의 어떻게 보면 엄청난 페르소나였던 거죠. 그래서 삼쩜삼에서 종합소득세 관련해서 마케팅을 한다 했을 때 그 마케팅에서도 만족도 조사에도 쓰이고 아니면 이벤트 폼으로도 쓰이고 그래서 금 한 돈 이벤트 이런 것도 다 만들기 시작하고 하다 보니까 이게 단순히 그냥 어떤 신청에 대한 폼이 아니고 만족도 조사도 돼야 되고 퀴즈도 돼야 되고 뭐도 돼야 되고 뭐도 돼야 되는 어떻게 보면 인풋 하면 아웃풋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한 그 값이 항상 바뀌어야 되는 만능이 돼야 되는 거예요. 하다 보니까 이게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할 때쯤에 쏘카라든가 비슷한 서비스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이게 뭐지 왜 그러지 우리를 왜 쓰지 하다 보니까 보안이구나 다 비슷한 규모였거든요. 보안이구나 해서 그때부터 딱 가닥을 잡고 이건 예쁨이 중요한 게 아니고 보안이다 해서 그때부터 보안을 신경 썼죠.

공동 창업자는 직무가 뭐예요?

개발입니다. 근데 공동 창업자는 조경학과여가지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미적인 분야이기도 했어요.

그때 삼쩜삼이 들어왔을 때는 유료로 쓰거나 했던 거예요?

삼쩜삼이 들어왔을 때 돈을 받아야 되는데 저희가 갖추고 있는 게 너무 적으니까 아 얼마지 하다가 삼쩜삼? 3만 3천 원? 해서 3만 3천 원을 받았어요. 한 달에 월 구독료 전사가 사용하는 걸 3만 3천 원을 받았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변환밖에 못하는 게 변환이랑 객관식 주관식밖에 없는데 쓰시니까 이거 뭐 구글 폼보다 나은 게 뭐지 근데 구글 폼 무료인데 우리는 얼마를 받아야 돼 하다가 3만 3천 원에서 그때부터 3만 3천 원 받던 게 작년까지 계속 3만 3천 원으로 물론 다른 더 훨씬 예를 들어 저장 공간이나 이런 것도 더 추가되는 플랜도 있었는데 초반에는 완전 기본 3만 3천 원이에요.

첫 고객 아직도 계세요?

네, 처음에는 정말 하나를 위해서 썼다가 폼 하나를 위해 썼다가 지금은 전사에서 사용을 하셨다고 하시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또 어떻게 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작년에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창업하고 처음부터 계속 매출이 있었겠네요.
그렇죠. 처음에는 이 법인으로는 아까 말씀드렸던 앱테크를 했었어 가지고 연구실이랑 계약을 하면서 그랬었고 그 이후에 왈라 처음에 시작하면서는 다시 앱 테크를 안 하게 되니까 딱 뚝 매출이 끊겼다가 그냥 버티자 그러고 버티는 상황이었고 최근까지도 사실은 계속 버티는 상황이었어요. 고객들이 막 들어오기 전까지는


서비스가 쭉쭉 성장하는 즐거운 이야기 중심으로 했는데 어려움도 분명히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창업을 하고 나서 앱테크를 하고 나서 왈라를 하게 된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두 번째니까 더 진짜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최대한 뭔가 빨리빨리 진출을 한다면 빨리 진출을 하고 하는 게 맞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초반에 국내에서 고객들이 많이 유입이 될 때쯤에 지금쯤 해외를 가야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그러면 사스(SaaS)다 보니까 사스의 본고장인 북미 쪽을 가자 가 있었는데 미국은 워낙에 비자도 안 나오고 하니까 저희는 직접 가서 다 같이 회사 사람들이 가서 살 곳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때 5명이었는데 5명이 북미 쪽에서는 살았던 경험이 없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그들을 위해서 뭘 해줄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거면 그냥 다 같이 가자가 됐고 그래서 캐나다를 선택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캐나다가 미국이랑 많이 붙어 있고 가깝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캐나다에 가자 가 돼가지고 다 같이 캐나다로 이주를 하게 됐는데요.

그게 언제예요?

2023년 하반기예요..

이주라는 게 어떤 의미예요?

다 같이 짐 싸서 집을 구해서 사는 거였어요. 그때 당시에는 오타와라고 하는 캐나다 수도가 있는데 거기서 좀 많이 도와주셔가지고 캐나다 자체는 사실 스타트업이나 아니면 외국인이 오는 거에 되게 관대한 상황이었어서 과학기술인이 오는 것을 환영하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 초반에는 그냥 정말 관광 비자 이런 걸로 갔다가 비자를 바꾸는 것까지 알아보고 이렇게 했었던 상황이었죠.

대단하네요. 직원들이 다 동의를 했어요?

네, 다 같이 가자 그래서 그때도 처음에 어떤 나라를 가야 할지부터 같이 상의를 해가지고 처음에는 아예 그냥 스타트업들이 많이 가는 싱가포르나 이런 데를 갈까 그럼 그 시장이 우리한테 맞는 시장일까 이런 것도 다 같이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북미를 가보자라고 해서 북미를 선택을 했던 거고 가서. 근데 막상 살다 보니까 사실은 캐나다에 지금 그때가 온타리오 주에 오타와라는 데를 갔는데 거기가 우리가 살던 서울이랑은 많이 다른 상황이었어요. 집과 집 사이의 거리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다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고 그리고 그때 저희가 있었던 곳이 캐나다는 프랑스어랑 영어를 같이 하는데 오타와는 수도다 보니까 두 가지 언어를 무조건 같이 쓰는 곳이에요. 그래서 예를 들어 물 하나를 사도 물에 프랑스어랑 영어가 같이 써 있고 어떤 설명도 다 같이 써 있는 그런 곳이라고 보면 돼요. 저희가 있었던 곳이 퀘벡 쪽이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거기가 집값이 싸서 거기를 구하게 됐는데 퀘벡 쪽이니까 프랑스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말귀도 알아듣기가 너무 어렵고 코스트 고 하면 다 프랑스인 같은 분들인 거죠. 그래서 되게 신기하다 하면서 그때 어떻게 해야 되지 이 이거 적응을 어떻게 해야 되지 하면서 다 같이 살았었고 그래서 다 같이 출근하고 다 같이 퇴근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마치 우리나라의 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오타와에 그런 게 있어가지고 거기에 오피스가 있었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하게 됐는데 하다 보니까 아차 싶은 거예요. 이 방향성이 아닌가 보다. 왜냐하면 갔을 때 이미 북미는 사스에서는 완성 그 이상이었어요. 성숙기를 지나서 이미 100개 천 개 이상의 사스(SaaS)들이 아주 많이 있었고 그들도 이미 그거에 어느 정도 지쳐 있는 상황이었고 새로운 거 왜 뭐가 나왔는데 이런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은 정말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나 혹은 아시아처럼 보안이라든가 어떤 소구 포인트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었어요. 그냥 쓰겠지라는 막연한 자신감이었던 거예요. 근데 막상 가보니까 이건 너무 오만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해야지 다시 더 잘 되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골머리를 앓다가 보니까 보안 그리고 우리나라랑 비슷한 다른 나라 하다 보니까 지금의 전략을 가지게 된 건데 그전에는 사실 많은 우울감과 이게 틀렸구나 나의 선택이 틀렸구나라는 그런 걸 받아들이는 데까지 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작년 말에 받아들인 것 같아요.


캐나다에는 얼마나 오래 계셨어요?
저는 왔다 갔다를 한 상황이었고 저희 팀원들은 팀원들도 왔다 갔다를 했는데 캐나다에 작년까지도 사람이 계속 있었으니까. 지금도 사실은 캐나다에 사무실이 있고 한국에서는 외국인들한테 돈을 받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금융이 어떻게 보면 갈라파고스 같은 상황이라서 예를 들면 토스페이먼츠 아니면은 KG 이니시스 이런 걸로 외국인이 결제를 하는 프로세스가 없다라고 봐야 돼요. 우리나라에서 그걸 허락을 안 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스트라이프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아주 쉽게 될 일인데 스트라이프를 못 들어오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에는 북미든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이 결제를 하는 서비스가 돼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그거 자체가 안 되니까 그냥 스트라이프를 캐나다 법인이랑 연결을 해서 지금은 아예 그냥 스트라이프를 쓰고 있어요.

대표로서 소수이긴 하지만 팀원들과 함께 먼 나라에 갔는데 이게 실패다라는 걸 깨닫고 인정하는 게 정말 고통스럽긴 했을 것 같아요. 어땠어요?
스멀스멀 실수가 가까운 것 같아요. 인정을 안 하고 싶었다가 서서히 이게 아닌가 아닌가 왜 아무리 광고를 하던 해도 이 돈이 다 정말 어딘가로 그냥 사라지는 것만 같지 왜 이게 쌓여서 올라가는 한국 같은 그래프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같은 그래프가 계속 안 나오니까 왜 안 나오지 하다가 오히려 제가 최근에 이게 실수였구나라고 실패였구나라고 인정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게 어떻게 됐냐면 아시아 시장을 돌아보면서 아시아 쪽으로 광고를 시작했는데 그래프가 한국 그 이상으로 예쁘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아 실수였구나 이거는 실패 실패였구나라는 거를 다른 것을 보면서 더 알게 됐어요.

낭만적이었던 건 뭐예요?

낭만적이었던 거는 사실 그 도전 자체가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요. 같이 갔다는 게 사실은 저는 제가 어린 나이에 창업을 시작했으니까 저는 21살 때 했으니까 사실 누구를 책임지는 게 뭔지도 잘 모르고 시작을 했잖아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어떤 고통이 있을지도 상상을 못한 채로 시작을 했으니까 사실 저희 회사에 오시는 분들 진짜 취업을 하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정말 저보다 나이가 항상 더 많으셨고 어떻게 해야지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항상 막연했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저는 진짜 그분들이 저희 회사에 와주신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이 시간에 보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되게 강했어요. 어떻게 보면은 청춘인데 이 청춘에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정말 몇 개 없잖아요. 예를 들어 2030 해서 20년이라고 치면은 20년 동안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정말 10개가 안 될 수도 있는데 그 10개 중에 우리 회사에 다닐 수 있도록 선택을 하셨다고 그래서 그분들의 선택이 진짜 후회가 되지 않도록 나로 인해서 후회하시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되게 뭔가 나중에 다시 돌이켜 봤을 때 빛났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캐나다에 갔을 때 그 누구보다도 빛나셨어요. 정말 원하시는 개발도 마음껏 하셨고 해외에 대한 경험도 많이 쌓으셨고 하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은 그런 보답할 수 있는 시간 같은 것들이 저한테 낭만이었던 것 같아요.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하셨어요. 좀 설명해 주세요.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오컴씨가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논리는 불필요한 게 없는 것이다라는 게 오컴의 면도날이거든요. 그래서 면도날로 이렇게 막 밴 것처럼 딱 불필요한 게 없는 상황을 말하는데 제가 미대 입시하면서 저한테 남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제가 소묘를 했었거든요. 근데 소묘로 입시를 해야 되다 보니까 초반에는 제가 늦게 아무래도 입시를 늦게 시작하다 보니까 초반에는 굉장히 이제 막 선도 많이 써가면서 그렸어요. 근데 이게 그리고 나면 까만 그냥 까만 덩어리거든요. 근데 그때 당시에 저희 미술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게 가장 좋은 소묘는 선을 최대한 안 쓰고 네가 표현할 수 있는 걸 표현하는 게 가장 좋은 소묘야라고 했는데 제가 거기에 확 머리를 맞은 거였어요. 저는 최대한 어떤 요소가 많을수록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걸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 선 하나하나가 나의 어떤 설명의 부가라고 한다면 이게 덜어낼수록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거라는 거를 처음 안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오컴의 면도날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근데 이게 단순히 소묘에서뿐만이 아니고 흑연이 뭉개지면서 더러워지는 종이뿐만이 아니고 어떠한 논리 혹은 어떠한 삶의 방식에서도 없어야 되는 건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라는 생각에 제가 빠지게 된 거죠. 그래서 뭔가를 살 때도 계속 이게 있어야 돼 진짜 있어야 돼 하고 끝까지 저를 정말 끝까지 추궁을 한다거나 경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왜 네가 그냥 너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하는 거 아니야라는 걸 스스로한테 왜를 정말 많이 물어보게 됐고 그래서 왜인지를 스스로 100% 공감하는 일에만 하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이거에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게 캐나다에 가자라는 거에서 제가 왜를 만약에 저한테 스스로 100번을 물어봤으면 안 갔을 것 같은데 제가 그때는 그게 마냥 좋다고 짧게 생각한 거죠. 그 경험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왜라고 스스로한테 물어보고 불필요한 걸 하지 않는 굉장히 정제된 것의 미학을 삽입해서 찾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것이든 사실 제 책상을 보더라도 혹은 뭘 보더라도 정말 하나가 있다거나 하나가 완벽하게 있거나 아니면 없거나 그런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아니면 미대 입시할 때 선생님한테 그 말을 들은 후로 바뀐 거예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그림에만 적용을 했었는데 살면서 사업을 하다 보니까 나의 어떤 직감으로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릴 때가 정말 많은 거예요. 저는 어렸으니까 경험도 부족하니까 직감이 맞을 확률도 적잖아요. 근데 이게 맞을 거야 했는데 틀린 일이 워낙 많으니까 왜 틀렸지라고 다시 봤을 때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라는 그냥이라는 게 붙어버렸을 때 제가 오답률이 높은 걸 스스로 알게 되고 그럼 그냥을 없애보자 그냥을 없애고 왜를 스스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만 하면은 오답률이 줄어들고 그럼 우리 회사의 수명이 늘어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이 회사의 수명에 대한 그런 생존 본능 때문에 살아야 된다. 돈을 벌어야 된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아야 된다라는 그게 어릴 때부터 꾸준히 삶에서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일하면서 도전적이거나 뿌듯한 경험으로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 투자 라운드에서의 경험이라고 써주셨는데 어떤 경험이에요?

제가 어릴 때 창업을 하니까 있었던 경험인데 제가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라는 되게 큰 회사에서 초기 팀을 투자를 하는 곳에서 투자를 받게 됐는데 그때 당시에 투자를 하겠다라고 연락이 왔을 때 너무 반가웠고 너무 감사했고 착착 잘 진행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때 막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발표 장소에서 발표도 하면서 최종으로 심사도 다 끝나고 아 됐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저희 심사위원님께서 연락을 주셨거든요. 심사위원님께서는 이전에 여성 창업자셨었고 투자자가 된 분이셨는데 그분이 첫 투자를 저희를 하려고 하셨던 상황이었어요. 근데 그때 그분께서 제가 봤을 때는 유빈 대표님이 잘할 것 같은데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 입장에서는 워낙에 많은 투자를 했었고 많은 경험이 있다 보니까 제가 되게 어리고 어떻게 보면 대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하다가 그냥 경력으로 쓰고 그럴수 있지 사라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대요. 그래서 어떤 말까지 있었냐면 그냥 얘네 이번 거는 그냥 하게 스스로 알아서 살게 냅두고 이거 망한 다음에 다음 창업할 때 투자해라고 하셨다고 들은 거예요. 근데 그때는 제가 이미 왈라로 투자를 받으려고 했었으니까 이미 이전에 피봇 경험이 정말 많이 있었던 상황이거든요. 사실 앱테크와 이 사이에 많은 도전이 있었는데 사실 저는 한 번 망한 것 같기도 한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근데 이분을 그럼 어떻게 설득을 해야 될까 제가 어린 거나 여성인 거는 갑자기 바꿀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경험이 부족한 것도 갑자기 경험이 많아질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될까를 이제 고민을 하다가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편지를 썼습니다. 스마일게이트 인베스먼트 대표님께 편지를 썼어요. 남기문 대표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하면서 제가 이러이러한 점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고 어리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걱정하시는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러이러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면서 저에 대한 생각을 쭉 정리를 했어요. 그래서 한 10장짜리를 뽑아가지고 저희 담당하셨던 투자자분께 전달을 드렸어요. 이것 좀 전달해 달라 했고 그 편지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그다음 날에 하겠다라고 하셔가지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제가 살면서 어떤 어른을 설득하는 일 같은 게 그렇게 막 많지 않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정말 어떻게 보면은 어쩔 수 없는 핸디캡 같은 상황을 어떻게 극복을 할까 를 처음으로 생각해 본 경험이거든요. 그냥 나라는 이 본질 자체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그걸 그냥 돌파해 보자 했었던 첫 번째 경험이었어 가지고 그때 투자가 되게 저한테는 제 인생에서는 되게 의미가 있었던 거였습니다.

내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도전과 새로운 것들을 망설이는 분들이 되게 많은 것 같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진짜 백마디 하고 싶은데 저희 학교에서 학교 기술지주라고 투자 회사가 있는데 거기 대표님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말씀을 해 주셨던 것 중에 이대에 학생이 창업을 하는 게 너무 적다 라는 말을 해 주셨어요. 그리고 여자가 창업하는 것도 너무 적다라고 하셨는데 그때 제가 그 말을 듣고 계속 곱씹으면서 왜 적을까를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정말 적긴 하거든요. 제가 지금 이 바닥에 한 7년 정도 있으면서 남자가 대부분이고 여성을 만났다면 굉장히 럭키한 경우에서 여성 대표님을 만나요. 그럼 그분은 잊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몇 명 없기 때문에 그냥 평생 알고 지내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IT 업계에서는 정말 그러다 보니까 저도 항상 드는 의문이 왜 없을까 왜냐하면 공대 진학 비율이나 이런 걸 봤을 때 거의 비슷한데 왜 없을까라고 했을 때 어떻게 보면 아직은 정답을 못 찾았는데 조금 더 도전이라는 게 그러니까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조차도 어떻게 보면 무모한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무모함을 가고 싶지 않은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조금 더 정도를 가고 조금 더 안정적인 걸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저같이 무모한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는데 왜 없을까라는 그거는 저도 아직 계속 궁금한 상황이거든요. 근데 그 이유 중에 그냥 두려워서라는 제가 싫어하는 그 그냥이 있다면 그 막연함이 있다면 오히려 그 반대로 그냥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그냥이라는 게 막지 않고 오히려 그냥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살면서 제일 잘한 일 중에 하나가 창업을 한 건데 왜 내가 이게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까라고 했을 때 그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과 대우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대표라서 대우 이런 게 아니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수적인 제한 같은 게 있을 때 예를 들어 회사 사람이 100명이면 100명 중에 한 명 누가 갈래 하면 대표를 하니까 보내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꼭 가야 된다면 그게 누구일까 했을 때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에도 그냥 21살이었는데도 그냥 네가 대표니까 가 해서 정말 막연한 이유로 갔던 적이 많거든요. 근데 그렇게 막연하게 갔을 때 배운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도전하지 않았다면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것 같은 것들도 다 알게 되다 보니까 이게 안 하고 몰라서 지나가는 것보다는 해보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인 거죠. 그래서 여성 창업 자분들 혹은 예비 여성 창업자분들도 도전을 두려워한다면 그냥 해보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그냥 무섭다면 그냥 해봐라.

그 이유가 그냥이면 그냥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냥 대 그냥이면 포지티브(Positive) 그냥 이긴다.

오컴의 면도날이 그렇게 중요한 유빈님이 아이티백을 잘라내지 않고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여성 플러스 창업 IT 이쪽에 기회가 있으면 전 다 가거든요. 왜냐하면 저 같은 사람이 더 많아져야지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저희 학교에서 창업 여성 창업자면 자꾸 저를 부르세요. 근데 학생 창업자가 저는 더 이상 아닌 지가 너무 꽤 오래됐는데 또 저를 학생 창업자처럼 부르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안타깝고 왜 친구들이 그다음 그러니까 정말 예비 창업자를 넘어서 법인도 차려보고 망해보기도 하고 하는 거를 계속했으면 좋겠고 근데 그런 걸 하려면 자꾸 어떤 트리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이런 건 주저하지 않고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 이건 오컴의 면도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라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얘기 이렇게 많이 나눠봤는데 아이티백 같이 해본 소감 어떠세요?
너무 따뜻한 시간이었고요. 들어주시는 게 너무 따뜻한 느낌이어서 너무 감사했고, 사실 제가 어디서 제가 이렇게 깊게 앉아서 얘기하는 게 많지 않은데 있더라도 강의 강연 이런 데서 얘기하면 사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거다 보니까 막 풀려서 얘기하는 건 많지 않은데 저의 바닥 끝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REDIT

오잉

인터뷰 오잉, 뚜까, 써니


인터뷰 전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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