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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티백

무던한 스스로가 좋아요.

4년차 서비스 기획 & 프로덕트 매니저, 채채

by 아이티백
자소서에 썼던 꿈이 사회가 가스라이팅한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0부터 재정의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뭐라도 해봐야 내가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알겠구나 생각을 했을 때 친구들이 자기가 잘하는 걸 보여주니까 소거하는 것 자체가 막막함을 줄여주는 장치였던 것 같아요.
저는 무던한 스스로가 좋아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편하게 느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자신 있어요. 내가 이 사람한테 호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특정 부분이 있을 텐데 그 외의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요.
가능성이 없어지는 상태보다 막막한 상태가 제일 괴로웠던 것 같아요. 내가 빨간색을 좋아하는지 노란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는 스스로가 너무 미우니까 막막함으로 머무르는 것보다 나의 가능성이 좁혀지고 뾰족해지는 과정이 오히려 더 나았던 것 같아요.


채채님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채채라고 하고요. 지금은 한 6개월 좀 넘게 백수인 상태이고 너무 최고의 삶을 살고 있고 그전에는 3년 반 동안 서비스 기획자이자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을 했습니다.

백수 되신 지 6개월이신데 소감 조금만 더 길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적성이고, 백수 라이프가 너무 행복하고 근데 또 이게 제가 다음을 이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그럴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그래서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 있어서 행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만족스러운 백수 생활을 하고 계신 채채님은 커리어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일단 대학교 때 신문 방송학이 주전공이었는데 학교 들어가서 꽤 머지않아서 나는 이것만으로 삶을 꾸려갈 수 없겠구나라는 걸 감각적으로 깨달았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냐면 제 주변 친구들이 자기 분야를 너무 잘 대변하는 친구들이었어요. 이런 애가 광고하겠구나 이런 애가 영상하겠구나 이런 애가 연극하겠구나 이게 너무 빨리 느껴져서 진짜 그 친구들 덕분에 덤덤하게 하나씩 소거할 수 있었어요. 제가 취향이 엄청 뚜렷한 사람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것들이 소거법으로 선택을 이건 아닌 것 같고 저건 아닌 것 같고 그럼 뭘 하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때 융합 소프트웨어라고 제가 16학번인데 그때쯤부터 컴공을 복전하거나 아니면 문과생들에게도 소프트웨어로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저희 학번 때부터 문과생들도 기초 파이썬은 배워라 이런 교양 과목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때 필수 과목이었던 기초 파이썬 수업을 들었던 게 재밌었다라는 그러니까 친구들만큼 힘들지 않았다. 그냥 딱 그 기억 하나로 왜냐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 과목만 더 들어보자 했던 게 융합 소프트웨어라는 세미 컴공 같은 거거든요. 컴공까지는 못 가고 그 중간 정도의 그거였고 그거를 전공을 복수 전공을 하게 됐죠.

신문방송학과에서 복전을 이과 쪽으로 잘 하지 않는데 어쩌다 세미 이과 계열로 복수 전공하시게 됐어요?

아예 신문방송학 과 뭔가를 복수 전공한다 이런 개념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이제 뭐 하고 살지라는 걸 아예 0부터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도 취향이나 뭔가가 뾰족한 사람이 아니었어서 뭔가라도 내 취향이 드러나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아까 얘기했던 기초 파이썬 그 과목이 재밌었던 건 내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그래도 조금 더 달랐던 부분인 것 같아를 지푸라기 잡듯이 잡았던 거죠. 근데 다행히 그게 재밌었어요. 그 공부가 재미있었는데 그게 또 컴공만큼의 깊이는 아니니까 내가 배우는 C언어, 네트워크, 자바 이런 것들이 서비스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고 그냥 그런 이론적인 공부들만 학부에서는 했던 거죠. 완전 이론적인 것들만 하고 어쨌든 2학년, 3학년이 넘어갈 때쯤에 그걸 시작을 했으니까 프로젝트나 이런 걸 경험하지 못한 채로 졸업을 해서 내가 개발자를 해야 되는 건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업계에는 가야 될 것 같다라는 그 막연함을 가지고 졸업을 하고 개발 교육들을 좀 들었어요. 포스코에서 하는 데이터 교육도 들었었고 삼성에서 하는 웹 개발 교육도 들었는데 그걸 들으면서 ‘아, 아니다.’ 개발을 내가 업으로 할 수는 없겠구나 하는 걸 진짜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아요. 비전공자 반으로 들어갔다가 전공자 반으로 전환이 되었는데 제가 어쨌든 세미 컴공 같은 걸 했으니 완전 기초부터 배울 건 아니어서 그렇게 전환이 됐는데 전공자 친구들 사이에 있으니까 실력적으로도 실력적이지만 뭔가 그들의 심장 뛰는 모습을 제가 따라갈 수가 없는 거에요.

그게 어떤 의미에요? 심장 뛰는 모습이

예를 들어서 제가 버튼을 누르면 이 화면으로 넘어간다 이런 개발을 하잖아요. 저는 그거를 최적화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친구들은 이걸 눌렀을 때 어떻게 빠르게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지에 대해서 흥분하면서 토론을 하고 알고리즘을 어떻게 하면 이게 더 나아질 수 있고 이런 고민을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거예요. 내가 이걸로 취업을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과 비교해 보면 이게 나한테 베스트 직업은 전혀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그때 엄청 많이 했고 그 대신 나는 그래서 이게 만드는 의미가 뭔데 이게 사람들한테 뭐가 재미있을까 뭐가 좋을까를 고민을 하는 편이라는 걸 그때 프로젝트를 하면서 깨달았고 그거를 같이 프로젝트 하는 개발자 친구들이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너는 기획이 잘 맞는 것 같다. PM이 잘 맞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저는 그전까지 PM이라는 게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는데 친구들이 네가 하고 있는 이런 고민들이 PM이 하는 거다라고 같이 교육을 들었던 친구들이 얘기를 많이 해줬죠.

친구들이 채채님을 밀어내려고 한건 아닌가요?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랬을지도 몰라요. 근데 고맙죠. 그래서 저는 친구들한테 참 고마운 것 같아요. 좋은 친구들이 진짜 많네요. 그 어린 나이에도 자기 분야들을 굉장히 잘 대변해 주는 친구들이 제 주변에 많았던 것 같고 그래서 또 소거를 한 거죠. 오케이 개발도 아니고 그러면 이제 남은 것 중에 뭐지 하면서 그때는 기획을 해볼까 하고 그리고 개발 교육을 빨리 나가고 싶었어요. 너무 그만하고 싶고 이거 어차피 나 개발자 안 할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이거를 그거를 지적하는 게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기획쪽으로 취준을 시작을 해서 첫 회사를 스타트업으로 들어가게 됐고 그때는 체험형 인턴으로 들어갔는데 어쩌다 보니 3년 반을 다니고 나온 회사에서

체험형 인턴으로 들어가서 정규직 전환돼서 계속? 일을 잘하셨나 보네요.
그랬나 보죠. 일단 드디어 찾았다라는 생각을 거기에서 많이 했어요. 기획 인턴이라는 기회 자체가 잘 없잖아요. 기획은 경험이 결국에는 스펙이 되는 것이다 보니까 그런 기회를 준 것도 너무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을 했고 들어가서 한 6개월쯤 일했을 때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다 같이 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계약이 끝날 때쯤에 오픈을 하는 시기였어요. 그때는 정규직 전환이고 뭐고 모르겠고 그냥 이거 오픈하는 거는 보고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되게 재밌다고 느꼈고 그래서 인턴으로 좀 더 연장을 하고 한 1년 정도 인턴을 한 다음에 정규직 전환이 돼서 오래 다녔죠.

아까 소거하는 편이라고 했잖아요. 그 회사에서는 채채님보다 잘 하는 기획자 없었나요?

있었죠. 그러니까 거기서는 생각해 보면 소거를 했던 그 경험들은 아예 나랑 방향성이 다르다 이런 것들을 소거했던 것 같고 나보다 더 잘하는 기획자들을 봤을 때는 저렇게 내가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거를 배워야겠다 이런 식으로 입력이 됐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마음이 어땠어요? 보통은 내가 신방과를 들어갔는데 누가 봐도 신방과에 잘 왔다 이런 사람들이 눈에 보이면 거기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되지? 괴로울 수도 있고 개발을 전공했을 때도 누가 봐도 이 사람은 개발에 미친 사람들인데 나는 아니야 그러면 나는 또 어디를 찾아가야 되지 하고 괴로울 수도 있는데 지금 채채님이 얘기하는 걸 들어서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소거한 것 같아서 실제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사실 제가 대 2병이라고 부르던 시기가 있는데요. 중 2병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통용되는 단어인데 대학교 1학년 때는 새내기가 됐고 입시 나 열심히 했으니까 보상 심리로 열심히 놀고 나서 대학교 2학년 되면 어쨌든 고민을 시작해야 되잖아요. 나 이제 어떤 직업을 가져야 되지 할 때 그때 시기에 대학생들이 느끼는 막막함 방황의 시기를 대 2병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저는 그 시기를 스스로 고되게 났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는 거예요. 스스로에 대해서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없다라는 고민을 했었어요. 21살 때 그런 고민을 엄청 호되게 했었는데 그게 사실 한국 교육 때문이겠죠.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채로 그냥 그 나이가 돼버렸다는 의미죠?
맞아요. 그전까지는 나는 꿈도 있고 잘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이 다 학교를 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그때 알게 된 거죠. 내가 자소서에 썼던 꿈이 사회가 가스라이팅한 꿈이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되고 0부터 나를 재정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너무너무 힘들고 그러면 내가 뭐라도 해봐야 내가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알겠구나 생각을 했을 때 오히려 그 친구들이 자기가 잘하는 걸 보여주니까 저거 아니다라는 걸 소거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오히려 막막함을 줄여주는 장치였던 것 같아요.

소거라는 걸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했네요.

막막한 상태가 제일 괴로웠어요. 가능성이 없어지는 상태보다 막막한 상태가 제일 괴로웠던 것 같아요. 진짜 모르겠어요. 내가 빨간색을 좋아하는지 노란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는 스스로가 너무 미우니까 그렇게 나의 가능성이 좁혀지고 뾰족해지는 그 과정이 오히려 더 나았던 것 같아요. 막막함으로 머무르는 것보다.

채채님의 어린 시절 꿈은 뭐였어요?
저는 어렸을 때 어렸을 때는 그냥 다들 하는 비슷한 꿈들을 많이 꿨던 것 같은데 선생님도 됐다가 의사도 됐다가 피아니스트도 됐다가 그랬는데 고등학교 때부터는 제가 중고등학교 때 이제 대중 문화를 소비하는 데 굉장히 선봉에 있었어요. 덕질을 엄청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그러니까 유행하는 게 뭔지도 잘 알고 그거를 제 몸에다가 씌우진 않았었는데 늘 그게 어떤 건지를 참 잘 알았던 친구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밈이 뭐냐 하면은 바로 나오는 밈 자판기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문 방송 가면은 내가 잘 아는 걸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고 왜냐하면 다른 거는 전혀 그림이 안 그려졌어요. 경영학과, 국어국문학과 이런 것들을 했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고 지금도 저는 스스로 어쨌든 그게 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중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결국에는 지금 제가 하는 일에도 큰 힘이 되는데 그때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보통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그게 트렌드가 되었구나 이런 거에 대한 감각이 그때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니즈를 아는 게 중요하니까 살아 있는 트위터리안 시스템이네요.

저는 소비를 많이 했어요. 제가 열심히 트위터를 하던 때는 지금처럼 진짜 대중문화의 선봉에 있는 느낌보다는 보다는 오히려 제가 중학교 때는 친구들이랑 페이스북 하는 느낌이었고 고등학교 때 올라가니까 진짜 현생에서 친밀한 관계들은 페이스북으로 옮겨가고 트위터에서 대중 문화를 소비하는 혹은 음지 문화들이 자리 잡기 시작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는 열심히 소비를 열심히 활동 활동을 잘 안 했는데 그러고 나서 제가 23살, 24살 때쯤에 취업 준비할 때 NCT에 빠졌었는데 그때 돌아가 보니 트위터가 굉장히 새로운 세계가 되어 있더라고요. 거기에는 또 못 따라가겠어서 열심히 보기만 했습니다.

체험형 인턴으로 들어가셔서 3년 6개월 일을 하셨는데 어떤 스타트업인가요?

사스(SaaS)를 만드는 스타트업이었고요.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고객들이 자기 사이트 웹이랑 앱을 만들 수 있도록 만드는 해주는 그런 빌딩 해 주는 노코드 툴 사스였어요.


어떤 게 재밌으셨어요?
전신이 빙글 이었던 회사였었는데 그래서 커뮤니티를 처음으로 시작을 해서 만들어진 프로덕트였고 거기에서 커머스도 붙였었고 웹쓰리(Web3)도 붙였었고 엄청 다양한 도메인의 고객들을 만나게 됐어요. 이런 것도 사업이 되는구나 저런 것도 사업이 되는구나 하는 감각도 많이 좀 늘렸던 것 같고 무엇보다 고객들도 스타트업이고 저희도 스타트업이니까 같이 프로덕트를 초반부터 만들어 나가는 그 느낌이 저는 즐거웠던 것 같아요. 너무너무 힘들고 즐거웠어요.

한 회사를 다녔지만 다양한 프로덕트를 경험한 느낌이시네요.

맞아요. 그런 느낌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굉장히 그래서 밖에다가 제가 했던 경험이 어떤 건지를 소개할 때 되게 어려워요. 어떤 도메인이라고 얘기해야 되지? 커머스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이고 커뮤니티도 했고 사스(SaaS)이기도 하고 웹쓰리(Web3)도 찍먹했고 그렇게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하는 생각 때문에 항상 누가 무슨 일 했냐고 물어보면 말이 길어져요.

그중에서 어떤 게 제일 재미있으셨어요?

저는 커뮤니티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게 내가 만드는 커뮤니티가 아니고 고객들이 만드는 커뮤니티잖아요. 그러니까 그 커뮤니티가 잘 워킹하게 만드는 툴을 만드는 거니까 이제 메타 커뮤니티 같은 느낌. 그래서 뭔가 제너럴하게 커뮤니티에서 통할 수 있는 논리가 뭘까를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고 플러스 어쨌든 사스(SaaS)니까 이거를 로직적으로 그 사람들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그 커뮤니티 혹은 서비스를 빌딩을 할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됐고 그래서 그 커뮤니티 혹은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엄청 많이 크게 생겼어요.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을 하면서 근데 물론 커머스나 웹3도 재밌었는데 그게 그 정도의 존경까지 갔다기보다는 그런 도메인이 있구나 정도의 인지로 갔는데 커뮤니티는 그렇게 계속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하고 그 관계가 어떻게 이 커뮤니티를 존속하게 하고 또 어떤 인게이지먼트가 여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어떤 건 아니고 이런 것들을 보는 게 결국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지금 말씀하신 여러 가지 것들을 서비스를 바라보고 이용자를 생각하면서 생각해 냈다는 거잖아요. 그게 그냥 자연스럽게 막 됐어요?
초반에는 안 됐죠 전혀 안 됐고 좀 돌아보면 제가 늘 하고 있었던 것들이 하고 있었던 생각들이 기획이 던 것 같은데 그게 이런 방식으로 프레임화하고 머릿속에 프레임워크로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게 결국엔 경험이 필요했던 거고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누군가가 그걸 언어화해 주고 규정을 해주고 이렇게 해야 더 좋다 이런 것들이 더 통한다 하는 걸 얘기해 주면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그런 의미구나 그냥 사람들이 버튼 누르고 좋아요 누르고 이런 것들이 뭔가 커뮤니티를 더 풍부하게 하는 것 같다라는 것들이 인게이지먼트가 커뮤니티를 어떻게 한다 하는 말로 바뀌는 데까지 한 1년, 2년 이렇게 걸렸던 것 같아요. 그 뒤부터는 어쨌든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이고 어쨌든 나의 언어가 생기니까 물론 수월하지는 않았고요. 근데 그거를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바라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는 조금씩 감각이 생겼던 것 같아요.

기획이라는 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상황에서 이 직무의 언어로 바꾸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거잖아요. 진짜 재미있고 잘 맞았나 봐요.

진짜 재밌고 잘 맞았어요. 근데 그렇게 1년 사실 정량적인 시간으로 어떻게 계산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배울 수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이 너무 좋았어요. 동료들이 너무너무 좋았고 너무너무 똑똑한 분들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저한테 정말 많은 걸 주려고 하는 분들이었고 사실 인턴이었잖아요. 체험형 인턴이고 가버릴 수도 있는 거고 계약 관계는 굉장히 일시적이었었는데 저를 아무도 인턴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 심지어 들어갔던 인턴도 직무 명은 QA였어요. 서비스 기획팀에서 QA여서 사용성 테스트를 한다든가 좀 더 개발 QA보다는 기획 QA 단에 있기는 했지만 제가 어떤 프로덕트를 기능을 QA를 할 때 너는 그냥 테스트하고 끝으로 절대 아무도 보지 않고 그럼 이거 이렇게 해야 될까요 저렇게 해야 될까요를 저한테 물어봐 주시고 제 리더 분도 이거를 더 고민해 봐라라고 이야기해 주시고 그런 분들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QA라는 직무가 많이 없어진 것 같기는 한데 일을 잘한다는 전제하에 QA로 일을 시작하는 게 그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생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진짜 맞아요. 정말 맞아요. 저도 그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QA 인턴이라는 게 결국에는 그 어느 순간부터는 한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제가 생각했던 게 내가 딴 사람들보다 아무것도 나은 게 여기에서는 아직 없지만 이 사람들 누구보다 우리 서비스를 제일 많이 써봤다라는 자신감은 생겼었어요.

채채님이 QA도 진짜 꼼꼼하게 열심히 했나 보네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 게 아니고 서비스를 이렇게 뜯어 보고 저렇게도 들여다 보고 했으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아요.

그리고 회사 분들도 그렇게 이끌었어요. QA가 이거 그냥 테스트하고 끝나는 거 아니다. 네가 여기까지 R&R이 있다. 여기까지 더 책임져야 하고 이것까지 고민해 봐야 된다 라고 말씀하고 계속 푸시를 하셨고 그래서 너무너무 어렵고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근데 성장하는 게 몸으로 느껴졌어요. 그 시간 동안 그래서 계속 남아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살면서 이건 잘했다고 생각한 일로 이전 회사 들어간 것 그리고 이전 회사 퇴사한 것까지 썼었는데 이전 회사 들어간 거 너무 이해가 돼요. 근데 그런 회사를 퇴사한 게 또 왜 잘한 일이죠?

MZ 국룰이 3년이라고 하는데 딱 3년쯤 되니까 너무 신기하게 딴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진짜 3년 반 중에서 3년 동안은 회사 다음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어요. 내가 이 회사를 평생 다니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 회사에서 지금 내가 주어진 거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다음이 뭐가 됐든 분명 유의미한 도움이 될 거다라는 확신을 갖고 일을 했기 때문에 다음을 막 구체적으로 상상한 적이 없었는데 한 3년쯤 되니까 자꾸 딴 생각이 들고 회사에서 느끼는 활력이나 배움들이 이전 같지 않아졌어요.

일이 할만해졌나 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할 만해졌기도 하고 그전에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회사에 대해서 아쉬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기가 최고의 회사고 모든 것들에 있어서 내가 지금 필요한 것들을 충족해 주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만약에 다른 멤버분들이 특히 다른 회사를 경험하고 오신 분들이 우리 회사가 어떤 것들이 부족하다 어떤 것들을 발전시켜야 된다라고 얘기했을 때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엄청 애정하고 사랑해서 좀 맹목적이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당연히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을 텐데 1년 차, 2년 차밖에 안 되니까 안 보였던 것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 앞에 있는 일만 하기에도 너무 벅차니까 그랬던 것 같고 어쨌든 이게 어느 정도 손에 있고 저도 좀 더 큰 거를 봐야 할 연차가 되기 시작하면서 거기에서 회사에서 좀 아쉬움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그러고 나니까 내가 여기에서 더 배우고 이거를 발전시키는 선택을 하느냐 회사의 이 아쉬운 측면을 회사에 더 기여하면서 이걸 발전시키느냐 아니면 또 다른 걸 찾아가느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을 했던 것 같고 그냥 한마디로 마음이 한 번 뜨니까 안 되더라고요. 저도 아까 말씀하신 재미 착즙기, 활력 착즙기 같은 그게 있는데 너무 큰 장점이 어쨌든 제가 적을 뒀다 하면 거기에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고 그리고 여기 나온 것도 사실 지루해서는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거기에서의 안 좋은 감정들이 달래지지 않았던 것 같고 그게 달래지지 않을 때쯤에 어쨌든 이런 폭발적인 분노 혹은 미움의 감정으로 뭔가를 선택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거예요. 어쨌든 제가 너무 재밌게 다녔던 회사이니까 뭔가 그런 느낌이었어요. 너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막 이런 이런 느낌으로 감정의 전환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니까 너무 힘들었어서 그 감정을 좀 씻기를 기다려야겠다. 3년이 될 때쯤에 생각을 했고 그래서 6개월이 더 걸렸던 건데 그 뒤에 퇴사하기까지 그때 동안 그럼 난 다음에 뭐를 할까를 생각을 좀 천천히 했을 때 고른 것이 유학이었던 건데 유학을 고르고 나니까 지금 회사가 미워서라기보다는 그걸 하고 싶어지니까 회사에 대한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지는 거예요. 마치 권태기가 지나고 그냥 우리 헤어져도 될 것 같아라는 연인들처럼 그런 마음이 들고 오히려 담백하게 퇴사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결정을 했던 것 같아요.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유학은 일단 공부를 하고 싶다에서 시작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 3년쯤 됐을 때 처음으로 회사가 미워지니까 그럼 나도 이제 다음을 처음으로 상상해 봐야겠다 했을 때 일단 이직이라는 옵션이 되게 빨리 제외가 됐는데 저한테 그 이유가 어쨌든 제가 회사를 3년 동안 엄청 애정하고 사랑하면서 다녔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다른 회사를 갔을 때 그만큼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지금은 나한테 너무 괴로운 존재이지만 그렇게 3년 동안 엄청 친구들이 사측이라고 놀렸거든요. 그럴 정도로 회사를 애정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도 잘 알았어요. 그래서 다른 회사 갈 거야 이런 마음이 안 들었던 것 같고 근데 진짜 누가 저한테 속삭이듯이 채채야 해외 생활해야지 이렇게 뭔가 논리적이지 않은 느낌으로 그냥 머릿속에 딱 떠올랐던 게 해외 생활 마음의 소리였는데 아마 돌아보면 제가 교환학생을 5년 전에 갔다 왔었는데 대학생 때 그때 내가 다시 한 번 꼭 도전하리 이런 마음을 들고 또 들어왔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회사를 다니면서는 나 한국에 살아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됐는데 뭔가 도전 의식이 차오를 때쯤이 되니까 다시 그 열망이 고개를 들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해외 생활을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중에서 어떤 수단으로 가야 할까 하면서 유학을 선택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유학을 해야겠다가 시작은 아니었고 해외 생활하고 싶은데 어떻게 가야 하지 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공부하러 가세요?

저는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전공을 공부를 하러 갑니다. 저도 가봐야 알 것 같긴 한데 제가 유학을 어떤 공부를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아니다 보니까 전공을 선택하기까지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래서 어떤 전공을 해야 될지 엄청 열어두고 고민했거든요. 왜냐하면 딱 조건으로 보면 제가 신문 방송학도 전공했고 융합 소프트웨어도 전공했고 PM으로 경험도 있고 하니까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너무 넓은 거예요. MBA일 수도 있고 UX, HCI일 수도 있고 저널리즘일 수도 있고 하다못해 공학으로 갈 수도 있는 건데 그 모든 전공들을 열어두고 학업 계획서나 실러브스(Syllabus) 같은 거를 보면서 이거 재밌겠다 생각한 것들은 많았는데 재밌어도 이거는 내가 좀 포기하고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서비스 디자인 실러브스를 읽었을 때는 아 이거 내가 배우고 싶은 거네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그 지점이 그냥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다른 데에 비해서 넓게 적어 놓은 거 아닌가요?

맞아요. 굉장히 그렇다고 느꼈고 그리고 그게 오히려 저한테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PM을 시작한 것도 신방을 시작한 것도 결국에는 그냥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오히려 저는 계속 그걸 넓혀 온 것 같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문방송학이야라고 규정을 했다가 아닌데 IT 업계에서 문제 해결하는 거 하면 되는 건데 그래서 그게 IT 프로덕트든 아니든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걸로 좀 넓혀가면서 계속 내가 생각했던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거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꿈을 가지고 가는 거죠.

인문학적인 소양으로 문제 해결을 현대적으로 하는 걸 좋아하시는 걸까요?
인문학적인 현대적인 그런 뭔가 거창한 그런 마음은 없는데 그냥 사람들이 필요한 게 뭔지를 알아서 그거를 내가 할 수 있는 기술로 해결하는 것이 즐거운 것 같아요. 근데 서비스 디자인은 그거를 지향하는 것 같고 정말 그렇게 워킹할지는 배워야 할 것 같다인 상태입니다.

에스(S)가 99%라고 해서 채채님답다라고 생각 했는데 지금 말씀은 열려 있는 데서 뭔가를 찾는 거를 더 선호하시는 것 같아서 갑자기 내가 잘못 이해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오잉님이 보신 그런 사람이 맞는데 추구미가 엔(N)인 거죠.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면 나 너무 에스(S)로만 살 것 같으니까 그런 그릇에 들어가서 또 해보면 또 나의 에스(S)가 거기 안에서 또 다르게 발현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갖고 가는 것 같아요.


내가 A이므로 반대인 B가 되고 싶다는 건지 아니면 내가 보기에는 B가 더 좋아 보여인 건지 그게 궁금해요.
만약에 제가 극 이(E)였어도 아이(I)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근데 엔(N)은 제가 느끼기에 멋있는 무언가인 것 같아요. 제가 가지지 못했지만 좀 갖고 싶은 무언가인 것 같고 하지만 내가 엔(N)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거는 인정했어요. 그건 너무너무 인정했고 그게 이제 슬프지도 않은데 근데 엔(N)인 사람들이랑 있으면 제가 어느 정도 그런 영향을 받는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제가 항상 스스로 많이 이야기를 하는 게 나는 물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컵에 들어가면 컵에 맞게도 있고 그릇에 들어가면 그릇에 맞는 사람이 되는데 그럴 거면 여기에서도 살 수 있고 저기에서도 살 수 있으면 그래도 내가 느끼기에 좀 멋진 데 가 가지고 살아보는 게 멋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어떤 상황이나 어떤 사람에 잘 맞출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했잖아요. 원래 그랬어요?

어렸을 때 엄마가 양보상. 배려상 이런 거 그만 받아오라고 그랬었어요. 그게 안 힘들어요. 그리고 오히려 그거를 내가 하지 않는 게 더 어색하고 예전에는 그게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엄마가 항상 니 밥그릇 못 챙기는 거다 이런 식으로 혼내고 그러셨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양보 잘하고 배려 잘하는 건 좋은 것 같은데. 점점 내 취향이 생기면서 내 취향은 어느 정도 보전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는 방식도 능숙해지는 것 같아요. 근데 기본적으로 저는 뭔가 뚜렷하고 뾰족한 취향이 많이는 없는 사람이라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아 그러니까 이래도 그냥 그저 그렇고 저래도 그저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 저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인 것 같고 아까 얘기했던 재미 착즙기처럼 A 선택지에서는 이게 좋고 B 선택지에서는 이게 좋고 하다 보니까 그게 내가 생각하는 단점이 너무 많지 않으면 그냥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로 가는 것 같아요.

취향이 엄청 뚜렷하지는 않은데 내가 종종 강렬하게 사랑했던 것들이 있잖아요. 블락비라든지 전 회사라든지 잔상이 좀 오래 남겠네요.

엄청 오래 남죠. 엄청 오래 남고 그래서 그렇게 강렬하게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더 맹목적이어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원래 취향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나를 푹 빠지게 만들어? 이런 뭐 어쩌고는 처음이야 이런 느낌으로 더 매료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가 좋아지면 제가 뭔가를 막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배려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맞추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인데 심지어 내가 좋아한다고 그러면은 내가 끝까지 해봐야지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살면서 이건 잘했다고 생각한 일로 교환 학생 간 걸 써주셨어요. 어디로 가셨어요?

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낭만적인 도시로 가서 너무 행복했어요. 진짜 저는 A TO Z가 행복했다고 많이 얘기를 하는데 그때는 그러니까 뭔가 자기가 행복하다는 걸 인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근데 그때는 아 나 진짜 이거 행복한 거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도 뭔가 헷갈릴 수 있잖아요. 그때 그냥 어렸으니까 행복한 거야 하고 희석될 수도 있는데 그거 아니었고 나 진짜 진짜 행복했다라는 거를 기록하기 위해서 일기를 쓰고 막 그랬었어요. 좋았던 거는 일단은 거기에서 제 취향이랄 것들을 좀 많이 발견했던 것 같아요. 그게 좀 웃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전까지 나는 쉬고는 못 사는 사람, 나는 늘 바쁘게 살아야 되고 워커홀릭이 될 운명이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는 휴학 나는 힘들어서 못하고 나는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야 했는데 너무 가만히 잘 있는 거야. 너무 잘 쉬고 그러니까 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헝가리 헝가리여서도 있겠지만 유럽이라는 곳이 저는 그렇다고 생각했고 예컨대 도심 속에서도 그래도 쉼의 공간이 있다던가 그런 것들이 제가 좀 유럽에 매료되었던 것 같고 그전까지 저는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사람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사람이고 생산성에 목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삶을 경험해 보니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다른 가능성을 처음으로 경험을 해본 거죠.

교환 학생은 거기 학교를 다니는 거죠? 근데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랑 다르게 한가한가요?

한가하죠. 일단 교환 학생을 가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가지 않거든요. 거기에서 놀기도 하고 경험도 하기 위해서 가는 거라서 최소 학점을 들어요. 저도 9학점, 수업 3개만 들었고 그래서 너무너무 한가했거든요. 그리고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수업도 막 잘 안 나가도 되고 그런 환경이었어요.


헝가리로 교환 학생을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저는 그때 당시만 해도 헝가리라는 국가가 어디 있는지도 원래 몰랐거든요. 근데 유럽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고 다른 국가를 가고 싶고 미국은 감각적으로 굳이 안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유럽 중에서 제 과가 갈 수 있는 국가들이 따로 있어요. 학교들이 협정을 맺어야 하는 거니까 거기에서 목록을 보는데 갔다 온 학생분들이 후기를 되게 정성스레 써 주시거든요. 그거를 교환 학생 갔다 오면 제출하라고 해서 근데 부다페스트를 갔다 온 선배분이시죠. 그분이 너무 부다페스트를 사랑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 글에서 수십 장의 페이지 한글 파일에서. 이런 곳이면 너무 가봐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딱 진짜 그 후기 글 때문에 결정을 했었어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에 일상적인 무던함을 써주셨어요. 무던함 이 되게 양면적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얘는 계속 갖고 싶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 무던한 스스로가 좋아요. 무던해서 다른 사람들이 저를 편하게 느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건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되게 자신 있는데 그게 여기에서 오지 않을까 내가 이 사람한테 호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특정 부분이 있을 텐데 그 외의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결국에는 나의 무던함 그런 일상적으로 모든 것들 다 상관없고 근데 이게 좋으면 너도 좋아 하는 그런 거에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오늘 아이티백 차 한 잔 같이 했는데 소감 부탁드립니다.

사실 엄청 걱정을 하고 오진 않았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 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긴 했는데 그냥 제가 최근에 퇴사하고 스스로 돌아보고 어떤 결정을 했고 이런 회고했던 것들을 그냥 그대로 얘기한 기분이에요. 그래서 그 회고를 되게 많이 했던 지난 6개월이라서 얘기를 다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뭔가 타이밍 좋게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REDIT

오잉

인터뷰 뚜까, 찌니,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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