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서비스 기획자, 라곰
학교에서 제일 잘 배웠던 거는 잘 실패하는 법이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늘 잘 성공하는 법에 집중을 했었는데 거기에서는 실패를 하면은 '난 망했어' 이게 아니라 '아 그럼 이건 아니었나 보다. 이 방법이 동작하지 않았네' 다른 걸 시도해 보고 이런 인식의 전환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다르다는 것도 인지를 해야 된다고 너무 같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라고 하셔서 그런 것들을 잘 조절해 가면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40km를 넘어갈 때 눈물 한 방울 또르르. 4자를 보는 순간 '아 그럼 나는 다 뛰었다'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27km~38km 이때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근데 39km에서 4를 보는 순간 '이제 완주를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아이티백 라곰님 모셨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라곰이고요. 라곰의 뜻은 스웨덴에서 딱 알맞게 균형 잡힌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단어인데 이런 단어처럼 살고 싶어서 닉네임을 라곰으로 했습니다.
스웨덴에서 1년 정도 사셨다고 하셨잖아요. 언제 어떻게 하다가 스웨덴에서 1년 정도 사신 거예요?
제가 2019년에 스웨덴에 디자인 UX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서 가게 됐었는데요. 원래 저는 2015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는데 그때는 광고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해서 브랜드나 다양한 마케팅 같은 거를 담당하는 그런 업무를 한 4~5년 정도 했었었는데 하다 보니까 사용자 피드백을 조금 더 메이커로서 실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때 좀 과감하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을 하게 됐었어요. 그래서 저는 원래 전공도 디자인 전공은 전혀 아니고 원래는 경제랑 경영 이런 걸 전공했었어 가지고 디자인 유학을 가려고 하니까 석사나 이런 거는 학사가 없어서 가기가 어려웠었고 그래서 좀 찾다 보니까 스웨덴에 있는 디자인 스쿨에서 재미있게 공부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때 가게 됐었습니다.
광고 회사에서 PM을 4~5년 하셨다고 들었어요. 전공이 경제 경영이었는데 광고 회사로 입사하시게 된 계기는 뭘까요?
제가 학창시절의 꿈은 뭔가 기자와 같은 언론인이 되고 싶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에 가서 대학교 방송국 활동을 진짜 열심히 했었는데 그래서 제가 국장도 하고 굉장히 대학 생활의 절반을 그러니까 대학교를 다닌 게 아니라 대학 방송국을 다녔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되게 열심히 했었는데 그때직접 저희가 영상을 기획하고 영상도 만들고 그런 일을 하다 보니까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어서 진지하게 준비를 하다가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까 제가 생각보다 상업적인 사람 같다. 오히려 이런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더 반영하고 내가 만든 걸로 인해서 좀 더 사람들이 기뻐하면 좋겠고 어떤 게 좀 효과적으로 영상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광고라는 산업을 좀 알게 됐고 그래서 광고 회사로 자연스럽게 갔던 것 같아요.
대학 방송국이 라디오 같은 것만 하는 게 아니고 영상도 하나요?
네, 제가 속했던 방송국은 영상 전문 방송국이고 대학가 최초 영상 전문 방송국으로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던 곳이에요.
그럼 어디로 송출해요?
저희 때는 학생 식당에서 보면 나오는 뉴스도 있고 짧게 드라마도 만들고 광고도 만들고 하잖아요. 그런 것도 했었어요. 저희는 유튜브에도 올리기도 했었었고 그랬어요. 시트콤도 찍고 그리고 대학교 입학하면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거 할 때 학교 소개 영상이나 뭐 그렇게 좀 재밌는 영상들 만들었던 것도 했었어요.
다큐멘터리 PD를 꿈꾸다가 갑자기 광고회사에 내가 생각보다 상업적인 사람이구나를 뭔가 깨달으셨던 모먼트가 있으셨어요?
제가 PD를 꿈꾸면서 어떤 공모전 같은 걸 나갔었는데 꿈 여행 공모전이라고 해서 그래서 제 꿈이 다큐멘터리 PD였으니까 이런 주제를 가지고 해외를 다니면서 이런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요. 이런 꿈을 제출을 해서 어떤 기업에서 그걸 후원을 해줬었어요. 그걸 찍으면서 하다 보니까 뭔가 찍는 과정도 좋았는데 그거를 보고서 좋은 피드백을 좀 더 반영하고 싶고 그런 과정들이 조금 더 소통하는 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좀 더 임팩트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 이제 광고 쪽을 찾아왔어요.
그러면 촬영도 하고 영상 편집도 하고 이런 걸 다 라곰님이 직접 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네네네. 10년 전에는 편집도 하고 그랬어요. 방송국에서 선배님들이 오셔서 알려주시고 그리고 제가 원래 부산 사람인데 그렇게 사투리가 심하지 않은 게 저희 방송국 활동할 때 아나운서 아카데미 교육도 하다 보니까 고치게 되더라고요.
광고회사 PM은 TV CF 위주로 하신 거예요?
광고에서도 ATL이랑 BTL이라고 나오는데 Above The Line이랑 Below The Line이라고 해서 ATL이 우리가 생각하는 TV 중심의 광고를 만드는 거고 BTL은 TV 외에 다양한 것들 그래서 지금으로 치면은 디지털 플랫폼이나 아니면은 팝업 가거나 아니면 큰 전시에서 행사를 하거나 전시를 하거나 아니면 브랜드 북 이런 것도 만들고 아니면 하다못해 브랜드에서 하는 대학생 대회 활동이나 홍보 대사들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은 브랜드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의 활동들이라서 저는 그 BTL(Below The Line)이라고 하는 분야에 있었고 거기서 그래서 다양한 브랜드 액티비티들을 했었어요.
4~5년 일하시다가 갑자기 그만두시고 유학을 가시게 되는데 어느 순간 이게 안 맞다라는 생각이 드셨어요?
저는 되게 좋은 분들을 만나서 재미있게 일을 하긴 했었었는데 광고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 같긴 했었어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 커뮤니케이션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거에 대한 전문성을 더 높이려고 하다 보니까 그것보다는 제가 더 하고 싶고 더 재미를 느끼는 일이 무엇일까 이런 진로 재탐색의 기간을 거쳐서 보통 3년 차, 6년 차, 9년 차 되면 그런 시기가 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커뮤니케이션이나 전체적으로 제너럴 리스트 역량을 많이 키우게 됐었는데 그거보다는 조금 더 스페셜 리스트가 되고 싶어서 그런 분야가 어떤 걸까 생각을 하다가 도전을 하게 됐었어요.
원래도 미적 감각이 좀 있으셨어요? 왜냐하면 생 문과에서 갑자기 디자인으로 가기 너무 어려울 것 같거든요.
우리나라랑 해외에서 생각하는 디자인의 개념이 달랐던 것 같아요. 해외는 디자인 씽킹이라고 해서 생각하는 모든 사고 과정 우리나라에서는 서비스 기획이라고 하는 것도 해외에서는 다 디자인의 범주에 드는데 우리나라는 조금 더 핸즈온 하는 조금 더 그래픽적으로 시각화를 하거나 그런 부분을 디자인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상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 데 관심이 많았어 가지고 디자인으로 가게 됐어요.
스웨덴에 갔을 때는 영상 쪽으로 좀 더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 이런 마음도 있어서 가신 거예요?
영상보다는 사실 브랜드 디자인이나 UX 디자인을 생각을 하고 갔었어요. 왜냐하면 회사에서 일할 때 브랜드 액티비티들을 많이 했었다 보니까 그게 가장 끝단이 브랜드 디자인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디자인 부분이었어서 로고나 CI 같은 것들이나 그런 거 타이포그래픽이나 이런 것도 관심이 많았었고 근데 하다 보니까 저는 UX가 더 맞는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는 UX 디자인으로 다시 시작하게 됐었어요.
스쿨에 가서 브랜드 디자인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시게 된 거예요?
그 과정이 다 포함이 됐었어요. 전체적으로 한 번씩 찍먹을 하고 인턴십 기간이라고 해서 방목하는 내가 더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분야에서 직접 인턴십을 경험을 해보거나 아니면 그냥 그 과정을 계기로 더 전문 분야로 이렇게 스스로 나아가야 되는 그런 커리큘럼이었어요.
원래는 브랜드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으셨는데 UX를 정하게 되신 계기는 어떤 거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거랑은 또 다르고 제가 BX를 좋아하긴 하는데 이거를 실제로 디자인 산출물을 내려고 하다 보니까 그 부분에서 나는 만드는 사람보다 조금 더 좋은 의견을 내는 사람의 역할만 했었던 것 같고 UX 디자인은 조금 더 근본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 경험을 디자인한다라는 게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UX 디자인을 1년 동안 스웨덴에서 공부하셨는데 어떠셨어요?
그 학교의 과정들이 좀 특이했었는데 예를 들면은 우리나라처럼 커리큘럼이 딱딱 정해져서 매시간마다 강사님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고 그럼 우리가 숙제를 하고 그런 세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떤 회사랑 연계를 해서 프로젝트를 주고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배웠던 지식들을 바로바로 활용해야 되는 거 중심으로 이루어졌었어요. 그래서 스웨덴에 있는 친구들 아니면 다른 나라 친구들이랑 같이 매번 협업을 하면서 계속 조별 과제를 계속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영어 실력이 더 중요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매일매일 영어로 대화하고 내 의견도 100% 영어으로 전달해야 되고 그런 환경들도 있었었고 근데 무엇보다도 배웠던 거는 다양성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갖게 됐던 게 좋았고 그다음에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은 누가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해야 되고 내가 원하는 성장의 방향을 내가 만들어 가면서 이끌어 가야 된다. 내 스스로가 그런 게 좀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스웨덴 가서 바뀌었다는 거예요?
원래도 그런 부분이 있긴 했었었는데 그 경험을 통해서 더 많이 강화됐어요. 더 많은 좌절도 겪었었고 그러니까 그 학교에서 제일 잘 배웠던 거는 잘 실패하는 법 이런거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늘 잘 성공하는 법에 집중을 했었는데 오히려 거기에서는 잘 실패하는 법 그러니까 실패를 하면은 난 망했어 이런 게 아니라 아 그럼 이건 아니었나 보다 이 방법이 동작하지 않았네 그리고 다른 걸 시도해 보고 이런 방법들을 많이 배우게 되고 이런 인식의 전환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실패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이런 느낌으로 이해해도 돼요?
맞아요. 그리고 실패 후에 계속 회고를 통해서 내가 이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게 있기 때문에 실패가 아닌거죠.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마인드셋 같기도 하네요.
약간 정신 승리. 어떻게 보면 배운 거기도 하고 그리고 또 다르게 또 배운 거는 좋은 피드백 주는 법 이런 거를 학교에서 되게 중요하게 생각을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처음에 사회생활 시작했던 곳은 안정적인 대기업 구조였어 가지고 평가라고 하면은 그냥 연말에 저는 이런 거 했습니다라고 하면은 결과는 알파벳으로 표현이 되는 그런 피드백 형식만 받았었는데 그런 학교에서는 물론 회사가 아니라 학교이기도 했지만 학교에서는 계속 협업한 친구들 리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하면서 나는 너의 이런 점이 좋았고 이런 점은 더 신경을 써주시면 좋겠어 이렇게 좀 건전하게 피드백하는 법들을 많이 배우고 그런 문화를 되게 장려해 줬었어요.
라곰님이 생각하는 좋은 피드백을 주는 법은 뭘까요?
이론적으로는 내가 아는 나의 모습 말고 내가 발견한 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해 주는 게 좋은 피드백이라고 해서 나는 이런 모습을 너에게서 발견을 했고 어떤 식으로 더 발전시켰으면 좋겠어 나한테 어떤 영향을 줬다 이런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는 게 좋다고는 배웠습니다. 조금 더 메타인지를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 친구는 이런 부분을 되게 좋게 봐주다 보니까 나도 이런 모습이 있고 이게 이렇게 영향을 끼쳤구나 이런 것도 많이 깨닫게 됐어요.
스웨덴에 가서 디자인도 많이 배우셨지만 이런 커뮤니케이션도 많이 배우신 게 지금 도움이 되시나요?
네. 초반엔 많이 도움이 됐었는데 한국에 너무 다시 익숙해지고 또 다른 환경에 있다 보니 저도 그런 초심을 되게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지요.
스웨덴은 자국어가 따로 있어요?
네. 스웨덴 언어가 따로 있어요. 학교는 국제 학교여서 영어가 무조건 써야 된다라는 거였어요.
본인의 메인 언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피드백이라는 게 되게 좋은 피드백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좀 새로운 시선으로 주기도 하고 하니까 그런 문화적인 배경이 다른 상태에서 또 서로 교류를 하니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UX 디자이너 공부하시고 오셔서 바로 UX 디자이너로 취업하신 거예요?
네. 저는 사실 그래서 해외 취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때가 2020년이었어서 코로나 때문에 인턴십을 했던 곳에서 조금 더 프리랜서로 일을 하거나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셨었는데 비자 문제가 있어가지고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리모트 근무로 하다가 코로나가 장기화되다 보니까 제가 아직 커리어 전환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다시 해외에 나가고 싶다면은 내가 조금 더 한국에서 전문성을 높여야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2021년도에 한국에서 다시 직업을 구해가지고 시작했어요.
어떤 회사에서 UX 디자이너로 다시 시작하셨어요?
그때 제가 엄청 힘들었었는데 우선은 배경도 별로 없고 그리고 다시 IT 업계라는 데 처음 들어가려고 하다 보니까 이전 경력은 뭔가 그렇게 쓸모가 있지 않았었고 그때 기준으로는 저는 UX 디자이너로 시작을 하고 싶었었고 그래서 열심히 구직 활동을 했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두 군데에서 오퍼를 받았었는데 하나는 프로덕트 오너 포지션이었었고 하나는 서비스 크리에이터라고 해서 서비스 기획이랑 프로덕트 디자인 같이 하는 포지션이었어요. 근데 회사 자체는 사실 프로덕트 오너 포지션으로 한 데가 조금 더 큰 규모고 했었는데 저는 그래도 디자인을 더 하고 싶어서 그런 서비스 크리에이터라는 직무로 가게 됐었고 근데 그게 되게 특이한 직무잖아요. 저는 그게 되게 좋은 것 같아서 했는데 생각해 보면은 두 가지 역할을 한 명한테 맡긴 거잖아요. 근데 거기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기획도 하고 디자인도 했다는 얘기인 거죠?
네, 그때 기획자도 없고 디자이너가 없어서 제가 이렇게 했었던거죠. 요구 사항 같은 게 있으면 그걸 받아서 개발자한테 핸드오프까지 하는 그런 포지션이었어요.
공고명이 좀 그럴듯하네요. 몇 년 일하셨어요?
짧게 있었어요. 1년 있었어요. 근데 되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거기서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론트 기획도 하고 이런 백오피스 기획도 하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시스템적으로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도 됐었었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좋은 사용성을 위해서는 백단의 구조부터 잘 파악을 하고 거기서부터 개선하는 게 되게 좋아 좋겠다 이런 생각도 많이 갖게 됐었어요.
그 회사 전까지 IT 서비스를 만든 경험이 없었던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신입인데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근데 또 백오피스까지 했다는 거는 더 놀라운데요.
제가 첫 회사에서 디지털 플랫폼도 담당을 했었었거든요. 물론 그때는 그냥 다른 에이전시 분들이랑 같이 하셔서 개발사가 따로 있어서 이런 협업을 하면서 제가 프로젝트 매니저를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까 어느 정도 웹사이트 어드민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경험도 했었던 거예요. 그래서 웹사이트에 큰 플랫폼 리뉴얼도 담당하고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하긴 했었는데 실제 서비스 기획을 했던 거는 그 회사가 처음이긴 했고요.
라곰님 재주가 많으시네요.
잘 포장하나 봐요 제가. 그때 제가 또 구직 활동을 했을 때 선택했었던 게 그러니까 저는 단시간에 빠르게 성장이 필요했던 상태라고 생각을 해서 그 당시에 좀 빠르게 성장하는 도메인들을 주로 지원을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있었던 데가 배달 시장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해야 될 일도 많고 트래픽도 많고 하니까 단기간에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비스 크리에이터로서 1년 일하시다가 서비스 기획자로 이직을 하신 거예요? 커리어 전환을 금방 하셨네요.
네, 맞아요. 그때 또 고민이 됐었던 게 초반에 말씀드렸던 디자인의 개념이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디자인의 개념은 진짜 문제 해결 그래서 문제 정의부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런 개념을 포함을 해서 배웠었는데 한국에서 실제로 일을 하다 보니까 UX 디자인은 굉장히 GUI 중심으로 되고 있었었고 그럼 내가 이쪽으로 더 전문성을 가지기에는 내가 그만큼의 실력을 쌓아온 다른 디자이너랑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있는가라고 생각을 해 보니까 그것보다는 저는 조금 더 앞단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거가 조금 더 자신이 있었던 것 같고 근데 그게 이전의 경험들이랑도 공통적으로 보면은 다 궤를 같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커리어 전환이긴 했는데 궁극적으로 생각을 해보면은 계속 제너럴리스트로 더 확장을 했던 개념으로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 회사에서도 일본 현지 배달 서비스를 하고 계신데 원래 처음부터 그 서비스를 할 예정이어서 그 팀으로 가시게 된 거예요?
맞아요. 저희 회사가 일본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저희 팀은 일본 현지 배달 서비스를 담당한다. 그래서 이 포지션에 맞춰서 제가 지원을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 서비스를 만들고 계시잖아요. 진짜 희귀한 케이스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즐거움이라고 하면은 글로벌 동료분들이랑 같이 협업을 하면서 배우게 된 새로운 시각들도 있고 제가 이런 회사에서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앱이나 서비스나 기능을 출시하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는 되게 즐거워요. 어려운 점은 제가 처음에 스웨덴에서 일을 할 때 스웨덴 서비스를 그때 인턴십으로 하면서 글로벌 사용자들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서 이런 경험들이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일본 사용자들이나 고객분들을 위해서도 이런 경험을 하면 되게 재미있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과정도 재밌는데 또 더해서 일본 동료와 일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하다 보니까 저는 처음에는 되게 공통점을 많이 찾으려고 노력을 했었어요. 같은 사람이니까 역시 이런 공통점이 있구나 역시 사람 마음은 똑같아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었는데 저희 회사에서 오래 일하셨던 분은 그냥 어떤 순간에는 저런 사람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것도 인지를 해야 된다고 너무 같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런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라고 하셔서 맞아 이런 점은 확실히 다르다라고 그런 것들을 잘 조절해 가면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은 한국에서나 아니면 다른 글로벌 동료들이랑 일을 할 때는 굉장히 좀 직설적으로 제가 얘기를 했던 편 같거든요. 뭐 해 주세요. 아니면 이거 부탁드립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여주는 게 서로에게 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좀 소통하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일본 동료들이랑 할 때는 일본 동료들한테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면은 굉장히 직설적으로 뭔가 와닿는 것 같아서 조금 더 공손하게 혹은 조금 더 돌려서
그럼 어떻게 부탁해야 돼요? 예를 들어서 한국어로 표현했을 때 ‘이거 해 주세요’를 어떻게 표현해야 돼요?
제가 직접 하지는 잘 못하는데 일본 분들이 답변을 하시는 걸 보면은 돌려돌려 돌려서 행간을 읽어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이거구나 맞아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되는데 근데 그걸 제가 잘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표현을 못하는데 그분들이 표현하신 걸 보면은 이런 말을 하시고 싶은 거구나라고 좀 은은하게 말씀하시는 거를 제가 찰떡같이 이해를 해야 되는데 그런 것도 처음에 좀 훈련이 필요했었고 반대로 제가 얘기할 때도 더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다 보니까 한 가지를 해도 되게 돌다리를 열심히 두들겨 기고 뭐 이렇게 확인을 해서 좀 의견을 드려야 되고 이런 게 좀 습관화가 되는 것 같았어요.
라곰님의 기쁨과 약간의 어려움은 모두 다양성에서 나오는군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진짜 다 그렇게 다 저희 회사 분들은 그러고 있습니다.
다음 커리어는 어떤 도메인 생각하시는지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어요. 이런 일을 하고 어디 가야 될까요?
제가 배달 시장에 한국에 1년, 일본 3년에서 4년 정도 있는데 일본 배달 시장 같은 경우에는 한국보다 산업의 성숙도가 한 4년 정도 느린 것 같아요. 시장 침투율도 크지 않고 대신에 잠재력이 있는 이유는 일본의 인구 수나 밀도가 더 높다 보니까 그리고 침투율도 아직 낮고 이래서 조금 성장 가능성이 있다인데 제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저희는 이런 배달 서비스도 경험하고 실제로 제가 고객으로 배달 서비스를 경험하고 어떻게 보면 되게 당연한 경험들이 일본에서는 하나하나 설득을 해 나가면서 진전시켜야 되고 하다 보니까 좀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작년까지 팩스로 주문을 받았어요. 앱도 있고 전화도 있고 팩스로도 받고 생각보다 속도가 다르고 우리가 생각한 기준과 또 그들의 삶의 기준이 다른 거죠.
주로 메인 도시 위주로 서비스하지 않으세요?
저희 서비스는 일본 1위인데 그 이유는 전국구로 서비스를 하고 있어서 1위인 거고 경쟁사는 우버이츠인데 우버이츠 같은 경우에는 주요 도시들 중심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일본은 편의점도 되게 많고 도시락 많은데 그래도 배달 많이 시켜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처럼 계속 배달이 이게 습관화가 잘 일상화가 되어 있지는 않고 그게 나아가야 될 모습인데 그래도 매출은 높거든요. 그 이유는 왜 저희도 좋은 날 있으면 다 같이 시켜 먹고 하는데 일본은 배달 대표 음식이 피자예요. 그래서 피자 아니면 스시, 햄버거 이런 것들이 주요 음식이라서 그래서 지역에서도 다 같이 오랜만에 뭐 먹을까 이러면은 피자 시켜 먹고 그래서 매출은 꾸준하게 나오고 있어요.
내 주변에 있는 것보다 4년 전 상황 환경에서 서비스를 만들 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질 것도 같은데 실제 그런 느낌 있으세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저희는 해결했었던 문제를 따라 풀어가는 느낌이어서 그게 되게 편할 때도 있고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약간 좀 재미가 없었을 때도 있고 저희 눈에는 되게 당연하게 이런 걸로 가야 될 것 같고 이런 과정들을 설득시켜 나가야 되는데 설득하는 비용과 시간도 사실 발생하고 네 그리고 일본 쪽에서도 좀 저희랑 또 온도 차가 다르니까 좀 실제로 만드는 것만큼 이렇게 조금 조금씩 진전시켜 나가야 되는 거 그런 게 보람차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견뎌내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서비스 기획할 때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면 좋을까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데 라곰님 같은 케이스는 그것보다는 이미 활용되고 있는 기능을 서비스에 붙일 수 있도록 시장과 관계자들을 설득하는데 더 에너지가 많이 드는 거잖아요. 아까 광고 일 하실 때도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이 메인이 되는 게 약간 아니다 싶어서 새로운 배움과 전직을 하셨는데 지금 상황이 좀 비슷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때요?
맞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광고 회사에 있을 때는 전문 분야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데 그게 굉장히 광범위하다고 느껴졌었거든요. 그냥 뭘 해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니까 어떤 일을 해도 중요하다라고 저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었는데 지금 제 일에서는 그래도 제가 좀 보람을 느꼈던 거는 어떤 사용성 개성으로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특히 저는 그런 셀러 쪽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처음 사용성 개선이 생산성 개선이 되고 이게 매출에 영향을 주고 이런 부분들이 저는 되게 보람을 느꼈었거든요. 그래서 시간이라는 가치를 더 많이 만들어 주는 느낌이 들어요.
일하면서 도전적이거나 어려웠던 경험 혹은 뿌듯했던 경험으로 해외에서 이해관계자를 설득시켜서 새로운 앱과 기능을 출시했던 경험을 꼽아주셨는데 어떤 기능이었는지 말씀 주실 수 있으세요?
좋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한국은 조금 더 성장이 되어 있어서 성숙도가 높았었기 때문에 저희는 일본에서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나아가야 될 것 같은지 그러니까 저희가 그런 머천트 세계관 이런 거를 그려보았었을 때 일단은 음식점 사장님들은 굉장히 복합적으로 바쁘신 분들이잖아요. 요리도 해야 되는데 손님도 받아야 되고 거기다가 배달 주문도 나오고 대면 해야 되는데 그리고 대부분 디지털 친숙도가 낮아 가지고 그런 사장님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더 매출을 높이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근데 저희는 사장님 앱을 일단 출시를 하자라고 해서 그걸 출시를 하고 어떻게 좀 효과적으로 손쉽게 뭔가 판촉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하다가 세일 기능을 만들었어요. 근데 그거는 다른 경쟁사나 이런 데서 만들었던 건 아니고 그냥 일본에서 지나다니다 보면은 타임 세일, 10% 할인 마감 세일 이런 세일즈를 되게 많이 하잖아요. 그런 현장에서의 유연하고 과감한 할인 전략을 배달 앱에서도 좀 쉽게 하게 하면은 또 사장님들이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해서 그런 기능을 만들어서 출시를 작년에 해서 아직까지 잘 되고 있어요.
일할 때 들은 혹은 듣고 싶은 말 있으세요?
듣고 싶은 말보다는 제가 친구한테 배운 것 중 하나가 그 친구가 작고 엄청 사소한 칭찬이더라도 그걸 다 스크린 캡처를 해서 나만의 그런 칭찬 보관함 같은 거를 만든대요. 그걸 레시피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걸 보고서 칭찬받은 것들을 진짜 사소하게 라곰님 너무 고생하셨어요.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런 거 한번 다 캡처를 해서 뭔가 기운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동료 평가 써야 되거나 이럴 때 그런 걸 보면서 저의 자존감도 올리고 인류에도 올리고 막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특별히 막 듣고 싶은 말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작은 칭찬들이 모여서 좀 힘을 주는 것 같았어요.
그런 한두 마디의 말도 굉장히 도움이 돼요?
네. 엄청 힘이 힘이 돼요. 저도 그래서 사소하더라도 너무 좋았으면은 따로 DM을 해서 굳이 얘기한다든가 저도 그런 거에 되게 격려를 많이 받았어서 그런 편인 것 같아요.
그러면 라곰님은 따뜻한 말을 들을 때 긍정적인 자극을 받으세?.
네, 그리고 좋은 동료분들 만났을 때 그래서 되게 배울 점들이 많은 동료분들이 있으면 저는 되게 긍정적인 모티비에이션을 받는 것 같아요.
라곰님이 일할 때 만난 좋은 상사 따뜻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일할 때 어떻게 해야 따뜻한가요?
제 첫 사수 분이셨는데 4년 동안 같이 일을 쭉 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연락을 하는데 사람 자체가 되게 따뜻하신 분 같았어요. 저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주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은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제가 엄청 혼났었어요. 사무실에서 되게 공개자인 자리에서 혼났었거든요. 신입이었으니까 그래가지고 제가 눈물이 막 또르륵 나고 있었는데 그 사수님이 따로 회의실을 잡았다. 여기로 내려와 이렇게 해서 그 회의실에서 여기서 편하게 울으라고 그런 것도 있고 그리고 어떤 거를 해야 되면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에게도 이렇게 이런 경험을 해야지 너도 성장할 수 있다 이런 거는 이렇게 독려를 해줘야지 이분도 나중에 더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신 분 같아서 사람 자체가 되게 따뜻한 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또 현명하다라는 거는 기면 기고 이게 확실하신 분이어서 되게 이성적으로 업무는 처리하셨었거든요. 일의 본질에 되게 집중하시는 분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10년 후 나의 멋진 하루를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하루에 할 일을 무사히 마치고 노을을 보는 평범한 날이라고 꼽아주셨어요. 근데 어떤 운동하고 계세요? 갑자기 여기 운동이 껴 있어서 좀 궁금했어요.
저는 헬스도 다니고 그다음에 러닝도 좋아해요. 열심히 뛰었었는데 요즘은 저도 5km 겨우 하는데 저는 막 열심히 할 때는 마라톤도 좋아하거든요.
아니 마라톤을 왜 뛰셨어요?
뛰는 걸 좋아해서 내가 마라톤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그게 제 자랑거리예요. 처음에는 그냥 다이어트 할 겸 이렇게 조금조금씩 1km 뛰다가 계속 뛰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러닝 크루 같은 것도 그땐 젊었어요. 가서 같이 뛰고 친구들이랑 같이 뛰고 이렇게 하다가 10km 대회 나가보고 하다 보니까 이번에는 하프 나가보고 또 그러다 보니까 풀 마라톤 도전해 볼까 하고 해서 했었어요.
어때요? 마라톤을 완주하는 느낌은
40km를 넘어갈 때 눈물 한 방울 또르르. 4 자를 보는 순간 아 그럼 나는 다 뛰었다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한 27km~38km 이때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근데 39km에서 4를 보는 순간 아 이러면 이제 완주를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하는 내용도 너무 재밌고 인간 라곰님도 너무 재밌어서 어느새 1시간이 넘었는데 오늘 어떠셨어요?
편하게 수다 떠는 시간 같아서 좋았고요. 처음에는 좀 걱정도 했었는데 너무 잘 이끌어주셔서 좋았습니다.
CREDIT
글 오잉
인터뷰 뚜까,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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