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지 꽉 채운 한 달이 지났다. 조리원에 2주가량 있다가 집에 와 처음 아이와 함께 보내던 밤은 그야말로 극기훈련 같은 경험이었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아이가 잘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면서 결코 잠에 들지 않는 바람에 엄마와 같이 꼴까닥 밤을 새 버렸다.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기를 몇 시간, 고개를 툭 떨어뜨리고 마침내 곯아떨어진 아이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란..
그날 새벽에 내가 결심한 것은 두 가지였다. 이 작은 생명체에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종일 빨래며 청소며 나의 삼시세끼에 여력 없는 친정엄마의 잠까지 뺏어선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엄마와 남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어차피 두 젖꼭지가 나한테 붙어있는 이상!! 밤엔 둘 다 나를 도울 수 없으니 제발 푹 주무시라고. 그렇게 밤은 오로지 나와 아이 단둘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선잠을 자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재우고 또 먹이는 일에 매달렸고 낮에 한번, 저녁에 한 번씩 각각 엄마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눈을 붙이는 식으로 잠을 보충했다. 규칙을 정하니 생활 리듬이 생겼다. 아이가 먹고 자는 텀도 일정해졌다. 다행히 아이는 잘 먹고 잘 잔다. 물론 기질이라는 게 어찌 변할지 모른다지만 적어도 지금은 정말 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신생아 때는 토끼잠을 자고 이유를 모르게 울어재끼는 것이 힘들다는데, 내 아이는 잠투정이 조금 있지만 한번 잠에 들면 두세 시간은 기본, 길게는 너 다섯 시간까지 내리 자는 데다 배가 고파도 빽빽 울지 않고 조금씩 찡얼댈 뿐이다. 그럴 때마다 입을 오므렸다 벌리면서 샐쭉거리고 처연하게 구는데, 그게 정말 귀여워 죽겠다.
엄마가 지칠 수 있으니 아이가 보챌 때마다 안아서 달래는 버릇을 들이지 말라는 글도 보았지만, 이렇게 안아주는 것 역시 인생에서 보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가급적 많이 안아주기로 했다. 번쩍 안아서 올리면 금세 울음을 그치는 아이가 정말 예쁘기도 하다.
몸도 잘 회복되고 있다. 출산의 과정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 매끄러웠는데.. 그래도 과연 이게 몇 번을 다시 반복할 수 있는 문제인가 생각하면 질끈 눈부터 감긴다. 흔히들 말하는 3대 굴욕(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몸이 육중한 조산사가 엄청난 압력으로 내 배를 누를 수 있다는 걸 미리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무통 주사 마취가 채 풀리지도 않는데 밑은 속절없이 빠르게 열리고 아이가 제 힘으로 밀고 나오니 기운을 내라는 의사의 말에 죽기 살기로 힘을 줬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조산사는 내 동의나 허락은 일절 없이 몸 위를 올라탔다.
아이를 낳은 밤, 다리는 후덜거리고 방광까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소변줄을 꽂고 누워있는데 입원복을 들췄더니 보이는 건 아래로 불룩 쳐진 자궁과 배에 선명하게 얼룩진 터진 핏줄들. 서글펐다.
출산 후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 부어오르는 내 모습은 더 충격적이었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뼈대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던 죽기 직전의 할머니 모습. 늘 퉁퉁 부어 있던 발 역시 어찌나 매끈한 모습이던지. 나는 사진을 찍어 간직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을 낳은 직후의 인간과 생명을 마감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렇게 대조적이라는 게 끔찍하도록 희한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죽은 내 강아지 하루 생각도 났다. 엄마는 몸이 식은 하루에게 온기를 불어넣듯 담요로 싸 꼭 안았는데, 병원서 퇴원하며 처음 받아 든 내 딸 역시 강보 안에 싸개로 동여매 품에 안았다. 어쨌든 이제야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고, 일상은 익숙해질쯤 또 새롭고 어려워지겠지만, 분명한 건 나는 지금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고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