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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Nov 12. 2016

생후 한 달의 인생

아이가 태어난 지 꽉 채운 한 달이 지났다. 조리원에 2주가량 있다가 집에 와 처음 아이와 함께 보내던 밤은 그야말로 극기훈련 같은 경험이었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아이가 잘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면서 결코 잠에 들지 않는 바람에 엄마와 같이 꼴까닥 밤을 새 버렸다.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기를 몇 시간, 고개를 툭 떨어뜨리고 마침내 곯아떨어진 아이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란..


그날 새벽에 내가 결심한 것은 두 가지였다. 이 작은 생명체에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종일 빨래며 청소며 나의 삼시세끼에 여력 없는 친정엄마의 잠까지 뺏어선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엄마와 남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어차피 두 젖꼭지가 나한테 붙어있는 이상!! 밤엔 둘 다 나를 도울 수 없으니 제발 푹 주무시라고. 그렇게 밤은 오로지 나와 아이 단둘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선잠을 자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재우고 또 먹이는 일에 매달렸고 낮에 한번, 저녁에 한 번씩 각각 엄마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눈을 붙이는 식으로 잠을 보충했다. 규칙을 정하니 생활 리듬이 생겼다. 아이가 먹고 자는 텀도 일정해졌다. 다행히 아이는 잘 먹고 잘 잔다. 물론 기질이라는 게 어찌 변할지 모른다지만 적어도 지금은 정말 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신생아 때는 토끼잠을 자고 이유를 모르게 울어재끼는 것이 힘들다는데, 내 아이는 잠투정이 조금 있지만 한번 잠에 들면 두세 시간은 기본, 길게는 너 다섯 시간까지 내리 자는 데다 배가 고파도 빽빽 울지 않고 조금씩 찡얼댈 뿐이다. 그럴 때마다 입을 오므렸다 벌리면서 샐쭉거리고 처연하게 구는데, 그게 정말 귀여워 죽겠다.


엄마가 지칠 수 있으니 아이가 보챌 때마다 안아서 달래는 버릇을 들이지 말라는 글도 보았지만, 이렇게 안아주는 것 역시 인생에서 보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가급적 많이 안아주기로 했다. 번쩍 안아서 올리면 금세 울음을 그치는 아이가 정말 예쁘기도 하다.

3.72kg의 무게와 53cm의 신장으로 태어난 나의 아이. 손가락 발가락이 제 아빠를 닮아 길쭉해 마음에 든다.


몸도 잘 회복되고 있다. 출산의 과정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 매끄러웠는데.. 그래도 과연 이게 몇 번을 다시 반복할 수 있는 문제인가 생각하면 질끈 눈부터 감긴다. 흔히들 말하는 3대 굴욕(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몸이 육중한 조산사가 엄청난 압력으로 내 배를 누를 수 있다는 걸 미리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무통 주사 마취가 채 풀리지도 않는데 밑은 속절없이 빠르게 열리고 아이가 제 힘으로 밀고 나오니 기운을 내라는 의사의 말에 죽기 살기로 힘을 줬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조산사는 내 동의나 허락은 일절 없이 몸 위를 올라탔다.

아이를 낳은 밤, 다리는 후덜거리고 방광까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소변줄을 꽂고 누워있는데 입원복을 들췄더니 보이는 건 아래로 불룩 쳐진 자궁과 배에 선명하게 얼룩진 터진 핏줄들. 서글펐다.


출산 후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 부어오르는 내 모습은 더 충격적이었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뼈대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던 죽기 직전의 할머니 모습. 늘 퉁퉁 부어 있던 발 역시 어찌나 매끈한 모습이던지. 나는 사진을 찍어 간직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을 낳은 직후의 인간과 생명을 마감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렇게 대조적이라는 게 끔찍하도록 희한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죽은 내 강아지 하루 생각도 났다. 엄마는 몸이 식은 하루에게 온기를 불어넣듯 담요로 싸 꼭 안았는데, 병원서 퇴원하며 처음 받아 든 내 딸 역시 강보 안에 싸개로 동여매 품에 안았다. 어쨌든 이제야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고, 일상은 익숙해질쯤 또 새롭고 어려워지겠지만, 분명한 건 나는 지금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고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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