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주. 예정일까지 불과 2주도 남지 않았다. 정말 믿을 수 없게도 배는 더 불러오고,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다.
가슴 아래부터 방광 위까지 꽉꽉 차있는 불편한 느낌. 거센 태동에 밤잠을 설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양 손이 퉁퉁 부어서 아예 주먹 조차 쥐어지지 않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져서 결혼반지를 빼는데도 한참 애를 먹었다. 발은 또 어떻고. 원래도 못생긴 발이라 가꾸거나 눈길 주지 않았지만, 이건 정말.. 못 봐줄 정도다. 맞는 신발도 없어 친구와의 약속에 여름 샌들을 구겨 신고 나갔다가 벌써 가을 부츠를 신은 여자애들을 보고는 억지로 발을 스트랩 안에 욱여넣었다. 아프다.
"이러다가 애가 정말 4kg로 나올 수도 있겠어요. 그럼 낳을 때 엄마만 힘들다고요. 제발 부지런히 걸으세요. 아셨죠?" 의사 선생님이 계속 호되게 구는 통에 매일 1시간가량 동네를 빙글빙글 도는데, 아무리 바람 불고 선선해졌다고 해도 땀이 비 오듯 줄줄 흐른다. 걷다가 잠시라도 숨을 고르려고 멈추면, 옆에 있던 남편이 "왜, 힘들어? 지금 상태가 어떤데? 자세히 말해봐"라고 채근하는 통에 더 어지럽다. 밑이 빠질 것 같은 기분을 설명하려다 결국 그냥 끙 소리만 내고 만다. 귀찮다.
자연스럽게 허리를 양손으로 받치며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 정말 허리가 빠개질 것 같다. 일평생 앞주머니에 새끼를 달고 다니는 캥거루에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게다가 뛰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캥거루는 새끼를 낳는데 별다른 진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임신 후 한 달이면 새끼가 나오기 때문인데, 새끼는 사실상 다 자라지 않은 태아의 상태로 어미의 털을 하나씩 잡고 차근차근 기어서 30cm 되는 거리에 있는 앞주머니에 오른다. 제 힘으로 그렇게 안착한 뒤에는 젖꼭지를 힘겹게 찾아 물고 여섯 달 동안 꼼짝 않고 지낸 후에야 바깥을 내다보는 상태로 자란다고. 그저 어미가 뒤로 낳고 앞으로 넣어 다니는 줄 알았는데 새끼의 노력이 반절 이상이었다. 가상하다.
한 달 전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병원에 가고 있는데, 그때마다 똑같은 흑백 초음파 사진 2장을 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머리 둘레를 잰 사진인데, UFO 같은 비행물체 자료화면처럼 검은 화면에 둥그런 윤곽만 나와 있다. 게으른 나는 이걸 왜 매번 주나 싶어 그냥 그대로 산모수첩에 끼어두고만 있었다. 그러다 오늘 쭉 늘어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머리 위치가 미세하게 조금씩 아래로 내려와 있다. 세상에. 조그만 게 머리부터 내밀면서 바깥으로 나올 궁리를 하고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다니.
내 몸에 대한 연민이 앞서면서도, 아이 역시 세상으로 나오려는 고통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갸륵한 마음이 든다. 별 감흥 없던 초음파 사진을 다시 보곤 조금씩 음영을 달리하며 모양을 바꾸는 달처럼 예쁘다는 생각도 그제야 들었다. 나와 아이가 부디 각자의 공포와 두려움을 잘 이겨내고 무사히 만났으면 좋겠다. 오랜 진통 없이 내가 힘을 주는 만큼 아이도 힘을 내서 말간 얼굴을 보이고 나와주길, 매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