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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Feb 07. 2017

뒤집기 시작

생후 120일. 대격변의 시기다. 아이는 '뒤집기'를 시작했다. 이게 엄청 신기한데 두 발을 들어 올리면서 동시에 제 몸을 반쯤 옆으로 누인 다음에 등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홱 뒤집는 것이다. 이걸 처음 성공한 날은 104일째였는데, 그때만 해도 어깨와 가슴 사이에 낀 손을 빼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더니 어제부턴 제깍 뒤집어 팔빼기까지 3초도 안 걸린다. 가만히 누워만 있던 아이가 온 힘을 다해서 제 몸을 뒤집는다는 게 부모로서 얼마나 놀랍고 재밌는 일인지... 괴상한 희열감까지 드는데 달리 설명할 데가 없다.


아무튼 몸을 도로 눕히는 '되집기'라는 것은 아직 할 줄 몰라서 또 지가 뒤집은 뒤에는 금방 낑낑, 켁켁 댄다. 급기야 웩웩 거리며 헛구역질까지 하는 통에 아이가 뒤집으면 조금 뒀다 몸을 반대로 젖혀 주는데, 그렇게 눕혀놓으면 금세 뒤집고 다시 눕히면 조금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또 뒤집고. 이 짓을 서로 계속 하는 거다. 그야말로 무한 반복. 사람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손이 많이 갈 시기라 고생하겠다 위로하는데, 아직은 우습고 귀엽고 그렇다. 단지 그러고 싶어 그러는지 아니면 몸이 자동반사적으로 그렇게 움직여지는 건지 궁금할 뿐. 어쨌든 많이 컸다.


아이가 정말 많이 크고 있구나 하는 건 손톱만 봐도 안다. 어제 잘랐는데 오늘 또 길게 자라 있는 거다. 신생아 때는 종이 인형 자르듯 가위로 조심조심 오리는 것 같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손톱이 단단하게 여물어 제법 깎는 느낌도 난다.


아이가 폭풍 성장하면서 복직 날짜도 다가오고 있다. 엄마에게 손 벌리지 않고 베이비시터를 쓰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지 오래. 결국 친정인 파주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고, 내가 당분간은 장거리 출퇴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복직이야 이미 일찍이 맘먹은 일인지라 애석함은 없는데, 고단할 엄마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려면 더 뻔뻔해져야 한다는데, 한쪽 팔이 완전히 들어 올려지지 않을 정도로 아픈 엄마에게 아이를 종일 돌보게 해야 한다니 죄책감이 들고 이런 감정이 작고 어린아이를 내 품에서 떨어뜨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애달픔을 압도한다.


돌이 지나고 내년 3월 어린이집 보내기 전까지 1년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생업도 접어두고 기꺼이 아이를 키워주기로 한 엄마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울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내 아이가 얼른 되집기도 했으면 좋겠고, 계속 안고 있지 않아도 되게끔 앉아 있기도 했으면 좋겠고, 밤수도 끊고 통잠을 잤으면 좋겠고. 막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빨리 커버리면 어떡해. 안돼. 이러면서 서운하고 막. 왔다리갔다리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못살아.


많이 컸다. 사랑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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