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telmen May 04. 2017

워킹맘 일기

길게 뭔가를 적을 시간과 여유는 도저히 없고, 짧게 끄적인 메모를 이어 붙인다. 복직한 지 한달이 됐다.

#워킹맘 1주차


1. 십년 넘게 일산과 파주에서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엄마의 출근길을 봤다. 대학 다닐 땐 아침에 차를 얻어 타고 가면서 잠을 잤는데, 꽉 막힌 강변북로에서 엄마는 화장도 하고 또 가끔은 졸면서 사고를 내기 일쑤였다. 아이를 낳고 엄마에게 맡기면서 그 짓을 내가 이어 하고 있네. 아, 징글징글한 밥벌이의 삶이란. 왜 남편이 매주 사는 로또는 숫자 하나가 맞는 법이 없는가. 친정에서 엄마가 직장 다닐 때 입던 자켓을 빌려 입고 나선 출근길. 비가 오고 차는 막힌다.


2.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사실 너무 피곤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 사실 내 딸이 제일 보고 싶다. 그리고... 이현이가 진짜 날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없는 듯. 그래서 오늘도 전속력으로 달렸다. 일도, 운전도. 왕복 76km의 삶 시작.


3. 어제 하루 안왔다고 그러는 것인지 오늘 만난 이현이는 계속 칭얼대다 잠이 들었다. 쪼끄만게 조금 컸다고 감정과 의사를 다 표현하고. 평일에 제대로 눈 마주칠 시간은 출근 전 퇴근 후 각각 한시간 남짓이라, 물고 빨고 바빠서 최신 사진이 없네.. 필름도 셔터 한번 못 누른 채 새 롤 그대로. 이제 주말!


#워킹맘 2주차


오늘도 이현이가 졸린걸 꾹꾹 참아가며 나랑 놀아줬다. 하품하고 웃고, 눈 비비고 웃고. 제 얼굴을 내 목덜미에 파묻으며 웃고, 내가 볼을 부비면 고개를 뒤로 젖혀 나를 빤히 보다 또 웃고. 시간이 부족한 걸 저도 아는 것 같다. 그러다가도 침대에 누이고 자장가 불러주면서 몇번 토닥이면 또 금세 잠에 든다. 조금 뒤척여도 보통은 아침까지 내리 자는데, 새벽에 깨더라도 보채거나 우는 법이 없다. 며칠 전엔 말똥한 눈을 보고도 너무 피곤해 실눈을 뜬 채 미동도 않고 있어봤더니 나를 확인하곤 혼자 쪽쪽이 물고 빼고 인형 좀 쓰다듬다 이내 휙 다시 돌아누워 자더라. 다들 일하면서 밤에 아이까지 보면 힘들겠다 짐작하고 위로하는데, 정말 아이가 날 힘들게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그냥 나만 잘하면 된다. 묵묵히 버티는 거다. 이렇게 또 주말이 오고, 시간이 가고, 그럼 아이가 크고, 나도 뭐든 되어 있겠지.


#워킹맘 3주차


나는 이제 이현이 없인 못살게 되었지만 지난 결혼생활 동안 아이 없는 삶을 고민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현이 덕분에 더 기쁘고 앞으로도 그럴거라 믿지만 여전히 아이 없는 삶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내가 지금 내 아이로 인해 누리고 있는 행복과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누군가의 행복의 크기가 다를 것이라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지 않아서 또는 아이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있을 것이고, 나 역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몫이 있는거라 여긴다. 이 볕 좋은 날,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이를 끼고 또 다시 시작되는 일주일에 대한 마음을 다잡으면서.


#워킹맘 4주차


1. 엄마에겐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말하고, 남편에겐 "생각보다 힘이 든다"고 말한다. 그런데 둘 다 사실이다. 워킹맘이라는 건 정말 생각했던 것보단 체력적으로 견딜만 하고, 또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이다. "숨돌릴 틈 없이 일하지만 대부분 정시퇴근이 가능하고, 아이와 눈맞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도 남이 아닌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해 맡기고 있고"라는 '비교적 나은 상황'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 우습다. 도대체 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감정의 극한에 내몰려야 하는 것인지? 어제는 남편에게 지금의 내게 나타나는 여러 징후들이 변종된 산후우울증은 아닐까 토로하며 울고 말았다.


2. 이렇게 매일을 전전긍긍하며 살다가 시간이 가서 아이가 훌쩍 컸을 때, 아이가 나의 어떤 모습을 기억해줄까 생각하면 문득 서글퍼지는 것이다. 내가 주로 기억하는 엄마는 마흔 이후의 엄마인데, 그때 엄마는 "삼십대 때는 맨날 마흔이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마흔이 넘으니 지금은 얼른 오십이 되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그 나이가 되면 어떤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갈망 같은 거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이젠 내 애까지 떠맡아 키운다. 생각해보면 서른, 마흔, 오십의 엄마는 너무 앳됐는데 난 애석하게도 그 젊음을 알아채준 적이 없다. 그리고 현재 삼십대의 나 역시 얼른 마흔이 되기 만을 바라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지금보다 
조금 나을 것이라 막연히 기대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사 먹는 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