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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May 08. 2017

나의 말(1)

나는 내가 쓴 글을 거의 분단위로 검수하듯 재확인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과 텍스트로 주고 받은 대화의 오탈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남편은 나를 활자 강박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그에 비해 말은 자주 헝클어진다. 유독 남편 앞에서. 나조차 가장 어이 없을 땐 아예 일상적 단어를 다르게 말할 경우다. 리모컨을 휴대폰이라고 한다거나 냉장고를 세탁기라고 하는 식. 순간적인 의식의 흐름에 따라 추천을 전혀 뜸금없이 충전이라고 한 적도 있다. 남편은 대개 기똥차게 알아듣곤 되묻지 않고도 민첩하게 반응하지만, 얄밉게도 실수에 대한 지적을 빼놓진 않는다.


티는 안냈어도 내 신경회로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 낳고 더 심해진건 아닌가 내심 걱정했는데, 많은 여자들이 그러는 것인지 장강명의 <5년만에 신혼여행>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HJ는 바닐라 칩도 사고 싶다며 바닐라 칩을 파는 가게를 찾으러 가자고 했다. "바닐라 칩? 그런 것도 있어? 필리핀 특산물인가?" "바닐라 칩 몰라? 술집 가서 마른안주 시키면 늘 나오잖아. 김이랑 땅콩이랑 같이 나오는 거." "바나나 칩 얘기야?" "아, 바나나 칩." HJ도 그렇고 장모님도 그렇고 명사를 마구 헷갈리며 아무렇게나 말하는 습관이 있다. 여자들이 애 낳고 나면 그렇게 된다는데, HJ는 애도 안 낳았는데 그런다. 회사에서는 안 그런다고 주장한다.


이걸 읽던 남편은 "자기야, 장강명 와이프도 단어를 막 바꿔 말한대. 그리고 자기처럼 똑같이 말해. 다른 사람 앞에선 안그런다고." 라며 배를 잡고 킥킥 댔다. 나는 거기다 대고 정색 또 정색. "진짜 그래."라고.

남편이 우스워하는 나의 말하기 버릇은 또 있다. 바로 색깔을 이야기할 때인데, 예컨대.


(쇼핑몰 화면 보여주며) 오빠, 나 이 화이트 진이 갖고 싶어. 예쁘지?
- 예쁘네. 근데 이런 비슷한 것 있지 않아?
아니 없는데?
- 작년에 여행갔을 때 입지 않았어?
아, 그건 찢어졌고 이건 안찢어졌잖아. 그리고 이건 웜화이트야. 그냥 화이트가 아니라.
- 그게 무슨 말이야?
좀 따뜻해 보이는 느낌의 화이트라고. 그냥 백색이 아니란 말이야.
- 그럼 아이보리라는 뜻이야?
아니 아이보리가 아니라 웜화이트라니까?


이런 식의 논쟁은 우리 둘 사이에 종종 있는 일인데... 남편을 혼란스럽게 하는 어휘는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브라운이 아닌 카멜브라운, 베이지가 아닌 샌드베이지 등등등. 사실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스울 때가 있지만 남편은 진한 감청색과 검은색을 구분하지 못하고, 특히 카키색을 그냥 녹색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진한 갈색이라 일컬을 정도의 색깔 무식자이므로 공연히 더 고집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TV를 보는데 올해의 팬톤컬러에 대해 나오길래 이렇게 말했더니. 남편은 저렇게 왈.

오빠 올해 블루가 유행 키 컬러인가봐. 근데 그냥 블루는 아니고, 라피스 블루.
- 뭐, 쿨피스? 뭔소리고?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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