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출산용품 100개 정도 샀을 때 남편은 카시트 딱 1개 샀더라고요.
똑같이 모르는 상태인데 이걸 왜 저 혼자 하고 있는지 불편함이 밀려왔어요.
육아는 ‘엄마 몫’?… ‘누구나’ 쉽게 육아용품 살 수 있어야죠 라는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이 코멘트에 눈길이 꽂혔다. 조카 둘을 먼저 키운 시누이에게 물려 받은 것들을 대부분 활용하고 있음에도 나 역시 육아와 관련한 일련의 소비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다 혹해서’ 또는 ‘참을 수 없이 예뻐서’ 사는 것들을 제외하고선 아이와 연관된 물품 구입은 즐거운 소비 경험이라기 보다 방대하고 치열한 정보 검색 등의 학습을 수반하는 반복 노동이다.
이유식을 처음 시작할 때는 온갖 검색을 통해 찾은 A부터 Z까지의 맥시멈 리스트를 노트 한장에 빼곡히 적은 뒤 며칠에 걸쳐 지워나가는 일부터 했다. 사거나 안사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매 결정마다 쉬운 게 없었다. 예컨대 조리도구를 어른과 구분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정말이지 도마나 칼까지 새로 장만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도마는 샀고 칼은 원래 있는 것을 소독해 썼다)
괜히 복잡해 보이고 겁났지만 이유식이라는 게 월령에 따른 단계별로 묽기만 달리 하되 죽을 만들면 되는 거였는데 왜 통5중 냄비를 사야 하는지를 두고 머리를 싸맸는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조금 실없어진다. 하지만 그땐 나름 치열했다. '국민OO' 라는데 정말 안사도 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당시 내 메모장엔 "검색만 했을 뿐인데 세상 모든 야채를 다진냥 피곤해짐"이라고 적혀 있다.
분유나 기저귀 등이 떨어지지 않도록 제때 채워 넣는 것도 늘상 '타임 푸어'인 워킹맘에게는 도전 과제다. <나는 워킹맘입니다>의 저자는 출근 준비를 하면서 또는 근무 도중에 장볼거리 등을 끊임없이 계산하는 자신의 일, 육아, 살림이 뒤엉킨 머릿 속과 역할을 넘나드는 멀티태스킹에 대해 토로한다. 어떤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는 시간을 '오염된 시간'이라며 워킹맘은 하루 24시간이 그렇다고도 말한다.
나의 경우 남편이 꽤나 적극적인 육아 참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소비 활동은 내가 전담하고 있다. 가령 이유식은 남편이 만들었지만 용품 및 음식 재료는 모두 내가 구입했다. 특별한 고민과 의논을 거친 결정은 아니었는데 이 기사를 보고 불균형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똑같이 일을 하는데도 퇴근 후 저녁 일정을 잡지 않고 아이를 보는 것, 또 어쩌다 생긴 약속이라도 아이가 아프다는 변수로 취소해야 하는 것 등을 온전히 엄마인 나만 하는 문제와 본질이 같다. (평일에도 나는 친정인 파주에서 출퇴근한다. 직장과의 거리는 왕복 100km다) 명분 없는 당위성같은 게 엄마에게 자연스럽게 더 요구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우리 부부에게 이게 큰 문제는 아니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의 총량 자체가 엄마인 내가 더 많긴 하나 그 밖에 가사 노동은 거의 아빠 몫이기도 해서 꽤나 공평한 분담 체계를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에서 남편의 참견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내 입장에선 사실 마뜩잖다. 남편이야 어쩌다 한 마디 한 것이겠지만 가뜩이나 없는 틈을 쪼개고 품을 들여 뭘 알아보고 사는 것까지 해야 하는데 의견 조율에까지 힘을 빼야하는 일이 피로도를 배로 높이니 말이다.
간밤에도 아이가 깔고 자는 매트를 새로 장만하는 문제를 두고 남편과 투닥거렸다. 평일엔 친정, 주말엔 우리집을 오가며 잠을 자는 아이 따라 깔고 자는 매트며 베개까지 들고 다니다가 몇달 전 분리를 했다. 마침 시누이가 줬는데 쓰지 않고 있던 요가 있어 친정서 쓰고 있는데, 이게 오래 쓴탓인지 뻣뻣함이 하나도 없어서 애가 뒤척일 때마다 말리는 불편함이 있다. 거기에 우리집에 두고 쓰던 요는 친구한테 빌린 범퍼침대서 떼낸 것인데, 다시 돌려줘야 할 때가 돼서 내친김에 아예 두개를 새 것으로 사자 싶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하나 “가격이 얼만데? 두개나 필요한가?” 답이 돌아온다. 내심 “필요하면 사야지” “자기가 알아서 해” 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라 "이게 지금 내가 사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고!"라며 소리를 빽 질러 버렸다.
사지 말자는 게 아니라 두개나 필요한지 자신도 생각해보려고 말을 한거라기에 “당연히 필요하니까 사는 거지, 내가 그냥 생돈 쓰고 싶어서 사는 거냐! 애랑 매일 밤 자는 건 난데, 선잠자면서 애가 데굴데굴 굴러다닐 때마다 비몽사몽간에 바로 눕히고, 그때마다 말려 있거나 저 밑으로 내려가 있는 이불을 바로 펴는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당신이 아느냐!”고 되받아쳤다. 입 한번 뗐다가 혼쭐이 난 남편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얼어버렸고, 나도 민망해 얼굴을 돌려 버렸다.
결론이 어떻게 났냐고? 당연히 부둥켜 안고 "이현이가 깔고 잘 매트에 돈 아끼지 말자"며, 같이 색깔까지 신중하게 상의해 고르고 결제를 했다. 두개. 3개월 할부로!
부모가 되어 뭔가를 같이 결정짓는 일은 어쩜 이렇게 전과 달리 매순간 낭만적이지 않는 건지... (그럼에도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미스테리) 이 '베베템'이라는 비즈니스가 잘될 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엄마 창업자에게 괜한 연대감과 고마움이 들어 응원하고 싶다. 물건 하나를 사는 일에도 늘 마음 졸이고 또 쉽게 옹졸해지지만 그게 함께 부모가 되는 과정이라고,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안을 느꼈다. 초보 엄마 아빠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