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을 잘 할 줄 모른다. 스킨, 로션, 파우더(요즘엔 쿠션이라는 걸 쓴다)로 기초화장을 끝내고, 눈썹, 마스카라 그리고 립스틱이 끝이다. (립스틱도 잘 쓰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나름 불긋하고 선이 분명했던 입술도 색이 희미해져 꼭 챙기게 됐다) 기본적으로 구색은 맞춰 다 하는 것 같은데, 언젠가 친구가 화장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게 끝이야?" 했다. 그 정도로만 한다. 이렇게 대강인 이유는 시간이 없고 귀찮아서인 것도 있지만 사실 제대로 할 줄 몰라서가 더 크다.
내가 처음 화장을 시작했던 건 고등학생 때다. 요즘에야 초등학생도 화장한다지만 나 때는 중학생 때만 해도 화장하는 친구들은 날라리 취급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그게 끝이야? 했던 인물과 동일) 엄마가 헤라 방판을 취미삼아 하셨었는데 덕분에 엄청난 종류의 색조 화장품을 덤으로 가졌다.
그땐 더더욱 화장하는 방법을 몰랐으니 바르고 또 촌스럽게 덧댔을 터. 베이스크림에 파운데이션에 다시 파우더, 그리고 볼터치까지 했던 것 같다. 누가 봐도 티가 안났을 것 같지 않은데 난 그런 얼굴 모양새를 하고 교무실에 참 자주 들락거렸다. 교칙이 센 학교였지만 화장 때문에 선생님께 혼났던 적은 없었다. 왜냐면 나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반장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교사 부모를 가졌던 덕분에(?) 나름 특권을 누렸던 것 같다. '쟤 OOO 선생님 딸'이라는 꼬리표가 늘 내게 붙어 있었다.
실제로 선생님 딸이 맞았다. 나의 화장은 학교에서 자유로웠으나 집의 감시를 피하긴 어려웠다. 집에 선생님 둘이 더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특히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 때 내내 학생부 주임을 맡았다. 화장품을 사면 뺏고, 교복 치마를 줄이면 접어 올린 밑단을 도로 뜯어 말도 없이 원상복구를 해놓기 일쑤였다. 나는 그때 그런 방식이 꽤나 폭력적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반항을 별다르게 해본 것은 아니지만. 여튼 내가 화장을 지금 잘 못하는 이유는 어려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내 아이에겐 화장하는 법이나 눈썹 다듬는 일을 꼭 가르쳐 주리라 오래 전 다짐했다. 처음 쓰는 제품도 마구잡이로 사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것을 같이 골라 주리라 뭐 그런 상상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남편에게 하자 "요즘 애들은 유튜브로 화장하는 것도 배울 테니 알려줄 필요 없어. 알려준다는 생각 자체가 간섭일걸?" 한다. 그렇구나.. 단꿈 하나를 잃은 기분. 그래도 참 다행이다. 아이가 엄마 아빠 말고도 친절하게 세상살이를 알려주는 다양한 어른을 많이 만나면 좋겠다. (유튜버 화이팅...)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취향과 매력의 기준을 스스로에게서 먼저 찾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발산했으면 좋겠다.
아이가 화장을 좋아하면 화장하게 해. 패션에 관심이 많으면 옷을 차려입게 해. 하지만 둘 중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으면 또 그런 대로 내버려 둬.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기 위해서는 여성성을 거부하도록 강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마. 페미니즘과 여성성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아. 상호 배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여성 혐오적인 생각이야. (중략) 절대로 아이의 외모와 도덕성을 연결 짓지 마. 짧은 치마가 '부도덕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 옷 입기는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과 매력의 문제라고 가르쳐. 너랑 치잘룸이 그 애가 입고 싶어 하는 옷에 대해 의견이 충돌했을 때 너희 엄마가 그러셨듯이 '창녀 같아 보인다.'는 것 같은 말은 절대 하지 마. 그 대신 "그 옷은 저 옷만큼 너한테 잘 어울리지 않아." 또는 "저 옷만큼 잘 맞지 않아." 또는 "저 옷만큼 매력적이지 않아." 또는 그냥 "안 예뻐."라고 말해. 하지만 절대 '부도덕하다.'는 말은 하지 마. 왜냐하면 옷은 도덕성과 절대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으니까.
머리를 고통과 연결 짓지 않게 해.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숱 많고 긴 내 머리를 땋는 동안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가 생각나. 머리를 다 땋을 때까지 얌전히 있으면 상으로 받을 초콜릿 한 봉지가 내 앞에 놓여 있었지. 뭣 때문에 그랬을까? 우리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그 수많은 토요일을 머리를 하면서 보내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봐. 뭘 배웠을까? 어떤 어른으로 자라났을까? (중략) 그러니까 치잘룸의 머리에 관해서는, '단정하다'는 개념을 재정의하도록 해 봐.|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