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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Dec 29. 2017

소영의 독서

대학 동기 소영이는 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어했다. 작고 마른 체구에 말수도 많지 않고 조용한 소영이가 왜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의아하고 신기하다. “스포츠 기자가 돼서 2012년 런던올림픽, 2013년 WBC, 2014년 브라질월드컵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취재하고 싶어"라고 낮은 목소리로 다부지게 말하던 스물 셋 어린 소영을 기억한다.

나는 당시 본래 전공을 두고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며 설칠 때인데,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그리는 나와 달리 구체적인 목표를 이야기하는 소영이 멋져 보였다.

우리는 엇비슷한 시기에 기자가 됐다. 소영이가 바로 스포츠 기자에 입문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유학을 가지 못했다. 어쨌든 함께 사회로 나와서 같은 직업을 갖고 크게 다르지 않은 매체 환경에서 일한다는 게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됐다. 나는 도중에 진로를 바꿨지만, 소영이는 덤비고 깨지고 낙담하고 일어나길 반복하며 정진했다.

이후 소영이 언론사 몇 군데를 옮기며 마침내 원하던 스포츠 기자 타이틀을 달았던 때, 정말로 올림픽 현장을 누비게 됐을 때, 느꼈던 희열을 곁에서 지켜봤다. 소영이는 1년에 7개월을, 일주일 중 6일을 야구장에서 살았다. 자주 못볼 땐 기사로 안부를 확인했다. 소영이의 기사를 읽으면 생기 넘치는 표정과 눈빛이 절로 상상됐고 안심이 됐다.

하지만 극한의 취재 일정으로 소영이는 몸이 자주 아팠다. 위급한 수술을 한 적도 있다. 배가 아픈 줄로만 알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참다 기사 마감 후 집에 왔는데 결국 한밤중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했다. 그때 소영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때로는 동료와 경쟁하면서 또는 취재원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과 생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소영은 독서모임을 시작했다고 내게 얘기했다. 나도 창비에서 하는 소설학교를 다녔다. 우린 모두 ‘읽기’와 ‘쓰기’로부터 각자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나는 역시 또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으나 소영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책읽기를 꾸준히 해온 모양이었다. 이를 기록한 <모두의독서>라는 책을 얼마 전 내놨다.

책에는 기자가 되고 싶은 꿈을 이뤘으나 즐겁지 않고 무기력했던 시간들, 자신감 없어 쉽게 주눅들고 뒤로 숨어야 했던 모습을 책읽기로 치유한 한 직업인의 고백이 담백하게 적혀 있다.

소영이는 독서 이후 질문하는 관점과 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가령 "오늘 경기에 대한 소감은요?" "체력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보강한 건가요?" 대신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건가요?" "이 일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인터뷰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에 만난 소영이는 말했다. "나중엔 스포츠 소설을 써보고 싶어. 우리나라가 스포츠 장르 문학 불모지잖아.” "그러려면 지금 더 취재를 열심히 해둬야 한다”고도 했다. 언제쯤 소영이의 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기대된다. 다음달 소영이는 평창으로 간다.

#모두의독서 #1만부기원 #응원한다 

소영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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