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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May 16. 2018

자극의 경계

'TV 없이 아이를 기른다'는 생각은 ‘아직’ 안해봤다. 모든 걸 섣부르게 말해선 안되지만, 솔직히 앞으로도 안할 것 같다. 온집안 식구들이 뉴스 중독이라 (아이를 위해 일부러 TV 없는 환경 만들기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느 정도 가이드 하에서 미디어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동감하지만, 과연 아예 단절시켜야 하는 일인지는 판단이 안선다. 무엇보다 아이도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부모가 그렇게 결정한다고 뜻대로 다 될리 없다고 생각한다. 산골에 사는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아이 옷을 삶거나 식기류를 소독하지 않고 쓰게 된 것처럼, 아이에게 모든 것을 '무결'한 상태로만 내어줄 수 없듯 '무자극'의 삶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휴대폰이라는 기기나 영상 매체라는 것이 자극의 정도가 매우 크다는 것은 나도 고민이다. 아이는 어른처럼 계속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하지 않고, 같은 것을 반복해서 재생하려고 한다. 그만큼 과몰입(중독)을 유발한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앞으로 더 어렵겠지. 그 와중에 반대급부로 '책을 보게 하는게 좋다더라'는 당연한 소리는 너무 안일한 말 아닌가 싶어 실소가 나면서도, 그래서 더 엄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책도 자극의 정도가 단계별로 다르니 내용이나 그림체에 따라 아이가 흥미를 갖는 시기가 다 다를 것인데, 그냥 내 맘대로 골라서 사주는게 당장 무슨 의미가 크게 있는지 모르겠다. 또래 유아가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3분도 되지 않는다는 글도 읽었다. 실제 책을 가져와놓곤 두 장 넘길까 하면 다른 책을 가지러 간다.

남편과 나는 아이한테 무작정 "우리 책을 읽어볼까? 가져와봐" 라고 말하기 보단 그냥 놀잇감처럼 주변에 책을 많이 두거나 서점에 자주 데려가 보여주기로 했다. 집 앞에 꽤 큰 동네 서점이 있는데, 서가별로 그 연령대에 맞는 책상과 의자가 구비돼 있다. 아이는 이 공간에 흥미를 갖고, 미로 같은 서가를 엄마와 숨바꼭질을 하듯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또 다행히 우리집도 그렇고, 아이가 주로 있는 친정도 책이 꽤 많은 편이다. 덕분에 아이는 책이라는 사물에는 매우 친숙해 있다.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물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를 두고 느긋하게 책을 읽기란 힘든 일이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아이를 낳은 뒤론 책 읽는 시간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아주 틈틈이' 독서법을 활용한다. 예컨대 차에도 한 권, 사무실에도 한 권, 집은 화장실, 거실 등에 한 권씩 두고 '5분간 읽기', '3장씩 보기' 등을 간헐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여러권을 동시에 읽어 버릇한 내게는 이 방법이 아주 유용하다.

얼마 전 휴가지에서도 남편과 내가 책을 읽을 때 아이는 무척 관심을 보였다. 물론 책 자체 보단 엄마아빠의 관심을 뺏아간 '그 무엇'에 대한 것이겠지만. 나는 아이가 내 무릎에 앉아 내가 읽던 책을 살펴보던 행동들이 모두 책을 읽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내 책을 덮고 뺏으려고 할 땐 "엄마 이것 '한개만' (우리 아이에게는 '조금만 더'란 의미다) 더 볼게"라고 하니, 어느새 다른 책을 가져와 제 앞에 펼쳤다.


독일에선 "아이에게 최대한 지루한 시간을 갖게 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부모가 뭘 하라고 정해주지 않는 시간 안에서 아이가 자율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뭐 그런 뜻이겠지...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집중해 시간을 쓰는 아이를 보면서 공감이 갔다. 반성도 됐다. 아이보다 내가 지루한 시간들(차로 이동할 때,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 등)을 못견디고 휴대폰을 먼저 주기도 했으니까.

적어도 내가 읽어 본 대부분의 육아서는 ‘아이와 스마트폰을 최대한 멀리 하고 차단시키라'고 주문한다. '육아서는 성경이 아니'라고 늘 마음을 다스리지만, 그냥 흘려 듣기 어려운 건 분명하다. 나 역시 “쿨하게 유튜브 보여줄거야”라고 하면서 내심 안좋은 영향이 있을까 조금 겁도 난다. 실은 얼마 전 스마트폰 중독을 다룬 SBS 스페셜을 본 주변 엄마들이 파르르 떨며 얘기하는 걸 듣곤 생각이 많아져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지. 난 아이가 핑크퐁 체조 영상을 보면서 따라 율동하고, 팔을 머리 위로 뻗으면서 옆구리를 꼰다든가, 선 채로 몸을 엎드린다든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동작을 해보는 모습이 너무 너무 대견하고 귀여운걸... 그래, 영상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잖아. 결국은 강도와 지속 문제. 자극의 경계에서 적절하게 판단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우는게 내 할 일이다. 아니 할 수 있는 일. 
정답이 없는 엄마공부. 오늘도 헤맨다. 글도 급하게 마무리!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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