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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Nov 20. 2018

나의 말(2)

1. 만 25개월 아이는 귀도 뜨이고 입도 트여서 내가 하는 말을 족족 입력해 고대로 내뱉는다. 입을 웅얼거리며 말의 모양을 흉내 내려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순간 단어의 첫음절을 따라 발음하더니, 이젠 단어를 이어서 하나의 문장을 만들고 고스란히 제 것으로 흡수한다.

아이의 말을 통해

처음으로 내가 하는 말의 영향력을 생각했다.


난감한 건, 요즘 말이 느는 속도 못잖게 자기 고집이 세진 아이가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거나 제 성에 못이겨 드러눕거나 할 때. 아이를 어르고 달래 보다가 결국 상황에 쫒겨서 화를 내게 된다. 여유있게 말을 고를 시간 같은 건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급적 예쁘고 긍정적인 말만 해줘야지 하는데도 생각이라는 걸 할 틈 없이 나오는 말들은 당연히 다 내 마음 같지 않게 못생겼다. 나는 앞으로, 말의 생김새 뿐 아니라 맥락과 이유까지도 세심히 살피고 친절히 알려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 성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관건이다. 과연 육아는 끝없이 고독한 수행이구나.



2. 지난 7월 부로 팀장이 됐다. 조직이라는 건 하이어라이키가 분명해서, 같은 팀 동료로 좋게 일하다가도 장과 원이 되면 관계가 변한다. 원래 더없는 사이였다가도 복잡한 셈법이 더해진다. 내가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든, 호의로 무언가를 챙기든 그런건 더이상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말에 실리는 힘이 생긴다. 조직에선 사실상 말이 곧 역학관계이고 위계다. 모든 건 말에서 시작되고 말로 끝난다. 그래서 팀장은 역할과 권한, 권위를 잘 구분하고 말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어렵다.


여전히 헤매는 중이지만, 한 바퀴(1분기) 돌아보니 깨달은 건 하나 있다. 팀장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말만 많은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보탤까 말까 조금이라도 고민이 되는 말은 무조건 덜어내야 하고, 디테일한 원칙은 상기시키되 마이너한 이슈는 들추지 않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서로 불편한 '지적'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적당한 긴장과 갈등은 좋은 자극 요소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팀을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훌륭한 디렉션은 긴 말이 필요없다.


3. 부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나는 음악 사조도 잘 모르고, 밴드에 대해선 더욱이 잘 모르지만, 영화를 보면서 '퀸'이라는 팀에 대해서 감명 받았다. 프레디 머큐리가 기자들 질문에 “나는 리더가 아니라 리드 싱어"라고 할 때 그 담백한 자기인식에 대해, 홀로서기를 하려다 깨달음을 얻고 팀원들에게 돌아와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사과할  때 그 겸허함에 대해, 그리고 모든 멤버가 각자 의견을 내고 함께 노래를 만드는 장면들을 보면서 무척 인상 깊었다.


“서로 싸우는 거 있잖아요. 그런 일은 항상 있어요. 우린 만나기만 하면 싸웠어요. 투어공연을 하던 첫날에 싸우기도 했어요. 이 세상에 싸울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우리는요. 음악적인 이유, 아이디어 같은 것 때문에 다투는 거예요. 우리는 각자 강한 개성을 갖고 있잖아요. 각자의 고유한 자아가 있는 거니까 그런 이유로 아주 심하게 싸우는 거예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런 싸움은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느 한명이 밴드를 자신의 강한 개성으로 색칠한다면 밴드가 깨지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좋아, 젠장. 멍청이! 내가 나간다" 하면서 나가버리는 거죠. 다른 밴드에 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우리 넷은요.. 굉장히 강한 개성을 모두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그걸 각자 갖고 가는 거예요. 저는요. 음악이라는 게 계속 있는 한, 사람들이 계속 우리의 음악을 듣는 한, 싸우고 그런 것 따위 상관 없어요."|프레디 머큐리 인터뷰 中


내년 이맘 때면 사회생활 만 10년을 채운다. 어떤 변곡점 앞에 서 있는 기분인데, 일찍이라면 일찍 팀빌딩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음에 새삼 감사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꽤 괜찮았던 팀장으로 남을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기회(관계)를 망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말을 고르고 가다듬는다. 마찬가지로 좋은 엄마, 화목한 가족이란 것도 애초에 정해진 게 없고, 끊임없이 서로 나누는 말을 통해 그 물성이 변하는 것 아닐까? 문득 엄마와 나 사이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서로 상처주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다가 삼키는 관계가 돼버렸다. 모두에게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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