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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Aug 19. 2018

여기서 모성보호가 왜 나와?

일상 페미니즘 논쟁

얼마 전 남편과의 일화. 회사에 다자녀를 둔 여자 선배가 있는데 완전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단다. 휴가지에서도 본인이 써야겠다고 생각한 기사를 쓰거나, 업무 지시를 한다는 거다. 이번에도 출산기를 기사로 썼다. 게다가 아이를 낳고 몇시간 후에 팀 후배에게 발제거리를 보고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남편에게 "그게 이상한 거야?"라고 물었다.


남편은 벙찐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왜 또 예민해, 나는 '모성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잖아"라고 했다.


뜨악했다. 모성보호라니? 여기서 모성보호가 왜 나와?


노르웨이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부성보호’라는 개념이 나온다.


현대 남성과 여성의 특징, 그로 인한 고정 성역할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소설. 여성(움)은 힘을 쓰는 어부로 일하고, 돈을 벌어 가정을 꾸린다. 의회에 참석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여성의 몫이다. 반면 남성(맨움)은 화장을 하고 집을 가꾸며 아이를 돌본다. 움은 당당하게 가슴을 노출하고 다니지만, 맨움은 자신의 성기를 감싸는 페호라는 속옷을 착용해야 하고, 몸이 볼품없이 마르면 부끄러움을 갖는다.


움이 아이를 가지면 아버지라고 지목한 맨움이 갖게 되는 혜택과 조치를 부성보호로 일컫는데, 이를 부여받는 맨움은 아이를 길러야 할 의무를 가지며 생계가 보장된다. 소설 속 주인공 가족에서 아버지는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릴 적 접은 꿈을 그리워 하고 아쉬워 한다. 또 이미 두 아이를 길렀고, 더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음에도 또 다시 부성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모성보호라는 말 너무 웃기지 않아? 왜 여기서 모성보호라는 논리가 작동하지? 아이를 방금 막 낳은 여성은 누워만 있어야 해? 아이 돌볼 생각 안하고 조금이라도 틈을 내서 일을 하면 이상한거야?"


남편은 반격했다. 응당 산모로서 보장 받아야 하는 휴식의 시간에 본인이 그렇게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면 (여)후배들은 얼마나 눈치가 보이겠냐는 것이다.


논쟁은 계속됐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난 뒤에도 본인의 의사로 불필요하게 일을 했고, 그게 남들에게 불편함을 줬다면 여자든 남자든 똑같은 잣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거야. 법정의무로 보장된 출산 휴가에 아이와 가족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은 엄마든 아빠든 똑같잖아. 만약 아이를 출산한 남자 기자가 전화로 업무 이야기를 하거나, 미처 마감을 못한 기사를 마무리지었다면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을 텐데... 혹여 휴가 중인데 굳이 이렇게 일을 하시나 핀잔을 들어도 이렇게 대놓고 뒷담화의 대상이 되진 않을 거야.”


"나도 산후 휴가 때 일하지 않았고,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 없어. 누가 남자라고 그렇게 일한다는 거야?"


직업병이라고, 뭐든지 숫자나 실 사례와 같은 근거를 찾아 이야기하려는 남편이다. 거기다가 "지금 나는 구체적인 팩트를 놓고 비교하자는게 아니라 '인식'을 이야기하는 거잖아. 알아들으면서 왜 그래?"라고 지지 않고 말하는 나. 요즘 우리 부부에게 종종 일어나는 이른바 '페미니즘' 논쟁이다.


2005년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나온 책 <페미니즘의 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젠더는 보편적인 논쟁이 아니었다. 책에서 얘기하듯 마치 '유행'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자들도 생리하고 애 낳아봐라" (여자) VS "그럼 너네도 군대 가라" (남자) 구도의 한심한 페미니즘 논쟁은 한물 갔다. 여성들이 예전보다 더 많은 목소리를 집합적으로 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고, 훨씬 더 사적인 영역에서 페미니즘이 (우리 부부의 예처럼) 일상적인 논쟁거리가 된 것도 유의미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젠더 논의가 진보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사회적 여성 혐오의 크기는 더 커졌다.


이는 더더욱 여성을 위축시킨다. 2005년에도, 그리고 2018년인 지금도 나는 주변에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극단적인) 페미니즘은 지지하지 않지만”이라고 말하는 여성들을 목격한다.


한국 사회의 병폐인 진영 논리가 페미니즘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여전히 일부 소수자 문제 영역으로 치부된다. 나는 "(딸이자 엄마이자 아내인)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이기도 하다"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에 공감한다. 또 페미니즘이 여성 남성을 가르는 장벽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한 기제로 인식될 때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


당연히 그렇다. 책 <나쁜페미니스트>에서 말하듯, "페미니즘은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


나의 아이가 조금 더 컸을 땐 이런 질문이 없었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이 마치 사상 검증이나 신앙 고백처럼 강요되지 않는 사회에서 나의 아이가 올바른 인식을 갖고, 부당함을 겪지 않으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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