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성산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는 그는 앞선 소행주도 모두 자문을 했다고 한다. 이날 자리는 세대별로 평면을 놓고, 공개 면담을 받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다른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이하다고 생각한 우리집이 오히려 이런저런 지적(?)을 많이 받아 당황했다. 각설하고, 선생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크게 아래 두 가지다.
1. 통풍 : 욕실에 창이 없어 환기 문제. 현재 다용도실 쪽으로 욕실을 배치하면 좋을 듯한데 보일러도 외벽에 접해야기 때문에 구조 근본에 대한 재고민 필요. 지금 구조는 다소 골방 배치형이라, 거실 주방을 가운데 두고 방을 양쪽으로 나누면, 다용도실과 욕실 위치 수정 가능해 보인다.
2. 채광 : 남향이긴 한데, 사실상 창을 낸 남쪽이 인접한 저택의 뒤편으로 막혀있는 부분이라 동서 방향으로 빛이 더 들어오게 하면 좋지 않을까. 차폐시설에 대한 이슈도 유념해 둬야.
이미 건축허가를 위한 도면 설계가 마무리된 지라, 시공사 측과 추가 협의를 해야 하는 상황.
우리 부부는 잠 못 이룬 채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 욕실을 안쪽으로 배치하면?
장점 1) 환기 2) 프라이버시 보호(도로에 인접한 서쪽 방향 창문으로부터)
단점 1) 보일러실 위치 2) 동선(현관 출입으로부터 멀어짐)
결론은 안남. 결국은 콘크리트 굳기 전까지 거듭 수정하며 머리를 싸매겠구나 싶다.
그래도 현 구조 자체를 흔들지는 않기로 했다. 거실 공간의 활용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과 공간감이 크진 않아도 아치형의 출입구로 구분되면서, 복도와 연결된 서재 공간을 만들겠다는 우리 부부의 로망을 버리기가 어렵...
암튼 우리집 문제 이외에, 어제 다른 세대의 고민과 선생의 말씀 중 인상 깊게 들은 것들을 옮겨 놓는다.
질) 발코니 확장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있다.
답) 보통 확장은 면적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내부화하는 것인데, 사실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하며 방을 좁게 쓰더라도 집 안에 외부를 둘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도 어렵다면 공용공간인 옥상을 적극 활용해라.
질) 청소년 아이가 흡연을 할 수도 있으니, 아이가 숨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발코니를 내어줄까 고민이 드는데.
답) 발코니는 숨는 공간이 아니라 최대한 쓰는 공간. 아이가 방에 들어가면 그게 숨는 공간이라는 것을 부모가 인정해야.
질) 주방 조리대 쪽에서 성미산이 바라 보이나, 앉는 의자는 풍경을 등져 아쉬운데.
답) 원래 실제 거주하는 사람에게 전망이란 언뜻언뜻 보는 것. 산을 등지고 식사하는 것은 대화한다는 것. 바다에 펜션을 지은 사람은 창을 크게 내지만, 어부의 집은 오히려 창이 작다. 살다 보면 성미산이 있는지도 잘 모를 때가 있을 것. 산 옆에 살면서 산을 바라보는 것보다 걸어 들어가는 것이 근사한 일상이다.
질) 테라스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답) 흡연을 하거나 부부싸움 후 나가서 울거나. 옹기를 가지고 반찬을 밖에 저장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겨울에도 크는 화분에 대한 취미를 가지는 것도 방법. 밖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질) 초등학교 3학년과 6살 아이를 지금 벙커 침대에 재우는데, 방 두 개를 하나로 터서 당분간은 계속 같이 생활하게 하고, 이후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가벽을 세울까 한다.
답) 생활 방식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다만 아이 입장에서는 넓게 쓰던 공간이 좁아지는 셈. 그 사이에 아이는 더 클 거고. 이에 대해 아이와 미리 대화하라.
질) 옥상 정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데크는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답) 텃밭 욕심 줄여라. 과욕에 비해 실천은 미미하기 마련. 데크는 빨리 썩고, 사실상 반환경적이다. 옥상은 공동체 공간으로 최대한 활용할 것. 공동 세탁, 공동 물놀이, 공동 바베큐 등. 공동주택인 만큼 '공동'을 생각해라. 공용 공간은 클수록 좋음. 계단실 등 공공성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최대한 찾아내면 좋다.
이일훈 선생의 '채나눔 건축론'이란,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로 집약된다.
"공간을 쪼개고 나누어 늘리면,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게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