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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Apr 07. 2023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함께 하실래요?


2020 2,  환자가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예후가 좋지 않아 수술 직후 보통 1주일이면 퇴원하는데   병원 생활을 했다. 첫해는 , 퇴원을 여러  했고  번째  때는 2  번째 해는 1 입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4   환자가 되었다.





첫해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건강만 잃은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인생의 낙(樂) 독서, 산책, 음악도 함께 잃었다. 독서하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 책에 집중할 수 없었고 음악이라도 들으려면 시끄러워 두통이 왔으며 산책은 집 앞에 편의점도 갈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은 오래 누워 있어 근 손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장, 사업, 돈, 관계 모든 걸 끊었다.

아, 돈은 끊을 새 없이 알아서 사라졌다. 제일 빠르게 떠나간 게 돈이었다



그렇게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無의 공간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서 내려오는 시간은 최소한의 생활로 동선이 침대와 화장실 아니면 부엌 그 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세상과 벽을 쌓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어떨 땐 눈을 떴다가 또 어떨 땐 감았다 하는 게 전부였다.


아! 하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오롯이 혼자 아픔과 함께하는 것.

밤이면 밤마다 아파져 오는 몸을 어찌하지 못하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



그래도 진통제가 있으니 문제없다.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아웃된다. 아웃되기 전까지 그 시간은 멍청하기 짝이 없다. 눈빛은 흐리고 사고는 없어지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이 약은 마약성진통제 중 하나로 약한 편이긴 하나 처음 접했을 땐 ‘이래서 마약을 하는구나’을 알았다. 지금은 내성이 생겨 약발이 드는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아플 시간을 예상해서 3~4시간 정도 전에 먹어야 하루가 고통 없이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건지 존재하지 않는 건지 모를 애매한 생활을 이어가도


연차가 쌓일수록 한 번 정도씩 시도는 해보았던 것 같다. 책은 집어던졌고 노래는 아예 들을 수 없는 지경이며 산책하러 나가봐야 되돌아오기 힘들다. 100미터 태워주는 택시는 없으니까.


또 한 번 해가 바뀐 세 번째 해, 코로나에 상반기 한번 하반기 한번 걸리면서 꽃이 피는지 나뭇잎이 울긋불긋한지 심지어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지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는 한번 걸리면 괜찮아지는 데 적어도 3개월이 소요됐다. 해가 떴는지 달이 졌는지 알 수 없는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뜨문뜨문 그렇게 녹아 없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다. 이전처럼 살 수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없기에 육체와 정신을 움직일 수 없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인생의 낙(樂)이었던 독서도 산책도 음악도 어느새 樂이 아니다. 그 자리는 눈만 감았다 떴다고 해도 볼 수 있는 넷플릭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티브이 앞에 누워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를 실컷 봤다.

예전에는 버러지라며 극히 혐오하던 유형인데 막상 되고 보니 편안하고 좋았다. 백수 체질이 아닐까.





그렇게 네 번째 해를 맞이해 2023년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무엇을 먹었는지 묻다 바닐라라떼 많이 먹었는지 물어오신다. 어느새 내 취향을 파악하셨다. 그렇다고 하니 스타벅스에 있는 바닐라크림콜드브루를 먹으라, 바닐라 향이 쏴악 나면서 당이 많지 않다며 차라리 이걸 먹으란 처방이 내려졌다. 영양 수치는 좋지 않은데 당이 최고치를 찍었기 때문이다.


뭐, 먹지 말란 이야긴 하지 않으셨고 배달시키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걸 알지만, 선생님께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직접 사 오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밖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양심이 이토록 중요하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에.


커피를 목표로 걸어보았더니 1,000보에 있는 메가 커피전문점에 갈 수 있을 거 같다. 커피를 목적으로 1,000보에서 2,000보 워킹(스타벅스가 있다!)에 성공했고 드디어 최애 커피전문점 커피빈까지 3,000보를 해냈다. 그렇지만 한번 갔다 오면 바로 기절했기에 사 온 커피는 마시지 못하는 나날이 많은, 하루 일과는 커피 사 오는 것으로 단출한 날들이었다.


그런 단출한 날들 사이, 꽃 같은 어느 날


불현듯 나아갈 것인지 주저앉아 바닐라라떼나 먹을 것인지 물어온다.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말도 없었지만, 그 질문에 이제는 답은 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선택의 갈림길이 쉽지 않은 건 나아갈 땐 무엇을 원동력으로 삼을지 알 수 없었고 주저앉아 있기엔 점점 건강을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아파서 요절은 없을 테니 생을 살긴 살아야 함이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이는 전혀 하지 않겠다고 미련을 부렸지만 일단 '미친 듯이, 원 없이 걸어보고 싶어'란 생각이 잠깐 스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습이 올라왔을 테니



그렇게 나의 산책은 2023.03.31. 4월을 앞둔 날에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답을 내놓으라는 하늘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일단 산책 좀 해보겠습니다! 하고 산책을 시작했다.







2023년,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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