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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Apr 17. 2023

B가 떠난 모험의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떠나줘서 고마워, 내 생에 첫 솜사탕

      

2023.04.03 ㅣ 나아갈까 말까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산책 날    


 

3,000보에서 쉬고 그다음 200보를 더 걸어 건널목에 도착하면 심장이 너무 뻐근해 몸이 얼어붙는 듯하다.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되돌아갈까 고민하지 않는다. 발목은 여전히 아프지만, 파스와 발목 보호대로 견딜만하다. 아무래도 갑자기 움직이니 모든 신체 기관이 말이 아니다. 속은 여전히 울렁거리고 몸에 전기 오르듯 찡잉거려 외계인과 소통도 가능할 것 같지만 이젠 그런 증상들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지난 산책으로 한 뼘은 성장한 듯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난 다름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 



한강 공원에 도착하니 평일이라 한적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여유롭게 강물 앞에 앉아 쉴 수 있어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라앉아서도 강을 바라봤다. 출렁출렁하는 강을 보자니 이 세상 그 어느 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달콤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B야 하던 일 그만두고 왜 이 일을 선택하게 됐어? ”라고 B에 물었다.      

“ 이 일이 멋져 보여서….”     


별일이다. 정확한 방향성이 나오지 않은 진로 때문에 시간 때우기용으로 하는 이 일을 B는 멋있어 보인다 했다. 그렇다. B와 나는 직장동료로 만났다. 그리고 같은 팀으로 붙어서 함께해야 할 것이 많았고 어느새 친숙해졌다. 낯가림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내가, 아주 빠르게.

     

한 번은 일이 늦게 끝나서 B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는데 한강을 지나는 길이고 난 한강을 좋아했고 B는 편의점에 잠시 들러야 했기에 B는 한강에 잠시 차를 세웠다. 커피 한 잔씩 들고 일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강물 앞까지 왔는데 B가 나에게 말했다.     


“ J야 아는 형이 그러는데 한강 물에 귀신이 머리만 빼고 있데. 그 수가 이 한강 가득 이라 자기는 그 귀신들하고 눈이 마주쳐서 한강을 못 온대, 신기하지! ”     

“ 강물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아. 하지 마.. ”  


한강을 볼 때면 어김없이 귀신 머리통이 떠오른다. 강물을 보며 귀신 머리통을 생각하자니 또 어김없이 B의 솜사탕이 생각났다.



함께 일하다 너무 지치고 더워 카페로 피신해 일을 해야 했다. 일할 갖가지를 펼치고 보고 있는데 B가 노트를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 J야 내 아이디어 노트인데 .. 한번 볼래? "

  

B는 마음속에 이루지 못한, 그렇지만 꼭 이루고 싶은, 심장이 두근거려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하고 싶은 그런 꿈이 있었다.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갈 날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꿈에 관한 아이디어 노트였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데 B의 마음이 고스란히 노트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 페이지를 넘기려는데 그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으니, B가 말했다.  

   

" 내 아이디어의 원천은 울 엄마야. 우리 엄마는 세상 제일 따듯하고 날 많이 사랑해 주셔 ”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겨우 꺼낸 말이 “ 엄마가 많이 좋구나..음..좋네 ..” 였다. 그리곤 노트에 눈을 떼지 않고 코를 박고 있자니 어느새 나의 귀에 노래가 흘러들어왔다.     


“ J야 이 노래 들어봐 참 좋지 ” 생애 첫 솜사탕 같은 위로였다.     



그렇게 우리는 직장동료 이상으로 서로의 꿈을 지지해 주고 앞날을 밝혀주는 친구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무색하게 B는 꿈을 뒤로한 채 세상과 타협해 안정된 삶으로 방향성을 바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뭇잎이 푸르러 그 푸름으로 마음마저 맑아지는 그런 날에 B가 말했다.

      

"J야, 난 너와 무지개 끝자락에 무엇이 있는지 끝까지 가보고 싶어. 같이 가지 않을래?"


B는 이미 나의 답을 알고 있는지 표정이 울상이 된 채 말했다. 그리고 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 난 .. 말이야 ..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고 잘 되면 기뻐해 주고 또 어쩌다 무너졌을 땐 일으켜 세워주는 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빛 안에 함께 하고 싶어. 어둠 안에 갇힌 빛이라도, 서로의 성장을 원해 "     


타협점이 없는 문제에 있어 깊고 진중한 처신만이 남아 있는 순간이었다. 말하는 순간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걸음이 나와 같은 리듬이었으면,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기를 바랐던 거 같다. 

         

" 그래, 알았어. J야 어찌 됐든 뭐가 어떻든, 네가 앞으로 또 뭘 어쩌든 항상 지켜봐 줄게 " 그리고 말을 이었다. " 아주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먼 미래 햇살 좋은 어느 날엔 선물처럼 한 번쯤은 안부를 물을 거야 "

     

그게 B와의 마지막이었다. 이런 말을 남긴 채    

  

" 그리고 함께 가고 싶었던 레인보우를 한 알 한 알 말아 이렇게 꽃이 되었어, 주는 거야. 꼭 기억해 줘 "

         

그 말뜻을 알고 있다. 세상일에 타인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기억은 빨리 사라진다. 특히 사람은 더 빨리 잊는 특성이 있는 걸 B가 알았다.  

    

" 알았어. 꼭 그럴게, 나도 바람결에 응원을 실어 너에게 보낼 거야, 너의 어깨에 가닿도록 "


생에 첫 솜사탕은 녹아 사라졌고 B는 그의 모험을 떠났다. 차마 버릴 수 없는 가장 따뜻한 것들만 남긴고. 

    


하나보단 둘이 좋다는 말이 공감되지 않았는데 둘이어도 좋겠다 하는 사람을 등 떠밀어 너의 길을, 너의 선택대로 확신대로 밀고 나아가라 떠나보냈다. B의 선택 또한 존중했다. 다만 함께 할 수 없음이다. 모험을 떠난 B는 맑고 맑은 무지개의 끝자락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했을까. 선물을 무지개 끝자락에 매어 놓고 왔는데 B는 발견했을까.   


                 



B를 떠올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보내놓고 염치없이 세상에 안주하려 했다. 숨이 멎을 때까지. 

B가 지켜보고 있을 텐데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가. 어느새 얼굴이 붉어졌다. 

        

B는 작은 선물, 작은 무엇에도 감동을 잘 받는 편이다.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커다란 마음이 있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오해 앞에서 화를 내는 것과 오해 앞에 서운하지만 되묻기까지 생각해 보고 관계를 위해 조심스럽게 묻는 그런 차이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참 강물을 보고 있자니 B가 어느새 속삭인다.      


" 느림보 거북아, 빨리 와, 여기 야 " 손짓한다. 


옳은 길로, 바른 방향으로 네가 가려던 길로 계속해서 나아가라고 그 손짓이 일으켜 세워주는 듯했다.

        

" J야 네가 듣는 노래들도 참 좋지만 가끔은 이런 노래들도 들어야 해, 자 들어봐 "


내 귀에 꽂아주던 이어폰에서 댄스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 같다. 노래가 내 머리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는 순간이다.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 잘 듣지 않았던 요즘 아이돌 노래를 들어보았다. B의 응원이 나에게 닿는다. 화답하여 휘날리는 벚꽃잎에 나의 응원도 B의 어깨에 가닿도록 바람결에 보냈다. 그 바람결이 위로되길.

               


B가 모든 걸 포기한 채 내 곁에 머물렀거나 내가 그랬다면 무지개 끝자락까지 함께 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끝끝내 갔더라도 그 과정은 험난했을 테지.     


그것을 알고 서로를 떠나 각자의 모험을 하고 있지만 늘 그렇듯이 과거의 기억으로 힘을 내본다. B는 여전히 솜사탕을 내밀며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리고 B와의 약속이 무색하게 자꾸 B와의 기억이 흐려지고 있다. 기억의 또 다른 방법, 이 글은 나의 선물.  

        


과거 달콤한 솜사탕 같은 사람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마음 따스해져 벅차오르는 느낌, 감정, 감성으로 이 세상을 힘껏 박차고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자존감은 날카로운 이성적인 두뇌보다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의 느낌, 감성에서 폭발적인 힘을 낸답니다. 따뜻함이 이길 수 없는 건 없으니까요. 


         

모두 굿럭, 솜사탕도 굿럭 그리고 굿바이


                    








귀신 머리통이 보이는 사람 있으신지요?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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