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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Apr 20. 2023

P의 고독한 일생에 대한 연구 모임은

신바람을 타고 흩어졌지 뭐야 

2023.04.04. 산책 5일 차, 산책과 음악 I'M OK


여태껏 하지 못했던 걸(산책, 음악 듣기) 하게 되면서 기분이 상쾌하다 못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여전히 1,000보에서 3,000보에서 여러 번 쉬며 걷지만, 봄날의 벤치는 따사로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공원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자니 땅 아래 잡초들이 보였다.   

  

“ 난 잡초 같은 존재야 ”

“ 아, 그래? 나도 잡촌데 반가워 ”       

   

그렇게 자신을 잡초라 소개하던 P가 떠올랐다. 사실 스스로 잡초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가끔 드립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종종. 예를 들어 ‘저거 뭐야, 웃기다. 재밌다’ 싶을 때.               




P와의 만남은 역시나 일하면서다. 일 제외한 개인 생활은 따로 없던 지난날들이다. 여러 무리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할 팀원을 찾아 삼삼오오 떨어져 각자의 팀을 이루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그중에 A가 나에게 말했다.    


 “ 연락처 줘 ”   


학창 시절 같았으면 ‘꺼져’로 응수할 테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순순한 의도로 다가와 쪽지를 건네며 ‘너와 친해지고 싶어’란 말에 ‘그거 들고 자리로 돌아가’라고 답해 상처 입힌 이후로 쓸데없는 자기방어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팀원을 이뤄야 하기에 가릴 때가 아니었다.



A와 나는 한 팀이 되었고 그 외 B, C 그리고 P가 합류하면서 이렇게 5명이 한 팀으로 모였다.


그렇게 팀이 이뤄지기 직전 다른 팀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점심시간에 단체로 할 이야기가 있지만 P를 제외하고 싶다 말했다. 왜냐면 P에 관한 이야기라서. 늘 점심을 같이 먹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P가 걸려 점심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하면 안 되겠냐 제안했지만, 모두가 점심 외 시간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P가 점심시간인데도 업무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재빨리 음식점으로 향했고 음식을 주문하고 각자의 물컵과 테이블 세팅하고 있을 때 P가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 여기 있을 거 같더라고 ” 


여기는 모두가 처음 와 본, 부러 회사에서 먼 곳을 선택해 왔는데 P가 알고 있을 리 없다는 걸 우리는 인지하고 있고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점심시간에 늘 만원이라 조금만 늦어도 시간 격차는 벌어지기 때문에 P가 축지법을 쓰지 않는 이상 그 격차를 좁힐 수 없음이 명확하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 사건을 ‘돈가스 사건’이라 불렀다. 일식 돈가스집이었기에. 연구 모임의 시작점이다.     

    



함께 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타 팀원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길 우린 자연스럽게 접할 일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P가 어느 날은 어린아이처럼 해맑다가 어떨 땐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더니 또 다른 날에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 그 외 다양한 모습을 했는데 이것을 타 팀원은 ‘빙의’라 했다.     


우리 팀에서 그 빙의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단 사전적 의미를 알고 그다음은 빙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있는지 혹은 정신질환의 일환인지 신내림은 무엇인지 점은 어떤 건지, 그 세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도 바빴는데  주말이라든지 퇴근하고 시간을 내서 틈틈이 그 연구는 계속되었다.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처음 접하는 분야라 모두가 어렵다. 그래서 함께 할 때도 있지만 각자 흩어져 알아보고 온 뒤 경험을 토대로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그런 작업을 이어갔다. 하루는 다 함께 가장 어려워 보이는 ‘신점’ 앞에 도달했는데 혼자는 못 가겠다는 의견이 많아 4명이 유명하다는 신점 집 앞에 모였다.

      

“ 너 먼저 들어가 ”

“ 무서운데 .. 같이 가자. 못 가겠어. ”     


그렇게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누구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아 우리는 나란히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옆으로. 4명이 나란히 들어가기엔 문이 좁았기에. 



빙의, 신내림, 신점, 철학관.학술원, 명리학 나아가 주역 때론 타로까지 그 영역을 다양하게 연구했고 

드디어 결론     


“ P는 그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이다”라고 내렸다.

 


빙의가 우리와 함께하는 데 큰 문제 없다 여겼고 혹여라도 문제가 발생하는 무엇이 있다고 한들 그것 또한 괜찮다 의견으로 모아졌다. 해서 우리는 P에 당부했다.


" 우리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너 때문이 아니야. 단지 각자의 개인 문제일 뿐이야 "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었던 우리는 P의 불안한 마음을 돌보기 위해 아침마다 밤새 안녕했는지 갖가지 이유로 아침마다 번갈아 가며 안부를 묻곤 했다. 우리는 서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겼다. 각자의 방식대로 나름의 최선을 다해. 


한 사람을 제대로 알고자 시작했던 연구를 이어 나갈 때 P와의 만남도 적지 않았기에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했다. 이제는 스스럼없이 P와 우리는, P가 놓여있는 상황에 대해 자연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P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막 튀어나오는 아무 말이라든지 행동, 자해 등 온갖 것을 내면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음을. 

         

“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꼭 집에 가, 귀신이 활동하는 시간은 피하는 게 좋아”    

 

극강의 올빼미들 4명이 휙- P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선을 받은 P는 말을 이었다.  

   

“ 밤 시간이 되면 귀신들이 기어 나와 전봇대라든지 올라갈 곳이 있으면 다 올라가 내려다보고 있거든 ”     


연구를 많이 했다고 여겼는데 들어도 들어도 낯설다. 또한 나를 제외한 3명은 P와 함께할 때면 몸이 아파져 온다고 호소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어느 날은 또 괜찮아져 관찰하니 P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을 때 몸이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 삼아 P가 앉고 나머지들 앞으로 내가 앉기 시작한 이후로 아픈 사람들은 없었다. 난 그렇게 보호막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하던 프로젝트는 끝났고 때는 모두가 들뜨는 연말이라 우리도 소소히 파티를 했다. 맛있는 거 먹고 또 먹고, 먹고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이야기할 때쯤 P가 말했다.

     

“연말이니까 내년 주의 사항만 간략히 말해줄게”     


극강의 호기심, 4명은 휙- P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A는 이것만 조심하면 별 특별한 건 없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번거로운 일이 생겨 ”

“ B, C는 하려던 거 무난히 잘 되는데 이걸 하면 안 되니 주의하고 ” 등 이런 말을 해주고 내 차례가 되었는데 P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눈을 왕밤만 하게 뜨고 P에 물었다.    

 

“나는?”      

“너는 너 스스로 이미 알고 있지 않나?” P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또 한편으론 알 것 같기도 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P는 홀연히 바람같이 사라졌다. 우리는 P를 찾았지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P에게 붙어 있는 것이 귀신이든 신이든 그에게 온갖 행운을, 친절만 베풀기를 기원하면서 우리 또한 P의 조언을 간직한 채 그의 신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P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 중 누군가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란 걸 우린 알고 있었다. 연구를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고 P가 직접 말해주기도 했는데 내용은 ‘불운’이었다. P와 함께하는 사람은 어김없이 상상 그 이상의 불운으로 인생 망치는 예를 들려주었는데 한둘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우리가 흩어지게 된 것은 사람의 마음을 귀히 여긴 태도에 대한 하늘의 선물일지도.

          


잡초를 보면서 P가 지금쯤은 예쁜 꽃이 되었길 기도했다. 한 사람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가 한 노력이 결국 P가 스스로 떠나므로, 불운을 피하는 '행운’으로 되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아프게도.     


한 사람 깊은 속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냐마는 온전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어 한 노력 덕분에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그중에 제일 큰 깨우침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

     

한 사람, 한 우주를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다정한 눈빛을 준 적이 있는가.

있다면 주변을 잘 살펴보자. 맑은 눈을 하고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니.


또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이긴 하나 자신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만이라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깊게, 천천히, 바라봐 준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따뜻함을 원한다. 냉소적인 태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이다.


투명하고 예쁜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녀야 하는 시대가 왔다. 사회는 점점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며 추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와 악만 남은 자에게 나올 건 무엇이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눈빛을 정돈하길 소원하며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 

P의 초롱초롱한 눈을 떠올렸다. 맑은 눈빛은 따뜻함에서 비롯되기에.                                                  







꽃이 되어 신바람을 타고 시원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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