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을 타고 흩어졌지 뭐야
2023.04.04. 산책 5일 차, 산책과 음악 I'M OK
여태껏 하지 못했던 걸(산책, 음악 듣기) 하게 되면서 기분이 상쾌하다 못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여전히 1,000보에서 3,000보에서 여러 번 쉬며 걷지만, 봄날의 벤치는 따사로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공원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자니 땅 아래 잡초들이 보였다.
“ 난 잡초 같은 존재야 ”
“ 아, 그래? 나도 잡촌데 반가워 ”
그렇게 자신을 잡초라 소개하던 P가 떠올랐다. 사실 스스로 잡초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가끔 드립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종종. 예를 들어 ‘저거 뭐야, 웃기다. 재밌다’ 싶을 때.
P와의 만남은 역시나 일하면서다. 일 제외한 개인 생활은 따로 없던 지난날들이다. 여러 무리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할 팀원을 찾아 삼삼오오 떨어져 각자의 팀을 이루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그중에 A가 나에게 말했다.
“ 연락처 줘 ”
학창 시절 같았으면 ‘꺼져’로 응수할 테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순순한 의도로 다가와 쪽지를 건네며 ‘너와 친해지고 싶어’란 말에 ‘그거 들고 자리로 돌아가’라고 답해 상처 입힌 이후로 쓸데없는 자기방어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팀원을 이뤄야 하기에 가릴 때가 아니었다.
A와 나는 한 팀이 되었고 그 외 B, C 그리고 P가 합류하면서 이렇게 5명이 한 팀으로 모였다.
그렇게 팀이 이뤄지기 직전 다른 팀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점심시간에 단체로 할 이야기가 있지만 P를 제외하고 싶다 말했다. 왜냐면 P에 관한 이야기라서. 늘 점심을 같이 먹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P가 걸려 점심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하면 안 되겠냐 제안했지만, 모두가 점심 외 시간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P가 점심시간인데도 업무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재빨리 음식점으로 향했고 음식을 주문하고 각자의 물컵과 테이블 세팅하고 있을 때 P가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 여기 있을 거 같더라고 ”
여기는 모두가 처음 와 본, 부러 회사에서 먼 곳을 선택해 왔는데 P가 알고 있을 리 없다는 걸 우리는 인지하고 있고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점심시간에 늘 만원이라 조금만 늦어도 시간 격차는 벌어지기 때문에 P가 축지법을 쓰지 않는 이상 그 격차를 좁힐 수 없음이 명확하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 사건을 ‘돈가스 사건’이라 불렀다. 일식 돈가스집이었기에. 연구 모임의 시작점이다.
함께 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타 팀원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길 우린 자연스럽게 접할 일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P가 어느 날은 어린아이처럼 해맑다가 어떨 땐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더니 또 다른 날에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 그 외 다양한 모습을 했는데 이것을 타 팀원은 ‘빙의’라 했다.
우리 팀에서 그 빙의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단 사전적 의미를 알고 그다음은 빙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있는지 혹은 정신질환의 일환인지 신내림은 무엇인지 점은 어떤 건지, 그 세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도 바빴는데 주말이라든지 퇴근하고 시간을 내서 틈틈이 그 연구는 계속되었다.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처음 접하는 분야라 모두가 어렵다. 그래서 함께 할 때도 있지만 각자 흩어져 알아보고 온 뒤 경험을 토대로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그런 작업을 이어갔다. 하루는 다 함께 가장 어려워 보이는 ‘신점’ 앞에 도달했는데 혼자는 못 가겠다는 의견이 많아 4명이 유명하다는 신점 집 앞에 모였다.
“ 너 먼저 들어가 ”
“ 무서운데 .. 같이 가자. 못 가겠어. ”
그렇게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누구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아 우리는 나란히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옆으로. 4명이 나란히 들어가기엔 문이 좁았기에.
빙의, 신내림, 신점, 철학관.학술원, 명리학 나아가 주역 때론 타로까지 그 영역을 다양하게 연구했고
드디어 결론
“ P는 그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이다”라고 내렸다.
빙의가 우리와 함께하는 데 큰 문제 없다 여겼고 혹여라도 문제가 발생하는 무엇이 있다고 한들 그것 또한 괜찮다 의견으로 모아졌다. 해서 우리는 P에 당부했다.
" 우리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너 때문이 아니야. 단지 각자의 개인 문제일 뿐이야 "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었던 우리는 P의 불안한 마음을 돌보기 위해 아침마다 밤새 안녕했는지 갖가지 이유로 아침마다 번갈아 가며 안부를 묻곤 했다. 우리는 서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겼다. 각자의 방식대로 나름의 최선을 다해.
한 사람을 제대로 알고자 시작했던 연구를 이어 나갈 때 P와의 만남도 적지 않았기에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했다. 이제는 스스럼없이 P와 우리는, P가 놓여있는 상황에 대해 자연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P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막 튀어나오는 아무 말이라든지 행동, 자해 등 온갖 것을 내면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음을.
“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꼭 집에 가, 귀신이 활동하는 시간은 피하는 게 좋아”
극강의 올빼미들 4명이 휙- P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선을 받은 P는 말을 이었다.
“ 밤 시간이 되면 귀신들이 기어 나와 전봇대라든지 올라갈 곳이 있으면 다 올라가 내려다보고 있거든 ”
연구를 많이 했다고 여겼는데 들어도 들어도 낯설다. 또한 나를 제외한 3명은 P와 함께할 때면 몸이 아파져 온다고 호소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어느 날은 또 괜찮아져 관찰하니 P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을 때 몸이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 삼아 P가 앉고 나머지들 앞으로 내가 앉기 시작한 이후로 아픈 사람들은 없었다. 난 그렇게 보호막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하던 프로젝트는 끝났고 때는 모두가 들뜨는 연말이라 우리도 소소히 파티를 했다. 맛있는 거 먹고 또 먹고, 먹고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이야기할 때쯤 P가 말했다.
“연말이니까 내년 주의 사항만 간략히 말해줄게”
극강의 호기심, 4명은 휙- P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A는 이것만 조심하면 별 특별한 건 없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번거로운 일이 생겨 ”
“ B, C는 하려던 거 무난히 잘 되는데 이걸 하면 안 되니 주의하고 ” 등 이런 말을 해주고 내 차례가 되었는데 P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눈을 왕밤만 하게 뜨고 P에 물었다.
“나는?”
“너는 너 스스로 이미 알고 있지 않나?” P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또 한편으론 알 것 같기도 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P는 홀연히 바람같이 사라졌다. 우리는 P를 찾았지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P에게 붙어 있는 것이 귀신이든 신이든 그에게 온갖 행운을, 친절만 베풀기를 기원하면서 우리 또한 P의 조언을 간직한 채 그의 신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P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 중 누군가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란 걸 우린 알고 있었다. 연구를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고 P가 직접 말해주기도 했는데 내용은 ‘불운’이었다. P와 함께하는 사람은 어김없이 상상 그 이상의 불운으로 인생 망치는 예를 들려주었는데 한둘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우리가 흩어지게 된 것은 사람의 마음을 귀히 여긴 태도에 대한 하늘의 선물일지도.
잡초를 보면서 P가 지금쯤은 예쁜 꽃이 되었길 기도했다. 한 사람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가 한 노력이 결국 P가 스스로 떠나므로, 불운을 피하는 '행운’으로 되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아프게도.
한 사람 깊은 속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냐마는 온전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어 한 노력 덕분에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그중에 제일 큰 깨우침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
한 사람, 한 우주를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다정한 눈빛을 준 적이 있는가.
있다면 주변을 잘 살펴보자. 맑은 눈을 하고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니.
또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이긴 하나 자신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만이라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깊게, 천천히, 바라봐 준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따뜻함을 원한다. 냉소적인 태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이다.
투명하고 예쁜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녀야 하는 시대가 왔다. 사회는 점점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며 추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와 악만 남은 자에게 나올 건 무엇이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눈빛을 정돈하길 소원하며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
P의 초롱초롱한 눈을 떠올렸다. 맑은 눈빛은 따뜻함에서 비롯되기에.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