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꺼져가는 영혼을 갈아 넣던 와중에
2023.04.05ㅣ 비 오는 날에 산책, 그날의 고독을 마주하다.
산책을 시작하면서 살며시 올라오는 열감을 무시했더니 몸살감기에 걸렸다. 먹고 있는 약은 항생제랑 같이 먹으면 안 되기에 그냥 아프는 수밖에 없지만 시작하기로 한 산책을 미루고 싶진 않았다. 딱히 먹을 약이 없어 먹던 진통제의 양을 늘려서 먹고는 비 오는 거리로 산책하러 나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걷기 좋았다. 비도 그리 많이 오지 않았기에.
평소처럼 산책했는데 날씨 탓일까. 아니면 조용한 이 비 오는 공원의 느낌이 그랬을까, 약 기운에 취했을까, 앉아서 쉬고 있는데
‘J야 밥 먹어야지 일어나, 가자’라며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자에서 앉은 채 졸았는지 정신이 몽롱하다. 이대로 잠들면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에 무거운 다리를 옮기며 다시 힘을 내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N은 잠들어 있는 날 자주 깨운다. 수술 직후 퇴원해서 홀로 아플 때 꺼져가는 정신 너머에서 N은 나를 깨웠다. 그렇게 날 깨우는 N의 만남을 떠올리며 다시 한발 한발 내디뎠는데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 안녕하세요. 연락드렸던 N입니다.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
“ 네 안녕하세요. 제안하시는 부분은 흥미롭게 지켜보던 부분이라 검토해 보고 결정할게요”
역시 N도 일하다 인연이 닿았다. N을 만나던 당시는 30대의 진로를 정하고 몇 년이 흐른 뒤였다.
나에게 30대의 방향성이란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였다. 그것은 앞으로 남은 1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다짐 같은 거. 혹은 은밀한 나만의 계략 같은 거였다. 자식들은 성장하면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한다. 나 역시 하늘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시점이었다. 인간에 버려진 날 키우신 건 하늘이다. 나 또한 다른 자식들과 다름없이 하늘의 품을 떠나 이 땅에 스스로 우뚝 서겠다고 말했다. 돕지 말고 그저 지켜만 봐달라고. 내 힘으로 해보고 싶다고. 보살핌도 보호도 하지 말라고.
나의 하늘이란, 우주 만물의 정도(正道)이다. 그 도(道) 안에서 평안했다.
예를 들면 괴롭히는 상대에 대한 삐딱한 마음이 자리 잡으려 하면 ‘안돼, 게네는 게네고 너는 너야. 그 마음 내려놔’라든지 ‘아니야, 그 행동 아니야 다시 생각해’라든지 ‘질문이 틀렸어 다시 질문해’라든지 ‘답이 그게 맞아, 다시 한번 살펴봐’ 등의 양심의 목소리로 때론 정직성으로 하늘은 나와 함께해 줬다. 그 안에서 자유로웠고 하늘로부터 돌봄과 보호를 받는 자, 나였다. 하늘 안에서 빛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하늘에게 이젠 혼자 가겠노라 한 이유를 당연히 하늘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 또한. 정도(正道)를 벗어나겠다는 계략까지도.
그렇게 하늘에 결탁하지 않고 30대부터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을 덜컥 선택해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은 매우매우매우 아팠지만 나름 흥미롭고 나쁘지 않았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아서 처음은 더디게 진행되어도 결국엔 해내는 일이 많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예를 들면 수입이 월 400만 원에서 600만 원, 1,000만 원 이런 식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르기 시작했기에 일로는 문제가 없던 나날이었지만 알 수 없는 열병 같은 걸 앓았는데 심장이 답답해서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을 때였다.
무엇인가 해답이 없으면 나아가는 방향을 잡지 못하는 나로서 질문이 무엇인지 또 그 질문에 답은 무엇인지 모르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헤매는 심정으로, 콱 막혀 있던 차였다. 독서나 산책으로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독서나 산책으로 답을 구하지 못하는 적이 없는데 이상한 날들이었다. 염치없어 하늘에 답을 달라 청하지도 못했던 암울하고 고독하던 시기였다.
그 무렵 N으로부터 업무 제휴로 연락을 해왔고 우리는 같이 일하게 되었다.
일을 진행하는데 N과 붙어서 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동하는 곳 또한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일 외적인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N은 이 일이 끝나면 미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여행? 나하고는 너무 먼 단어이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N은 미국 여행 계획과 어느 그룹과 함께 가는지 어디서 머무르는지 등 상세히 공유하기 시작했고 난 업무 내용을 살피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미국 여행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기억에 사라질 때 낯선 지역에서 발이 묶여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데 일단 씻는 것이 중요하니 우리는 찜질방으로 향했고 정리를 한 후에 다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밤낮없이 1년 365일 24시간, 나노 단위로 할 일이 정해져 있어 쉼 없이 일하던 시기로 쓰러져 119에 실려 간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20대부터 종종 있었던 일이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은밀한 계략, 그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그날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N과 일정을 일부 수정하여 각자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찜질방에서도 노트북 하나 들고 계속 타닥타닥 두들기고 있다 그만 멈추고 찜질방 내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작은방에 영화가 틀어져 있었고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빼곡히 어린이들이 모여 앉은 작은 영화관에 그 어린이들이 틈에 앉아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에 한창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N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N은 내가 새로 장만해야 할 노트북 중고 거래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왜 옆에 있지 하는 그런 생각이 스칠 때 스크린에서 대사가 흘러나왔다.
'재가 뭐라는 거지'
머리를 세게 두들겨 맞은 거 같은 충격에 화면만 빤히 응시했다.
이름이 Olaf 란 눈사람이 난로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랑은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거야.
친구를 위해선 녹아도 좋아
아. 사랑이라… 현기증이 나는 거 같이 화면이 뿌옇다. 웅 거리며 그대로 아웃되어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또 민폐가 되었다. N에게도 찜질방에 있었을 사람들에게도 119 대원분들에게, 모두에게. 놀랐을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그리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저런 것들로부터.
집중과 몰입이 뛰어난 편이라 쉼 없이 돌아가는 머리는 쉴 줄 몰랐고, 때론 숨을 쉬지 않았으며 과부하가 걸리면 아웃되었고 그대로 쓰러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또한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잊을 때가 많았는데 하고자 하는 목적 외 그 어떤 것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꺼져가는 영혼을 갈아 넣고 있었고 그러다 그것이 요절로 이어진다 해도. 그것 또한 계획이었다. 스스로 정한 수명은 40세까지였으니. 그래서였을까. 역경은 참을만했고 행복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찜질방에서 쓰러지기 직전 분명 하늘의 목소리를 들었다. 독립선언 후 처음이다. 무시하고 건너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였기에 그 순간만큼은 일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근래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왜인지 알 수 없으나 영화 속 화면, 그 아이의 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때마침 직감적으로 이미 미국 여행을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앞으로 미국 여행을 하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어디서 오는 감각인지 알지 못한 채, N과 병원에 나와 차로 이동하는 중에 N에 물었다.
" N, 미국 간다는 날이 언제야? "
N과 다르게 난 이 프로젝트 끝나고 다음 날부터 할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이고 엮여서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난 말했다.
" 나도 같이 가 "
"그래 알았어! 연락해 놓을게, H라는 사람이 연락할 거야"
그렇게 출국 6일 전, 미국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 다음 편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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