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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Apr 27. 2023

하늘과의 밀회를 주선한 N, 고맙단 인사가 늦었어

(2부)  심통이었음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느닷없이 결정된 미국 여행으로 분주해졌다. 단 5일 만에 짐을 꾸려서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고 N하고 같이 출발이었던 일정이 N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내가 먼저 출국하고 N은 1주일 후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이 N과 나 사이에 큰 서먹서먹함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될 줄 알지 못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니 H와 그 외 동행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라스베가스에서 머물다 LA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는데 H에 설명을 듣고 있자니 N에 안내받았던 내용하고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난, 내 목적 외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기에 머나먼 미국 땅에서 사기를 당했다 한들 중요치 않았다. 상당 부분을 모른척했고 수긍했고 받아들인 채

      

일단 그들과 함께 생활을 이어 나갔다. N이 오면 상세히 물어보면 되니까. 

    

그렇게 H가 운영하는 여행 클래스에 합류했는데 이미 와 있던 사람도 있고 나와 같은 시기에 도착한 사람도 있고 곧 올 사람도 있었다. 2인 1실이라는 N의 안내와 다르게 도미토리 식 숙박이었다. (단, 호텔 제외)

    

라스베가스에 도착해 간단히 둘러보면서 미국에 오기 전 꿈에서 보았던 곳을 여러 곳 보았는데 감각적으로 왜 미국으로 넘어왔어야 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짐을 꾸리면서도 대형 백조 튜브를 직구 대행으로 구해서 가지고 왔는데 그 튜브를 수영장에 띄울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그 튜브에 다 달라붙어서 불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음 바람 넣는 기계로 한방인데 라스베가스에서는 찾기 힘들어 너 한번 나 한번  힘들게 불었고 어느새 다 만들어진 튜브로 재미나게 놀고 다시 바람을 빼야 했는데 빠지는 것도 잘 빠지지 않아 밤낮없이, 자다가도 밥 먹다가도 튜브 바람 빼는 일을 번갈아 가며 할 때였다. 


내 차례에 튜브 바람을 빼다 지쳐서 그냥 튜브에 앉아 하늘을 봤는데 빨간 노을에 온 세상이 붉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미국에 와 있는 자신을 보니 한 치 앞도 모르는 사람의 일이 신기해졌다.    


"누나 스테이크 먹을 거지?"  M이 기어이 데리러 수영장 밖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응, 아니야 난 괜찮아 어서 먹어" 

"노을이 정말 이쁘다"

"응,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불의 계곡이래, 노을 때문인지 더 붉다."

"내일은 그쪽에 간 데, 근데 여기서 저 멀리까지 다 보이네"



라스베가스가 이제는 집 앞처럼 익숙해질 때 N이 라스베가스로 왔다. 반갑게 인사도 하기 전, N도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뭔가가 많이 다른지 H와 언쟁이 있었던 것 같아 먼저 이야기할 때를 기다렸지만 그런 일은 끝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그 후로 그렇게 N하고 서먹해졌다. 먼저 물어봤어도 되지만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마음의 거리가 생겼을 뿐. 그리고 서로가 물을 삼키는 것처럼 해야 할 말을 삼키는 게 보일 지경에 이르러서까지도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것처럼.  


약간의 심통이 난 채 미국 여행 내내 N에 퉁명스러웠던 거 같다. 그땐 그것이 심통인지 알지 못했다. 심통이란 것도 마음이 있어야 나는 것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런 마음에 대해 둔감했다. 그렇지만 삼삼오오 각자 자유여행을 하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N과 M이 함께 했다.


어느 날은 사막을 갔고 어느 날은 댐을 갔으며 어느 날은 이상한 미국의 시골 마을을 달리기도 했다.

그리도 또 다른 어느 날, 호텔 룸 창가 앞에 나란히 앉아 야경을 바라보면 M이 말했다.


M : 여기서 라스베가스가 한눈에 다 보인다

나: 응 그러네

M: 내일은 호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

나: 응 좋은 곳으로 가자


M과 나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N이 말했다 "내가 이미 예약했어"


M과 난 휙- N에 시선을 고정했다. N은 늘 따라오는 쪽이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알아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했던 날이었다.



N과 M, 그리고 나, 우리는 대체로 언어를 이용하는 직접적인 대화 대신에 감각을 통한 대화를 주로 했다. 대부분 우린 말이 없었지만, 서로가 하는 말을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대화가 주는 편안함을 그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우리 옷 가게 들렀다 갈래?’라는 대신 한번 쳐다보면 그뿐이다. 그리고 ‘목이 마른데 음료수 먹을래? 우리 우회전할래? 우리 저기 가볼래?' 등등 무수히 많은 언어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눈으로 대화했고 몸짓과 옷 끝, 손끝, 발끝 때론 뒤통수, 가끔 아우라의 언어(?) 또는 눈이 보이지 않는 먼 거리는 감각을 이용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잘 따라오는지 그저 한 번씩 둘러봐 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아주 큰 디저트 가게에서 사 온 오색빛깔 개구리 젤리(산체스)를 호텔 창에 붙여 놓고 호텔방을 옮길 때마다 가져가 창문에 붙여 놓으며 놀았는데 관광하러 밖에 나갈 땐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미국의 태양은 강렬하니까. 그런데 놀다 들어왔더니 산체스 뒷다리가 부러져 있었고 냉장고 앞에 떨어져 있는 잘린 다리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N이 기겁하며 말했다.


"내가 그런 거 아냐. 누구라고 말 못 하는데 나는 정말 아니야."


묻지도 않았는데 해명하는 N을 보자니 해명해야 할 것은 안 하고 고작 개구리 뒷다리에 눈을 왕밤만 하게 뜨고 해명하는 N에 울화가 밀려왔고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산체스 사건으로 N과의 대화는 더욱더 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태양이 얼마나 강렬한지 나의 양쪽 팔이 녹아 피부 껍질이 다 벗겨져 빨갛게 속살이 드러냈다. LA에 넘어와서 상태는 더욱 심각했고 미국까지 와서 또 앓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약을 먹으면 구토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져 잠들어 있을 때였다. 


“J아, 일어나 밥 먹어야지, 가자”   그날은 N이 잠들어 있는 날 와서 깨웠다. 




몇 마디 잘 하지 않던 N이 호텔 방 예약 사건 이후로 자발적 움직임 2번째였다. 이때가 임팩트 있었던 걸까. 종종 약 기운이든 아파서든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면 N이 와 어느새 깨우곤 했다. 정신 차리라고.


시간이 흐른 뒤, 내 인생에 N의 등장은 우연은 아니었으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임을 깨달았는데 단 한 번을 고맙단 인사나 또 그렇게 여기지도 않았음을 알았다. 꼭 해야 하는 말을 N도 나도 삼키고 지나칠 때가 많았는데 그 순간들을 기억해 보자면 그건 내가 하늘의 만나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말했던 거랑 여행 숙소가 다른데'라든지 'N, 우리 저기 같이 가야 해'라든지 'N아 방금 그거 뭔지 봤어?'라든지 또는 'N아, 난 아무래도 못 가겠어. 왜냐면'이라든지 설명해야 할 상황에서 N도 나도 삼키고 있었다. 말을 아끼던 것은 여행이 파탄 나지 않고 계속 이어가기 위한, 서로의 액션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서먹함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N은 모든 면에서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것저것 다양하게 챙기고 있었는데 그것 또한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다. 




여전히 비 내리는 오후, 산책을 마치고 무거운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집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N에 전하지 못했던, 어쩌면 전하지 않을 말을 빗방울에 흘려보냈다.


'N, 고맙단 인사가 늦었어. 수영장에 둥둥 떠 있던 그날처럼 세상 구경 많이 하고 이제 평온해졌길 바라. 그리고 애써 외면했던 너의 밀도 높은 고민과 그 열정에 찬란한 태양의 빛을 보내. 그러므로 살아가길'  



그리고 집으로 되돌아와 산책하며 떠올린 그날들의 고독 때문인지 몸은 점점 더 축 처지고 가라앉아 끝내 깊은 잠에 들었다. 그날의 심연 속으로.






※ 다음 편 3부에서 이어집니다.



아기가 누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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