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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Apr 30. 2023

하늘과의 밀회를 주선한 N: (with Moon)

(3부) 이방인의 개운함은 천사를 향해 미소 짓고


2023.04.06 ㅣ 비도 오고 그날도 왔다. 덮어 놓았던 무수히 많은 날이 한 번에 몰려오다.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린다. 날은 흐리고 몸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일어나려면 헤드뱅 몇 번 후 다시 눕지만 지금 그게 중요치 않다. 갑자기 시작된 고독과의 마주함이 자꾸 나를 부른다. 오한과 발열이 끝없이 바통터치 중이지만 산책을 가기로 했다. 또 어느새 앉지도 서지도 그렇다고 눕지도 못하겠는 불꽃이 생성되었다. 블랙홀처럼 터져버려 빛조차 남지 않는다 해도 난, 가야 할 길을 가야겠다. 


산책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3시간이다. 운동화를 신기도 전에 이미 지쳤다. 몸은 물에 젖은 수건처럼 무겁지만, 한 다리에 두 다리에 신발을 신겼다. 겨우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비 오는 거리의 땅 냄새, 풀잎 냄새는 걷고 또 걷는 내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어서 가보라고. 






"직진해야 하는데 여기 옆에 길이 또 있네?" M이 말했다.

"그리 가볼까? 새롭잖아!"라고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N이 잡아 놓은 호텔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나의 그 한마디에 M이 이동 경로를 벗어나 좌회전하는 순간 아무도 없는 사막 어딘가에서 자동차 바퀴가 다 터져버렸다. N과 M 그리고 나는 사막에 멈춰 선 자동차와 함께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지역이었다. 고립된 우리는 누군가 와서 도와주길 기다려야 했지만, 자동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은 지 1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나비다" 내가 흰나비를 발견하고 나비를 쫓아가며 말했다. 

"누나 어디 가, 이리 와" M이 말했지만, 나비 따라가길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N과 M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나비가 신기하게도 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 나비가 말했다. 


"OO에게 돌아가, 그리고 OO에서는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거야"


잘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일단 알겠노라 대답하는 사이 M이 다가왔다.


"누나 뭐해, 위험하니까 자동차 옆에서 벗어나지 말고 있자"라며 데리러 왔다. 그리고 우리가 자동차 가까이 다가왔을 때 저 멀리서 점하나가 보여 M에 말했다.


"M, 혹시 저 멀리 보이는 거 자동차야?"

"어! 그런 거 같은데!! 어어!! 맞네 도와달라 해야겠다!" 


M이 최선을 다해 손을 흔들었고 멈춰 선 자동차에서 내린 커플은 서로의 Baby였는데 핸드폰이 사막에서도 터지는 좋은 통신사 가입자였고 사막으로 넘어오기 전 라스베가스에서 열렸던 이벤트에 같이 참석한 사람들이었으며(팔지 보고 앎) 그걸 발견하고 즐거워하며 환호했고 경찰과 통역을 붙여줬으며 경찰이 와서 사고 수습과 렌터카를 바꿔주면서 남한에서 왔니 북한에서 왔니 질문했는데 북한에서 왔다고 횡설수설해도 그럴 일 없다며 친절했다. 그 모든 일은 땡볕 사막에서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에 지나가는 사람, 자동차 한 대가 없었다.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한 우리들은 신이 났다. 

이방인이 되어 느끼는 알 수 없는 개운함에, 그 시점에서 내가 웃었다. 

 





"누나, 이따가 별 보러 출발할 거야! 준비해"

"아, 그랭 알았어!"


N이 알아본 곳으로 H가 운영하는 여행자 클래스에서 단체로 별을 보러 떠나기로 했다. 국립공원으로. 

도착하니 지구에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별나라에 있는 건지 헷갈리게 처음 보는 세계다. 어둠 속에 누워서 별 볼 수 있는 명당을 찾아 각자 알아서 뿔뿔이 흩어졌다. 널찍한 테이블에 담요를 깔고 누웠다. 


" 와! 이 은하수들은 뭐야! " M이 말했고

" 오! 방금 별똥별도 떨어졌어 " 난 화답했다.

" 우와, 정말 이쁘다! " M이 감탄하고 한참을 우리는 말없이 그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정적을 깨고 먼저 말한 건 나였다.


" 보랏빛별이다.. "


" 오! 어디? 근데 까만 밤하늘에 보랏빛별이 보여? " M이 대꾸해 줬고

" .. 뻥이야 " 하며 난 웃었다. 


또 한참 말이 없었고 은하수란 우리말도 이쁘지만, Milky way도 이쁘다는 M의 말에 난 노래를 흥얼거렸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이게 무슨 노래냐며 M이 신이 나 웃길래 나도 웃고 웃었다. 페르소나 하나 둘, 손에 쥐고서.






"오늘 붉은 달 뜨는 날이라고 해서 달 보러 갈 건데 같이 갈 거지?" N이 오랜만에 말을 걸어왔다.


"아니, 난 안 갈래" 


원래 가고 싶었는데 N이 말하니 반항심 생겨서 안 간다고 가볍게 말했는데 두 번 묻지 않고 왕밤만 하게 눈 한번 뜨고 가버렸다. '어, 이게 아닌데'란 생각을 할 때 나의 천사 M이 같이 가자고 해줬다.



"누나 달이 정말 크고 붉다!"

"어! 정말 커! 대박 신기해! 달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 


안 간다더니 제일 신난 나를 새우 눈으로 보고 있는 N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모른체했다. 그리고 서로 각자 흩어져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을 때 이상한 숲이 생뚱맞게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갔는데 제자리 같았다. 가다 보니 선술집 같은 곳에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는데요"

"어머 재 뭐야"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렸다. 술도 있고 음식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시간이 없는 곳 같았다. 현대시간이. 영화 속에서 본 시대극이라면 맞을까. 촬영장인가 주위를 둘러봤는데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촬영 장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때 누군가 안에서 말했다.


"저리로 돌아가, 일행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M을 만났다.


"누나 어딨었어! 한참 찾았잖아!" M이 내가 없어져 많이 놀란 듯하다. 항상 M은 넓고 넓은 미국 땅에서 내가 한눈팔다 일행을 잃어버리는 걸 막아주는 천사였다. 나의 천사 M. 


"아니 M아, 저기 같이 가볼래 저기 숲에 신기한 거 있어!" 

"뭐가 있어 돌밖에 없는 허허벌판 사막이야 누나.. 가자" M이 말해서 그곳을 바라봤는데 그런 것도 같아 꿈을 꿨나 싶어 우리는 웃고 웃고 또 웃었다. 양손 가득히 초콜릿을 들고서.






아파트먼트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N과 M, 그리고 나는 수영장에 자주 출몰했다. 커피 마시고 와서 풍덩, 밥 먹고 와서 풍덩, 피자 먹고 와서 풍덩, 관광 다녀와서 풍덩, 길거리 헤매다 와서 풍덩 그렇게 자주 풍덩거리며 둥둥 떠다니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무 일 없는 사람들 놀이가 썩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N의 주도하에 H가 운영하는 여행 클래스 사람들 모두가 영화를 보러 가고 나 혼자 남은 그날


홀로 수영장 비치 체어에 앉아 있었고 그 수영장 한가운데서 아이가 다가왔다. 


나에게로. 나의 페르소나를 들고서.









※다음 편 4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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