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있을재수 May 03. 2023

시작된 하늘과 밀회 : I’m sorry

(4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 



홀로 수영장 의자에 앉아 핑크빛 노을에서 캄캄한 어둠으로 변해가는 세상을 구경하고 있자니 여기, 미국 땅까지 왜 왔는지를 잊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맞아, Olaf가 말하는 사랑을 찾아온 거 같은데 ..' 


이유도 불명확해져 아리송하다 싶은 그때, 저 앞에서 환하게 빛을 비추며 아이가 다가왔다.




한동안 서로를 응시한 채 서로 말이 없었다. 노려보는 것도 같고 웃고 있는 것도 같고 너무 밝아 온 세상이 환해진 듯 하나 어둡고 애매하다. 그런데 아이의 손에 나의 페르소나는 왜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나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로 부른 게 혹시 너야?"


알면서 왜 묻느냐 하는 그런 표정을 짓고서 아이는 말했다.  "맞아"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한국에서 네가 차단해서 미국으로 불렀어."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지만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언어의 한계를 이럴 때 느끼곤 했는데 맞는 단어를 모르겠다. 뭔가 반박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올라왔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아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돌봄도 보호도 그 어느 것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마" 아무 말이나 했더니 그에 아이는 응했다.


"하늘에게 돌아와. 그리고 네가 갈 곳은 없어."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랑 안에서 빛으로 존재해"



한 여름밤에 난투극이 말없이 조용히 치러지고 있는 듯 세상은 조용했으나 깊고 깊은 심연 속이었다. 그 적막함에 웅- 거리는 낮게 깔린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갈 곳이 없다니 그에 따른 반응이었을까.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니!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나아갈 거야. 방해하지 마! 제발 내버려 둬!"


그랬더니 아이의 몸에서 빛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어 순간 움찔했지만 내 눈빛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는 내 살기를 뛰어넘어 화염 덩어리처럼 이글거렸고 이내 말을 이었다.


"계속 나아간다면 고난과 역경으로 주저앉힐 거야"


!


내 눈의 살기가 폭발해 악에 받쳐 물을 헤치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 다리가 부러지면 다리를 끌고서라도 나아갈 거고 두 다리가 부러지면 기어서라도 갈 거야!"


화염 덩어리 같은 양쪽 눈이 더욱 거세졌지만 지지 않고 페르소나를 가로채며 계속 말했다.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 고난이 생기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것밖에 몰라"


가까이 서니 불덩이 같은 눈이 자세히 보인다. 슬픔이 잔뜩 서려 있는 눈이 보인다. 어쩌지. 사과해야 할까.

난 단지 그럴 수 없는 것뿐인데. 화를 내려고 한 건 아닌데. 그런 혼란한 틈 사이 아이가 말했다.


"이방인의 너를 잊지 마, 그 미소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그게 사랑이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적막한 수영장에 나 홀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N과 클래스 사람들이 영화 관람을 하고 되돌아왔고 그 후에도 난 계속 수영장에 있었다. 


무엇이 잘 못 되었단 말인가. 


의미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의미한 것만 잔뜩인 이 세상에서, 덧없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끌어모아 어찌 됐든 나아가고 있는데 그러다 요절하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마저도 안된다 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한없이 나약한 마음 따위에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뒤섞인 놀음 같은 건 너무 하찮다. 거부하고 저항하고 또 반항했다.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 살아야 한단 말인지 생각의 생각의 생각에 꼬리를 물고 또 생각했지만, 엉망진창이 된 심장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슬픈 눈만 떠올랐다. 그렇지만 늘 답은 하나다. 


스스로가 '되었다' 할 때까지 나아가는 거.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미안하게도.



결국엔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한국으로 되돌아와 더 거침없이 일하기 시작했다.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생활로 세상의 때가 끼니 살판났다. 세상 살기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사랑이니 빛이니 다 우습다. 그렇게 하늘과 점점 멀어지면서 이만하면 '되었다'를 하기 위해 정진하고 또 정진하니 아이의 말처럼 다리가 부러졌다. 


이런 고난쯤이야. 

다리를 끌고서라도 가지. 날 때부터 외톨이에게 이런 건쯤 아무것도 아니다. 나약해 자신도 지키지 못하던 그런 마음 따위는 없다. 그렇게 하던 일도 승승장구하는 사이, 졸도를 몇 차례하고 또 다리가 부러졌다. 


괜찮다. 

이깟 역경쯤이야 별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 와서 배운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밖에 더 있는가. 기어서라도 간다. 앉은뱅이면 또 어떻겠는가. 최선을 다해 끝까지 줄 수 있는 모든 고난과 역경 다 주라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불행을 끌어안고 소멸로 가리. 

갈 곳을 잃은 자, 무엇을 이뤄내고 싶은지도 모른 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길 멈추지 않았고 드디어 '되었다' 하니 그 해방도 찰나, 암으로 아예 드러눕게 되었다. 모든 낙(樂)을 잃고 광기도 잃은 채.






산책을 마치며 되돌아오는 길, 비 오는 거리는 축축하니 그 슬픈 눈이 떠오른다. 


그 눈과 마주할 의지가 없어 4년을 흘려보낸 걸까. 그저 고단하고 고단하다. 이 암도 스스로 만들어 놓았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다. 그 어떤 빛도 스며들지 못하도록 차단했으며 답답한 육체의 DNA 또한 거부했다. 요절해 '죽음'과 마주했어야 하는데 그저 암으로, 고난 하나 더 준 것이 하늘의 배려일 테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고난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 낼 의지가 없다. 또한 반항심이 있다고 감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감사를 알기 이전 '생존'이 감사할 일인지 알지 못한 무지한 자, 모든 게 무의미한 육체가 살아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없다. 


그 무지에서 알아챔으로 넘어가던 시점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할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산책을 통해 알아챔에서 앎으로 전해져 온 감사는 결국에 나를 일으켜 세워 움직이게 했고 나약한 마음 따위가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이제서야 마주한 하늘은 '필요'하다 했다. 그것 또한 사랑이라 한다. 그 누구도 필요해 본 적 없던 자, 하늘과 거래를 시작했다. 거래를 깨는 자, 악(惡)의 끝을 보기로.






집에 도착해 정갈하게 몸단장을 하고 차분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다.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했다. 하늘과 마주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서.


반드시 오늘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봐'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이전 09화 하늘과의 밀회를 주선한 N: (with Moo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