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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Apr 10. 2023

이벤트 같은 여자의 땡큐함, 불현듯 S의 안녕

그녀의 온기로 따듯함을 한 스푼 얻었다.

2023.03.31 금요일 : 산책 시작입니다. 


아, 벚꽃 때문에 사람이 많다. 아직 금요일인데 이 많은 사람은 일도 안 하고 어찌 여기 다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혼잡한 사람들 틈에서 하는 산책도 나쁘지 않다. 벚꽃 구경에 한껏 들뜬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벚꽃 구경을 여유롭게 하는 게 이번 처음이다. 서로 사진 찍고 찍기니라 바쁜 그들 사이에서 그늘 아래 앉을 곳을 찾는데 마땅하지 않다. 좀 쉬었다 가야 할 것 같은데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어지러워 발을 헛딛는데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S야! 여기라고!! S얏!!





내 인생에 S 는 30대 초반에 만난, 일하다 우연히 9명의 그룹에 막내가 된 적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 나이가 많았던 언니 이름이 S 었다. 그 시기에 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아주 많을 때였고 20대에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실패했기에 심리적 무기력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있는 힘껏 고지까지 왔는데 무너지고 또다시 코앞인데 무너지는 바람에 몸만 상해서 원래 허약했던 몸은 더 안 좋아지던 시기였고 꿈을 원대하게 꾸었던 20대의 종료 앞에서 30대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신바람은 없을 거 같다는 두려움까지도.


그 그룹 사람들은 세상에서 만나 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들의 구성이었는데


예를 들어 육두문자로 시작해 육두문자로 끝난다거나 연애를 찾아 헤매는 유부녀가 있다거나 집에서 줄담배를 피우거나 밤이면 밤마다 유흥을 즐긴다거나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거나 생각이란 걸 잘 하지 않고 늘 즉흥적이거나 세상에 별 뜻이 없다거나 하는 등의 요지경 사람들이었지만 대부분 착한 심성을 지녔다.


그러다 어느 날


그룹 첫 모임은 성인 나이트클럽으로 꼭 가야 한다 해서 거절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1시간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머리채 잡혀서 가게 된 사건이 ‘S 야’ 부르는 소리에 단번에 생각났다.





그냥 나이트도 안 가봤고 술도 못 먹는 데다 모르는 지역에서 늦은 밤까지 있다는 것에 안정감을 느낄 수 없어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쇠심줄같이 버티면 보통 알아들을 법도 한데 이 그룹에 제일 나이 많은 S언니는 포기를 몰랐다. 성인 나이트가 그냥 나이트랑 다르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고 오픈도 늦게 해서 오픈 시간까지 기다리며 이들의 행태를 지켜봐야 했는데 그것 또한 나름 신기한 요지경이었다. 일할 때 성격들이 특이했지만 그래도 멀쩡했는데 옷차림부터 화장, 머리 세팅까지 다시 하는데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게 이상하다. 한참 8명을 번갈아 가며 구경하고 있자니


“ 막내 너도 해~ 하라니까~이렇게 가야 한다니까~차암~(콧소리) ”


안 한다는 손짓이나 반항은 통하지 않았다. 

8명이 들러붙어서 머리며 옷이며 화장이며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시큰둥한 나는 그래 맘대로 하란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 아니 이상하네, 하나도 안 어울려.. 왜 이러지? ”

“ 그러게, 언니, 이상하다 차라리 걍 지 옷 입고 화장은 지워야겠다. ”

“ 그래도 머리 세팅은 살짝 해야지, 자 봐봐 ”



시간 맞춰서 도착했는데

출입구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한다. 성인 나이트는 너무 어리면 못 들어가기 때문에 나이가 안될 것 같다며 주민등록증 검사를 문 앞에서 당했다. 사람도 많은데 문 앞에서 여자 9명이 우르르 그러고 있자니 무진장 창피함이 몰려왔지만 아니, 그래도 20대도 아니고 30대인데 너무 한다 싶었다. (30대부심)

그때 차림새도 기억나는데 니트에 치마에 롱부츠를 신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S 언니가 문 앞에 아저씨한테 엄청 뭐라 끊임없이 말해서 결국 출입하게 되었고 내부로 들어서는데


!


정말 신기한 세상이다. 그 이후로도 그런 세상은 못 만나 본 것 같은데 그저 시끄럽고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있던 문지기 아저씨가 어느새 우리 자리 뒤에 딱 버티고 서 있는데 아무래도 요주의 인물이 된 거 같다. 뒤에 서서 자꾸 콜라, 사이다, 우유, 과일을 주는데 요지경 언니들은


“ 알~코~올을 줘야지 이런 거 왜 주는 거야, 가져가~ ” 하는데도 계속 줬다.


그러다 언니들은 다 어디론가 흩어졌고 덩그러니 나 혼자 남았는데 이럴 거면 머리채까지 잡아가며 왜 데리고 왔는지 의문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접근하면 그 문지기 아저씨가 뒤에서 다 커트시켜서 편하게 우유 한 모금 사이다 한 모금 섞어 마시고 있었다.(아, 취한다) 그러는 사이 어디에 있었던 사람들인지 모르게 무대 쪽으로 사람들이 다 몰리기 시작했다. 홀로 테이블에 있던 나를 어느새 나타난 S 언니가 무대 맨 앞으로 끌어다 옆에 세웠는데



이런 거 첨 봤잖아요. 성인 나이트클럽 문 닫기 전 하이라이트!


무대에는 남성분 여러 명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무슨 아이돌 그룹 같다. 사람들은 그룹명인지 뭔지 모를 것을 부르며 환호했다. 노래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이들은 점점점 몸에 걸친 게 거의 없어지고 있었고 

내 눈도 초롱초롱해졌다.


드디어! 노래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두근),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엄청나다.


!


S 언니가 옆에서 손으로 내 눈을 가리는 바람에 그 하이라이트를 볼 수 없었다.






왜 그랬어?라고 물어본 적은 없었는데 S 언니와 인연이 끊어지고 S 란 사람이 떠오르면 늘 그때 왜 그랬어? 을 묻고 있다. 그리고 S 언니와 마지막은 지하철역 의자에서였다.


“ 난 네가 한참 어린 동생인데도 참 어렵다.. ” 며 흐느끼는데 혼란스럽다.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성격임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이렇게 흐느끼도록 슬픈 일인지 의문이었기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우두커니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 그리고 숨을 잘 쉬어야 해. 앞으로도 꼭 숨을 쉬면서 살아”라고 당부했다.


일할 때 한 번은

“ 어.! 왜 숨을 안 쉬어 숨을 쉬어야지.” 했었던 적이 있다.


집중하거나 몰입하다 보면 숨 쉬는 걸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S 언니는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항상 지켜봐 줬던 거 같다. 그 말을 듣고도 어느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들은 프로젝트가 끝난 그 이후 어떤 방면으로도 알 길 없이 사라졌고 연은 끊어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을 가끔 생각해 보자면 지루하고 지루했던 또 어느 날은 고되고 고된 삶 앞에서 희망차게 나아가라는 이벤트 같은 인연이 아니었을까.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들은 정말 천사였는지도.


“ 아니 인간 애 하나 키우기 어렵네. 아휴 별 연기를 다 해. 다들 수고했어”라며 뿔뿔이 흩어져

하늘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지 지켜보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또한 S야!라고 큰 소리로 부른 그 사람이 하필 내 주변에서 외쳤을까. 우연은 존재하지 않기에, 하늘이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살짝쿵 보내주었던 건 아닐까. 힘을 내 나아가라고. 산책하면서 중간중간 집으로 되돌아갈까 더 나아갈까 수십 번 백만 번 생각했지만 나아가는 걸 선택하길 잘했다.




언니의 흐느낌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제는 알고 있다. 산책하면서 그때의 낄낄 하하 호호 같은 웃음소리가 속삭이는 듯했고 이내 나도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 미소로 오늘의 시름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면 생전 모르는 타인에게 따뜻한 온기를 살짝 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지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홈리스 분에게 준 시원한 물이 그러했다.



S 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그녀의 안녕을 소원하며 바람에 흘려보낸 1일차 산책이었다.








산책길에 만난 꿍이, 말도 알아듣는 천재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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