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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Apr 13. 2023

중1 여학생과 중3 남학생의 모략, 덕분에 씩씩하지

K에게 얻은 소중한 용기 두 스푼

2023.04.01 토요일 : 2일 차 산책, 벚꽃 휘날림  

     

어제의 산책이 꽤 만족스러웠는지 산책하러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강공원까지 갈 수 없었는데 오늘은 한강이 목적지이다.      

    

3,000보에서 한번 쉬고 6,000보에서 한번 쉬고 이렇게 쉬는 포인트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컨디션 조절이 되었고 양손에 500m 생수병을 들고 걸으면 균형이 잡혀 그런 건지 걷는 게 수월하다.(파워워킹)          

벚꽃 계절에 한강은 사람이 엄청 많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이라 벚꽃 반 사람 반이다.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들도 참 많았는데 한강에 도착해 시원한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단체 중에 조금 떨어져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보였다.      

그들을 보면서 중학생이 저리 작았나? 싶었다. 어린 나이구나.      





자연스럽게 그날들이 떠올랐다.     

                

때는 중1, 집이고 밖이고 가해자가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가해자에게 너무 익숙해져 심드렁하게 지나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무시'로 화답해 왔지만, 초등학생 때와 중학생의 괴롭힘은 조금 달랐기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새벽 4시에 일어나 합기도 도장에 갔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 4시에 이제 막 중1 여학생 된 딸이 알아서 씻고 도복을 입고 교복을 챙겨서 집을 나설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남녀공학이었는데 괴롭힘 목록이 한 가지가 더 늘어났고 전교 따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5명 몰려다니는 인기 있던 남학생의 무리 중 한 명이 내 앞에 얼쩡거리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그 친구는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모로 유명했나 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 잘하고 키 크고 잘 생김까지 두루 잘 갖추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 5명은 전교 1, 2, 3, 4, 5등 이 그 무리 안에 다 있었고 모든 면에서 얼쩡남이 1등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2, 3학년도 합세해서 상당히 많은 수로부터 적이 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우리 반 앞으로 전교생이 다 몰리기 때문에 매점뿐 아니라 화장실도 가기가 애매해졌다. 물론 전교 5명이 움직일 때는 무슨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비켜섰고 인기남들이 사라지면 교실로 진입해 괴롭혔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인가 무리 중 한 명은 교실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얼쩡남이 매점에서 꼭 내 간식을 챙겨왔고 내 주변 앞, 뒤, 양옆으로 인기남 5명이 배치되었다. 이런 모든 일이 벌어지기까지 단 한 번도 그 얼쩡남하고 대화나 인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얼쩡남의 “사귀자” 하는 그 말에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합기도 도장에는 두 살 많은 중3 남학생(이하 K)이 있었다. 대부분이 K와 짝이었고 토요일마다 수련 대회를 했는데 그때도 어김없이 K가 항상 내 짝이었고 어느 날은 K를 뒤에서 앞으로 넘겨야 했는데 넘겨지질 않아 낑낑거리니 알아서 넘어가 주며 K가 말했다.

                     

“그냥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도망쳐, 어차피 여자는 남자 힘을 이길 수 없으니까”     


대답을 잘 안 하는 습을 가진 내가 그 말에 이어가지 않으니 또 말했다.     

“이리 와봐”          


중1과 K는 나란히 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오늘은 일단 이것만 알려줄게. 자 봐봐, 미친놈이 오면 눈을 이러케이러케 해서 정신을 헷가닥 하는 거야 “          

해보니 잘 안되고 의미도 모르겠지만 따라 하고 있자니 “ 미치면 힘이 세져. 잊지 마”라며 조언했다.     


그 이후로 도장에서 만나면 구석 아지트(?)에서 모략을 꾸미곤 했는데      

순간적으로 미쳐서 눈이 헷가닥하는 방법이라든지, 뒤에서 습격하거나 앞에서 습격하거나 무기로 위협하거나 때로는 말로 G랄할 때 등 다양한 대처법을 전수받았다.   

       

그렇게 서로가 낯가림을 벗고 조금은 친숙해졌을 때, 아니면 적어도 위험인물이 아니란 판단을 해서였을까. 무슨 용기가 샘솟아 K에 물었다.         

            

“사귀는 게 뭐야?”               


5초 정도의 정적이 분명 흘렀는데 모른 체했다. 그러니 K가 말했다.     

“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는 거야. 너도 내가 좋다면 우리 좋은 관계를 맺자는 약속 같은 거 ”      


이번엔 내 쪽에서 1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다.     

“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거야?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마음이야.”  

             

“ 마음..... 그런 게 나도 있을까?”         

 

“ 물론이지 ”                    


그렇다. 날 때부터 외톨이로 쭉 생을 이어 온 이 중1은 ‘사귀자’라는 의미를 알지 못해 대답할 수 없었던 거다. 아! 그래서였을까 훗날 연애 앞에 사귀자란 명확한 제스처가 없이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는 일은 없었으며 혹여라도 어물쩍 밀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쥐새끼라 명하고 ‘꺼져’라 말하곤 했다.      





그렇게 K와 스승과 제자가 되어가던 어느 날               

어김없이 교실 문 앞에는 떼거리로 몰려와서는 손가락질하는 여학생으로 가득했다. 학교에 가면 내 책상 밖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는데 갑자기 순간 이동을 했을까 싶게 어느새 앞잡이 팔을 잡고 있었다  

        

“ 손가락질은 예의 없는 거야. 할 말이 있다면 직접 앞에 와서 이야기해, 그리고 이렇게 찾아오는 짓 그만둬, 아님 매 순간 쫓아가서 지켜볼 거야, 저리 가(아,삑싸리.꺼져인데)”         

      

그렇게 할 말을 하고 뒤 돌아오면서 삑사리 부분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이내 뿌듯함이 몰려왔다.     

그 순간이 기.존.쎄로 가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그늘에서 쉬면서 땀이 식어 갈 때쯤 그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그때 그 작은 중3은 어떻게 해서 나에게 그런 걸 가르쳤을까.          

하늘이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를 보내주었던 건 아닐까. 항상 지키고 있으니 당당히 나아가라고.

이 세상 그 무엇 앞에서 쫄 것 없다고, 그것이 무엇이든. 천륜까지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손에 쥐고 있는 물병으로 호신 연습을 해봤다. 손에 쥘 때 물병 밑이 앞으로 오게 잡으면 뒤에서 공격하든 앞에서 공격하든 옆에서 공격하든 물병 위 플라스틱 뚜껑으로 가격할 수 있다. 그런 연습을 해보니 어느새 삶을 살아갈 용기 두 스푼을 얻고 있었다.          


그런 연습을 하며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휘날리는 벚꽃 잎에, K에 대한 감사를 담았다.   

       



하늘은 직접 오셔서 도와주실 때도 있지만 바쁘실 땐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를 보내주시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괴롭힘당하는 걸 담임 선생님은 모르고 계셨을까. 인기남 5명을 주위에 배치해 선생님 나름의 방법으로 힘겨운 제자를 지키신 건 아닐까. 

지난날 적재적소의 도움이 그냥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기에,

독자 여러분들의 안녕 또한 소원하며 산책 2일 차, 종료합니다. 용기 내소서.






                    

나무 그늘 아래 시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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