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엠 히스레저(I am Heath Ledger)>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히스 레저의 팬이 아니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과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멋진 연기를 했던 배우, 정도가 히스레저에 대해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 이번에 개봉한 영화 <아이 엠 히스 레저> 를 통해 알게 된 히스 레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이었다. 스크린 너머로 그 에너지가 전달되어, 집에 돌아가는 길엔 마음이 어쩐지 들뜨고 뜨거워져있었을 정도로.
영화 <아이 엠 히스레저>는 배우 히스 레저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가족, 친구들의 인터뷰와 히스 레저가 살아 생전 직접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을 엮어 히스 레저의 어릴 적부터 그가 죽기 전까지 배우로서 생을 보여준다. 그는 2008년 28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사망 10주기 추모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조커를 연기했던 배우로만 알고 있는 이들(=나)이 영화를 보고 알게될 새로운 정보 첫번째. 히스 레저는 배우면서 감독이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큼이나 촬영에도 관심이 많았던 히스는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8mm 캠코더로 틈틈이 자기 일상을 기록했다. 지금으로 치면 vlog같은 영상들이다. 장난 삼아 혼자서 셀프단편영화도 찍었다. 또 감독이 되어 인디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취미 덕분에 배우 생활 초창기 모습부터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까지 이렇게 영화로 생생히 볼 수 있게 됐다.
두번째, 배우가 천직이었던 사람이라는 점. 호주의 퍼스란 도시에 살던 히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우가 되겠다며 친구와 함께 시드니로 오디션을 보러 간다. 첫 영화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게 되고, 할리우드에서 청춘물 주인공을 연기해(<내가 널 사랑하는 10가지 이유>) 단번에 스타가 된다. 그런데 히스는 그 유명세가 싫었다고 한다. 영화 홍보차 다니는걸 가장 불편해하고 자신의 이미지가 소비되는걸 못 견뎌했다. 그래서 밀려오는 로맨틱코미디물 대본을 제치고 새로운 연기에 도전한다. <패트리어트>, <기사 윌리엄>, <브로크백 마운틴>등 장르도 다르고 해본 적 없는, 도전이 되는 작품만 택했다. 그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한다. 열정이 큰 만큼 불안해했고, 그 불안의 크기에 비례해 연기에 대한 평가도 좋게 돌아왔다.
그렇게 배우라는 직업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왜 죽었나. 아마 모두가 이 영화를 보러 오며 가장 궁금했을 질문에 대해 친구들은 속시원한 답을 못 한다. 히스 레저는 자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자기가 죽을 날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영화 촬영 중 폐렴에 걸려 몸이 아팠고 삶에서 안 좋은 시기에 처해있었다는 증언들만 이어진다. 단호하게 말하는건 딱 한 부분. 조커 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다만 자살을 둘러싼 각종 루머들 -조커의 배역에 너무 심취해서 우울증에 빠졌다, 이혼으로 인한 우울증 등- 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
<서칭 포 슈가맨>,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와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한다. 다큐 영화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 관심이 많아서다. 이 영화는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물의 생애를 순차적으로 따라간다. 인물을 다루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애정 어린 방식일 것이다. 실제로 그를 추억하는 친구들의 얼굴은 행복에 차 있었고 한편 그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진심으로 히스 레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말들로 표현해낸 히스 레저에 대한 영화. 히스 레저란 배우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토록 주관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