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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Nov 27. 2017

2016년 가장 아름다운 영화 - 영화 <빛나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어"

 올해 참 여러 일을 벌였는데, 그 중 가장 잘한 건 브런치 무비패스에 신청한 것이라 생각한다. 브런치 무비패스에 당첨되면 6개월간 브런치 팀에서 선별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을 받게 된다. 이제까지 초대받은 영화들이 하나같이 취향저격 독립영화여서, 야근하는 날도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는 꼭 챙겼다. (물론 야근으로 신청해둔 시사회를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브런치팀 죄송합니다...)


 이번에 보게 된 영화는 <빛나는> 이라는 일본 영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름다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영화를 떠올리면 마음이 일렁일 정도로. 처음 들어보는 영화였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점,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선택을 했다. 이 영화를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20대 여주인공 미사코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영화를 해설하는 일을 한다. 그러니까 대사와 소리가 없는 장면을 시각 장애인이 상상할 수 있도록 언어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맡은 영화가 꽤 어렵다. 밤을 새워 수정하는 등 열심히 해설을 해가도, 시각 장애인 모니터단의 피드백이 좋지 않다. 모니터단 중에서도 특히 나카모리라는 사람은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들을 때마다 날이 선다. 영화 감독도 만나보았지만 크게 나아지는 건 없다. 급기야 세번째 수정 후 열린 모니터 시사에서는 기분이 상한 마리에가 모니터단에게 심한 소리를 하게 되고, 단체로부터 해설 작업을 그만두라는 얘기까지 듣는다.


 나에게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성장영화로 읽혔다. 미사코가 해설하고 있는 영화는 <그 모래의 행방>이라는 영화로, 치매 걸린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주조'라는 노인의 이야기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어
 

 영화 속 영화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영화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얘기한다. 영화 <그 모래의 행방> 의 마지막 장면은 주조가 모래 언덕에 서서 지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감독을 찾아가 라스트씬이 무슨 뜻인지 물으니,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는다. 미사코가 이해하기에 이 영화의 주제는 '희망'이다. 감독에게 그런 모호한 말 대신 확실한 희망을 달라고 하자, 감독은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주조가 당신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희망과 절망으로 양분된 세계에 사는 스물여섯살의 주인공은 아무리 여러번 영화를 보아도,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나이의 노인이 느끼는 상실의 허망함과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가 쓴 해설의 한계는 시각장애인들이 더 기민하게 알아챈다. 상상력을 제한한다, 영화의 정중함을 망가뜨려버렸다, 는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고선 상처 받은 주인공은 시각장애인들에게-정확히 말하면 나카모리상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건 그쪽이 아니냐"는 등 못된 말들을 뱉어낸다.

 우연한 계기로 미사코는 모니터단의 나카모리상과 가까워지게 된다. 유명 사진가였던 그가 시력을 잃으며 사진을 더이상 찍지 못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주인공은 상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다. 미사코에게도 소화되지 않은 상실의 경험이 있다. 오래전 아버지가 실종되었던 것. 그리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치매에 걸려 아버지를 기다린다. 상실을 겪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함께 상실 이후의 삶을 걸어나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에게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빨려들어가는 경험이라고 한다. 몇번의 수정 끝에 미사코의 영화 해설로 최종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를 보고 있는 시각장애인 관람객들의 얼굴엔 황홀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계속 문제가 되던 라스트씬마저도. 영화 속 세계에 빠져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표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전작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에서도 느꼈던 것인데 화면이 정말정말 아름답다. 특히 자연을 참 잘 담아낸다. 침엽수림이 흔들리며 만들어내는 물결, 산 뒤로 넘어가는 노을... 주인공과 사진가가 노을 앞에 함께 서 있던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영화에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중년 남성과 20대 여성의 사랑을 너무 미화시켜 그려놓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그 남성을 사랑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버지의 부재로 보인다. 아버지 자리를 대신할 중 년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건 .. 어딘가 좀 아슬하지 않나.

 영화 리뷰를 쓰고 나니 주인공 미사코의 마음을 백번 이해할 것 같다. 내 좁은 삶의 경험으로 표현하기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이 훨씬 큰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오독해 '영화의 정중함을 깨뜨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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