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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Feb 27. 2018

나 왜 서울에서 살고 있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서울살이 속 잃어버린 나의 숲을 찾아서

 나는 청소를 좋아한다. 요리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한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분명 비웃겠지만) 자주 하지 않을 뿐. 청소와 요리를 하는 동안 스스로를 돌보는 그 기분이 좋아서 주말 중 하루는 꼭 집에서 보내려고 노력한다.

 

 시간은 없고 할일이 많을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식사와 청소다.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는 5분만에 해결하고, 옷을 제자리에 걸어 놓을 시간에 잠을 5분이라도 더 잔다. 그렇게 서울이란 도시에서 7년을 살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의 서울살이 역시 비슷하다. 혜원이 생계(편의점 알바)와 꿈(임용고시)을 위해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동안 풍성했던 혜원의 숲은 황폐화됐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냉장고 속 물러버린 과일들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이 내면의 숲을 복원하기 위해 시골 고향에 내려가 보낸 1년 간의 기록이다. 고향집에서 사계절을 보내면서 하는 일이라곤 삼시세끼를 지어 먹고 남는 시간엔 농사를 돕는것. 남는게 시간이니 서울에서와 달리 한끼를 먹는데도 두세시간을 들여 제철 재료를 가장 맛있게 요리한다. 마당에서 뽑은 배추로 겉절이와 배추전을 만들고, 봄꽃을 얹은 파스타, 떡, 심지어 막걸리도 만들어 마신다.



혜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자존심이 세서 자기를 떠난 엄마에게 연락 한 통 하지 않았고,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애인이 합격하자 축하한다는 말도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버린다. 서울에서 20대를 보내는동안 건강도 망가졌지만 자기 마음을 돌보는 법도 잊은 것이다.  

 혜원 내면의 숲이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는 그간 연락을 피했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는 장면부터다. 영화의 말미엔 시골집에서 내내 떠올리며 미워했던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혜원을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 키우며 “이곳에 심고 싶었던” 엄마 덕분에 혜원은 돌아갈 자리가 있었으니까. 시골에서 1년을 보내고 혜원은 재하의 말마따나 ‘아주심기’를 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간다. 아주심기는 더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히 심는다는 의미. 혜원이 어디서 어떻게 뿌리내릴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으나 마지막 장면에서 혜원이 답을 찾아서 시골집으로 내려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는 내내 외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도움주신 모든 사람들과 동식물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말이 나온다. 감독은 경북 의성군에서 1년간 머물며 촬영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사계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볕이 좋은 날, 온 들판의 벼가 노랗게 물드는 순간을 기다렸을 감독과 제작진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졌다. 모든 사람과 동식물의 도움으로 이 영화엔 한국 자연의 아름다운 액기스만 담겨 있다.


영화가 끝나고 맥주 한잔 하는데 현타가 왔다. 나는 왜 서울에 살고 있는 거지. 영화처럼 하루종일 요리하고 먹고 자고 또 요리하고 싶었다. 정성과 시간을 들인 음식엔 그 에너지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건강한 한끼가 될 수 밖에 없다. 한끼라도 정성 들여 만들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여유가 없는거지만. 밥 먹을 시간을 아껴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서울에 왜 살고 있나. 여러번 되물은 결과 꿈 때문에, 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자리에 있어선 훨씬 많은 기회들이 서울에 있으니까.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두가 삼시세끼 잘 챙겨 먹는 삶을 꿈꾸면서도 이번 생을 원하는대로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꿈이 모여 있는 이 도시가 좀 슬펐다. 그놈의 꿈이 뭐라고. 계절이 지나가는지 마는지, 제철 음식이 무엇인지도 잊은 채 살고 있는 걸까.



 결국 내가 선택한 삶이다. 일로 행복해질 것이냐 자연으로 행복해질 것이냐 선택의 문제다. 서울에서 숨가쁘게 살면서도 나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애를 써서 멈춰서려고 하는 것. <리틀 포레스트> 덕분에 내 안의 숲을 돌아보게 되었다. 잊고 방치해두느라 숲이 상하지는 않았나,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느라 숲은 풍성해지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볕과 바다 그리고 무언가가 그리워져서 다음주엔 통영과 하동으로 떠난다. 고작 사흘의 여행이지만 조금이나마 목마름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영화에 흠이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는 것. 편의점 알바, 임용고시 등 대한민국 20대의 짠내를 대표하는 요소들이긴 했으나 진부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뚜렷해서 촌스럽게 느껴졌다. 연기왕 문소리조차 자연스럽게 쳐내지 못하는 문어체 대사와 내레이션들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일본 원작이 궁금해져서 이번 여행에서 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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