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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Mar 08. 2018

겨울 바다에 가는 이유

종종 겨울 바다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느 술자리에서 질문을 던졌다.


너네, 겨울 바다 가본 적 있어?


"있지. 스무살 때."

"어 나도."

"그 사람이랑 갔지. 왜 너네 다 아는 그 사람 있잖아. 도착하니까 해도 안 떴더라고. 너무 추워서 아무데나 들어가 있었어. 그때 분위기... 참 좋았는데"

"난 이별 여행 같은 거였어. 그 날 본 게 거의 마지막이였거든. 나도 어렸고 그 사람도 어렸는데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 나. 바다를 보러 가면 바다를 보는 게 아니라 수평선을 봐야한다고, 멀리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랬었나."

 겨울 바다에 대한 기억들은 하나같이 신파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툴렀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나 역시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은 있었으나 꺼내지는 못했다. 그건 정말로 신파였으니까. 친구들도 정작 자기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은 각자의 마음 속에만 묻어두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질문을 던진 것은, 사람들이 왜 겨울 바다에 가는지 궁금해서였다.


작년 2월엔 얼결에 제주행 특가 티켓 예매에 성공해서 겨울 제주도에 일주일이나 혼자 가게 됐다. 사람 없는 한적한 모래사장에서 복잡한 마음을 비워내고 오고 싶어서 바닷가만 찾아다녔는데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추워도 너무 춥다.. 따뜻한 방에 들어가고 싶다'였다. 겨울 바다를 찾아갔으나 생각 정리엔 실패. 겨울 바다는 실내에서 볼 때 가장 좋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겨울 바다에 가는 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바닷바람이 또 오죽 매섭나. 여름의 해수욕장에 간 마냥 불꽃놀이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얼어죽기 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바다로 향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찬 바닷바람으로 꺼멓게 탄 속을 어떻게든 식혀보려고, 혹은 찬 바람 맞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가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 바다의 추위를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아주 절박하게 겨울 바다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잘 지내다가도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때, 겨울 바다가 그리워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하나 없는 겨울 바다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속 영희처럼.


 주인공 영희는 유부남 감독과의 불륜으로 세상의 질타를 받는 인물이다. 영희를 걱정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지만 영희는 외롭다. 독일에서도, 강릉 카페에서도, 해변에서도.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리뷰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있었다.

제목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지만 밤의 해변도, 혼자도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 영화는 존재의 상태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빌리자면 속으로 떠올리는 '혼자 겨울 바다'는 고독하고 쓸쓸한 감정 그 자체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우리가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렸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 삶의 습격을 받았을 때 누군가 했던 말처럼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막막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테니까.




글쓴이│양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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