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10년 전 여름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8월의 어느 새벽, 막내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병원 응급실 갔어."
전화를 받고 병원에 갔더니 엄마는 수술 중이었다. 이모 말로는 새벽에 엄마에게 전화가 와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 일단 119부터 부르라고 했단다. 엄마는 뇌출혈이었다. 6시간이 넘는 긴 수술이었다. 수술이 끝난 엄마는 한 달 반을 중환자실에서 있다가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 있는 엄마는 아주 가끔 눈 맞춤을 할 뿐 대부분은 잠들어 있었다. 진통제 때문에 그렇다고, 오히려 잠들어 계시는 게 덜 아프시다고 간호사는 말했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엄마 모습이 마지막 기억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엄마는 꿈에라도 한 번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아마도 10년 전 여름 엄마에게 내가 너무 못되게 굴어 아직도 삐졌나 보다. 아이들 방학이라 겨우 사흘 엄마 집에 갔었다. 엄마는 몇 달 만에 본 손주와 내가 반가워 한 여름 열기에도 끼니마다 생선을 구웠다. 그 생선 냄새가 비리다고 짜증을 냈다. 엄마가 요즘 뭐 하고 지냈냐는 말에 "맨날 똑같지 뭐." 라며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으로 엄마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무안한 엄마는 나에게서 시선을 걷지 못하고, 나는 그런 엄마의 시선을 외면했다.나는 엄마 집에서 사흘 내내 잠만 잤다. 내가 자는 동안 엄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공원으로 학교 운동장으로 놀이터로 데리고 다녔다.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엄마, 뭐 먹고 싶어? 나 가야 되니까 외식하자." 그렇게 말해 놓고 애들이 좋아하는 돼지 갈비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연기를 쫒으며 고기를 구워 한 점은 내 그릇에, 한 점은 애들 그릇에 놓아주던 엄마. 엄마는 "난 고기 보다 냉면이 좋더라." 하며 고기는 몇 점 먹지도 않고 냉면을 시켜 먹었던 그날. 그날이 엄마와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랬다. 그게 마지막 식사인 줄 알았더라면,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 사드릴 걸 그랬다. 그게 마지막 엄마와의 대화인 줄 알았더라면, 남자 애들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미치고 팔짝 뛰겠다고, 그래도 박서방이 세상 나에게 잘해준다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말해 줄 걸 그랬다.
꿈에라도 한 번 찾아와 주면 아직 삐졌냐고 진짜 미안하다고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가 나 좀 봐주라고, 봐주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