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너머의 긍정
11일을 강남역에서 노숙한 적이 있다.
자살, 절박, 희망, 좌절이 미친 듯이 요동쳤던 시간.
하루, 이틀, 사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감정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간절히 원하며 살아온 나에게,
극단적인 순간은 마치
그 순간만 지나면 기억도 추억도 사라지는
깊은 공백처럼 남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부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 찾아낸 긍정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