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회고
2052년 12월, 소담스레 내리는 눈 너머로 올해를 돌아본다. 느릿느릿 행복하게 지나간 날들이었다. 영화 많이 보고, 책 많이 읽고, 콘서트도 많이 갔다. 몸이 힘들지만 페스티벌도 두 군데 가길 잘 했다. 짬을 내어 다녀온 짧은 여행들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최측근도 건강하다. 일도 할 만하다. 오래 다닌 회사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내년도 큰 걱정 없이 계속 일할 것 같다.
좋은 한 해였다. 그래… 마치 2022년처럼.
2022년은 직장인 되고 처음 맞는 평화로운 해였다. 웬일로 이직이며 이사 같은 큰 일이 없었다. 잘 살던 집에 계속 살았고, 잘 다니던 회사에 계속 다녔다. 코로나로 잠깐 고생했지만 나도 가족도 건강했다. 소소한 시도는 있었지만 인생의 방향을 바꾸거나 가속도를 낼 만한 큰 변화는 없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았다. 해야 할 일만 했고 다가오는 기회만 잡았다. 지난 6년간 꼭 붙잡았던 성장 강박을 잠깐 놓았다.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지금 일이 좋은데, 여기서 더 성장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것 밖의 것까지 내 몫이 될 것 같았다. 관리자 말고 실무자로, 가능하면 스페셜리스트로 평생 먹고 살고 싶다. 라이츄로 진화하고 싶지 않은 피카츄의 마음이 이랬을까.
힙스터를 동경하지만, 안정적인 걸 편안해하는 나에게 딱 맞는 한 해였다. 평생 이대로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하지만 내년에도 이렇게 살면 평생 이렇게 살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올해를 무탈히 보낸 건 그동안 쌓아 온 커리어 덕분이다. 하지만 이 커리어는 모래성 같은 거라, 계속해서 쌓아가지 않으면 몇 번 파도에 형체도 남지 않게 된다.
올해 가장 보람 있던 일 하나가 필라테스를 주 3회 6달 계속한 것이다. 운동 정말 싫지만 이거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 그냥 했다. 저녁 9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스포츠센터 매트에 몸을 누이는 건 하루도 예외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피하지방 너머 작고 소중한 코어 근육이 생기는 즐거움에 참을 만했다. 그랬는데, 그 근육은 겨우 1달 쉬면서 자취를 감췄다. 애초에 신기루였을까. 하지만 신기루라도 희망을 가지고 살던 때가 훨씬 행복했다.
내년에는 으쌰으쌰 살아야 한다. 커리어의 코어 근육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 2052년의 나도 2022년처럼 행복하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릴 수 있다. 굳이 진화하지 않더라도, 내 직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잘하면 가능한 미래 아닐까? 포켓몬스터가 나오고 25년 만에 세계 대회에 우승했다는 피카츄처럼. 물론 말이 쉽지, 푹신한 침대에 드러눕는 게 세상 편한데… 하지만 지금 일어나 일해야 나중에 누울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 자문자답을 주고받으며 끙끙대는 12월이다.
*커리어 이야기는 이 곳에서, 더 많은 에세이는 여기서 읽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