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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Oct 31. 2023

진짜 이상형을 만나는 방법

연애든 회사든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나의 이상형은 키 큰 사람이었다. 내가 작지 않은 편인데 덩치까지 있으니, 나란히 섰을 때 나보다 듬직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그밖에도 수많은 기준이 있었다. 똑똑한 사람, 착한 사람 등등. 하지만 굳건했던 그 기준들은 최측근을 만나고 산산조각나게 된다.



지난 8월, <나는 어떤 회사에 지원해야 할까?>라는 글을 썼다. 2년 다니던 회사를 나와 <(속보) 전윤아 퇴사! 심경을 담은 단독 인터뷰 공개>를 쓴 지 6달 만이었다. 실업급여를 다 받았으니 취직은 해야겠고, 가고 싶은 회사는 특별히 없고. 막막하던 차에 떠오른 방법이 공개 구직이었다. 주니어 시절 재미를 본 방법이었다.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이런 회사를 찾고 있어요, 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멋들어진 소개를 쓰고 예쁘게 나온 작업물을 올렸다. 자기PR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소개팅 앱에 이상형 찾는 글 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제법 경력이 쌓인 지금은 바라는 것도 많아졌다. 내가 내세운 이상형의 기준은 5가지나 되었다.  


1)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적당한 규모의 회사

2) 야근을 지양하는 회사

3) 열정페이가 아닌, 페이로 보상하는 회사

4) 개인보다 팀, 회사 전체의 성장이 중요한 회사

5) (가능하다면) 집에서 가까운 회사


그동안 함께한 회사들을 떠올리며 다듬은 기준이었다. 이걸 다 충족하는 회사는 아마 없을 거였다. 하지만 이상형은 있어야지. 나름의 기준이 있어야 좋은 회사를 찾을 거 아닌가. 하지만 이 기준들은 우리 회사를 만나고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내년이면 결혼하는 최측근과 연애한 지 6년차. 같이 산 지도 벌써 4년차다. 최측근은 키가 크지 않다. 하지만 상관없다. 세상에 이런 사람 또 없지 싶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딱이지만, 나는 최측근을 만나고서야 진짜 이상형을 찾았다.


최측근은 키가 크지 않아도 듬직하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가 모르는 걸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초심자의 마음으로 배우는 모습. 그건 얕은 지식으로 콧대를 세우던 나에게 없는 똑똑함과 착함이다. 이상형의 기준만 내세웠다면 최측근을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중요한 건 이상형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그 기준을 만들게 된 이유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회사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1) 적당한 규모의 회사를 찾은 건 ‘여기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기 싫어서였다.

2) 야근을 지양하며 3) 페이를 제대로 주고 4) 개인보다 회사 전체의 성장을 중요시하는 곳이어야 지치지 않고 즐겁게 다닐 수 있을 거였고,

5) 집에서 가까운 곳을 찾은 것도 마찬가지.

한마디로, 나는 오랫동안 즐겁게 다닐 회사를 찾는 거였다. 8년 동안 다양한 회사를 다녀 왔지만 한 회사를 2년 넘게 다닌 적은 없었다. 커리어 성장을 이루려면 한 회사를 오래 다니며 새로운 방식으로 성장할 기회를 잡아야 했다.


공개구직 글 덕분에 좋은 커피챗 기회가 여럿 있었다. 그런데 선뜻 지원하고 싶어지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1) 적당한 규모의 회사는 업무범위가 정해진 곳이 많아 재미가 덜해 보였고

2) 야근을 지양하는 회사는 정말 드물었고

3) 내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었으며

4) 회사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데다

5) 역시나 대부분의 회사는 강남에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와는 2호선 정반대.


1)부터 5)의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랫동안 즐겁게 다닐 (수 있을 듯한) 회사를 찾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초기 스타트업의 6번째 팀원이 되었다. 5) 4), 3), 2)를 충족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던 1)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지만 내가 찾던 어떤 회사보다도 마음에 든다.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 스타트업 혹한기에도 투자를 유치한 팀워크와 비즈니스 모델, 실력과 열정을 갖췄으면서 놀라울 만큼 상냥한 동료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대만족 중이다.


잠깐, 어떻게 '오랫동안 즐겁게 다닐' 회사인지를 알아봤냐고?

예리한 질문이다. 이거야말로 함께 일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 입사 결정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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