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외치다 골로 가지 않을 정도로만!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적금 하나를 깼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급식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던 어린 시절, 나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이 시험인데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수행평가 과제도 하루 날밤 샐 생각으로 미뤄두고, 용돈도 저금 한 푼 없이 탈탈 털어 써버리고. 여러모로 최소한의 대책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요즘 유행하는 YOLO(You Only Live Once), 욜로의 삶을 일찍 시도해본 셈이다. 별생각 없이 살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초등학생 때야 학교에서 수업만 잘 들으면 공부는 어려울 게 없었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건강하니 그렇게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늘만 사는 삶 때문에 큰코 다치게 된 건 중학생이 되고부터였다. 첫 중간고사, 친구들이 시험기간에 "시험 공부 하나도 안 했다, 어떡하지!", "시험 그깟 거 전날 밤새서 공부하면 되겠지 뭐!" 떠들고 다니던 걸 그대로 믿고 '나도 그럼 시험준비야 조금만 해도 괜찮겠지' 생각해버린 거다.
시험 결과는 처참했고 시험 공부 하나도 안 했다던 친구들 점수는 나보다 한참 높았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1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 사실은 겸손한 표현이거나 기껏해야 '전체가 10인데 그 중에서 1 정도밖에 준비하지 못했다'는 뜻이라는 걸. 다가오는 미래를 정말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걸.
아무리 삶이 바쁘고 지치고 마냥 뒹굴거리고만 싶어도 10 중에 1이나마 미래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건 그때부터 내 생활신조가 되었다. 매 끼니마다 과식으로 혹사당하는 내 몸을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운동을 하고, 언젠가 글로 먹고살 경지에 오르겠다며 여가 시간에 꾸준히 글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치만 누가 집에서 뭘 하며 시간을 보내냐고 물어보면 "웹툰 보고 뒹굴다가 자요."하고 만다. 여유 있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하는 걸까, 치열하게 사는 사람인 척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느릿느릿 꾸준히 해온 것들이 내 '10 중의 1'로 자리잡고 있으니 뭐라도 하길 잘했다 싶다.
아마 가장 대책 없이, 그러니까 10중에 1만 겨우 준비해 놓은 건 저축일 거다. 매달 얼마씩 적금을 넣고는 있지만 월급의 1/3이네 절반이네 넣는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코딱지만한 금액이라 말을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그나마 올해부턴 금액을 조금 늘렸더니 내 허리가 휘다가 휘다가 부러져서 이번 달 카드값을 다음 달 월급으로 메꾸는 일이 당연해지는 지경이었고. 이 와중에 적금 깨고 여행이라니 정신줄 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가오는 생일에 존경하는 팀장님이 쿨하게 허가해주신 소중한 연차고, 마침 중국에 장기 출장 중인 친구는 여행 계획까지 다 짜 뒀다는데. 즐거움에는 돈이 필요한 법. 가야지. 한 번 사는 인생 뭐 있나!
그래서 적금을 깼지만
사실 내 적금 통장은 두 개고, 이번에 깬 건 금액이 적은 것이다.
욜로 외치다 골로 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10년을 모아도 서울에서 전세 한 채도 못 구할 거다.
그러니 누가 물어보거든 그냥 1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야지.
얼마 안 되는 월급 조금씩 모아 봐야 집 한 채도 못 사는데, 아끼느라 인생을 즐기지 못하면 안 되지! 라는 욜로 사상.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지나치게 혹사시키진 말자는 의미가 참 좋다. 하지만 집까진 아니더라도 월세 보증금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내 한 몸 편안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진 않게, 하지만 정말 오늘만 살다 내일이 존재한다는 걸 잊진 않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욜로 라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