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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Nov 06. 2018

일주일 내내 쓴 글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기분을 덜 상하게 하는 피드백 방법을 배웠다

"어떻게... 살려 보실래요?"

"에휴, 아뇨. 그냥 다시 쓸게요."


  지난주 내내 매달렸던 글을 엎기로 했다. 완성한 글을 공개하지 않고 묻는 건 내 인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요 며칠 '문과생도 이해하는 AI 이야기' 첫 글을 쓰는 데 시간을 탈탈 털어 썼다. 비전공자도 머리 싸맬 필요 없이 재미있게 볼만한 인공지능 소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건 우리 회사에 입사할 때부터 욕심내던 멋진 일이었다. 물론 웬만큼 멋진 일들은 해내기가 어렵다는 게 함정. 지난 두 달 동안 틈틈이 책을 읽고 CTO 준철님을 포함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힘들었지만 새로운 걸 알게 되는 즐거움이 컸다. 내가 보고 들은 것들만 잘 옮겨도 이 글은 재밌겠구나 확신하며 글을 썼다. 정성껏 드립을 담아낸 웹툰까지 중간중간 그려 넣었다.


  '아 솔직히 이건 내가 봐도 괜찮은데?' 뿌듯해하며 재영님께 피드백을 요청했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재영님은 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나... 했더니. 중대한 수정사항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문장이나 문단 한두 개를 수정한다고 해결되는 부분도 아니었다. 기껏 완성한 글이 빛을 보지 못하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는데, 글을 다시 쓰기로 결정하고 한 30분은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그런데 30분이 지나고 생각보다 빠르게 집 나간 정신이 돌아왔다. 아마 재영님이 타당한 근거를 들어 의견을 전달했고, 개선방향을 함께 제시했고, 나에게 글 수정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주었기에 회복이 빨랐던 것 같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만든 무언가를 피드백할 때 유용하게 써먹을 방법 같아 슥슥 정리해 두기로 한다.


  1. 타당한 근거가 있는 의견 전달

: 재영님은 내 글이 다소 산만하다고 했다. 산만하다는 게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고, "인공지능의 개념을 말했다가 알고리즘이 뭔지 설명했다가 모델과 모델링은 왜 필요한지가 나와서 내용에 통일성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라고 산만한 부분을 콕 집어 말씀해 주셨는데 맞는 말이었다. 글 쓰며 새로 배우게 된 것들이 많아 신난 바람에 이것저것 정보를 집어넣다 보니 전체 맥락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기초적인 실수를 한 거다. 지적을 받고 나서야 그게 눈에 보였다.


  2. 단순한 지적질이 아닌 개선방향 제시

: 다짜고짜 통일성이 떨어지는 글이었다라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허접한 글이었다고 지적받았다면 30분이 아니라 3일은 우울했을 거다. 재영님은 글에서 살릴 만한 요소들을 짚어내 이 부분들을 묶어 다시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본인의 지적에 개선사항까지 1+1로 전달했다.


  3. 수정 결정권은 나에게

: 1, 2가 있은 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세요." 라며 홀연히 사라진 재영님은 30분쯤 지나 다시 돌아와 내 의견을 물었다. 좀 더 편한 방법을 택한다면 글을 어떻게든 수정해서 발행해야 했겠지만 그렇게 너덜너덜한 글로 인공지능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글을 새로 쓰겠다는 결정은 결국 내가 내린 거고, 그래서 힘들어도 노력할 이유가 생긴다.



  회사에서 만드는 콘텐츠는 나 혼자 호다닥 완성시켜 올릴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하지 못할 콘텐츠를 만드는 날이 가끔 있을 거고, 그때마다 느낄 상실감은 감기처럼 평생 면역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피드백은 감기약처럼 상실의 증상을 완화해 준다.


  그리고 지금 내 책상에는 재영님이 가져온 AI 추천도서가 3권 나란히 쌓여 있다. 이번 주 안에 새로운 글을 완성시켜 보여드리기로 했는데, 이번엔 재영님도 나도 납득할 만한 좋은 글이 나오면 좋겠다. 제발. 제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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