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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Nov 16. 2018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은 것 같다

"이건 제 욕심이에요."

  나는 먹을 것 욕심이 짱짱 많다. 욕심엔 못 미치지만 위장도 큰 편이라 잘 먹는다. 친구랑 둘이 맛집에 가면 메뉴를 세 개씩 시키는 건 다반사, 그렇게 먹고 디저트까지 꼭꼭 챙기는 건 놀랍지도 않은 일상이다. 요즘은 회사 근처 머슴밥 주는 밥집에서 한 그릇 싹 비우고 팀원분들께 리스펙 받는 데 재미를 붙였다. 그렇게 점심 먹고 나면 커피까지 함께 마셔 주는 이 분들 덕에 요즘 회사생활 만족도가 몸무게가 같이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다.


  이래 봬도 소심한 사람이라 불편한 자리에서는 한 숟갈도 제대로 넘기질 못하는데, 요새 유난히 점심이 꿀맛인 걸 보면 건 회사에 제법 적응이 되었구나 싶다. 쭈구리 뉴비에게 도움의 손길 낭낭하게 보내준 팀원분들 공이 크지만 좀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세 달째 야매 관심법으로 살펴본 결과 우리 회사 분들은 나랑 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들 욕심이 짱짱짱 많다는 거. 나는 밥 욕심, 그분들은 일 욕심. 최근에 시작한 파이썬이 재밌다는 PM님, AI를 취미로 공부하시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님 등등등 소개하자면 끝도 없지만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준철님의 한 마디.



  요즘 CTO 준철님과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 두 시간 꼬박 머리를 맞대고 글을 쓴다. 곧 대장정이 시작될 기술 블로그 운영 건 때문이다. 나야 기술은 1도 모르는 문과생 마케터다 보니 준철님 글 속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이 잘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의견을 드리는 정도다. 그나마도 준철님이 글을 잘 쓰셔서 크게 지적할 건 없다. 더 잘 쓰시면 나처럼 글 쓰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의 생계는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인데 준철님 본인은 성에 차지 않는 듯싶다.


"박사과정 때 논문 쓰던 생각이 나네요. 그때도 지금도 글 쓰는 게 참 어려워요."

"에이, 준철님 정도면 글 잘 쓰시는 건데요 뭐. 지금 쓰시는 글은 논문보다야 마음 편하게 쓰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녜요. 더 잘 쓰고 싶어요. 이건 제 욕심이에요."



  친구가 저렇게 말했으면 "에이, 그래도 난 너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하고 적당히 넘겼을 건데 준철님에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오래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요 몇 달 내가 파악한 준철님은 본인만의 울림이 있어 신뢰하게 되는 사람이다. 이제 보니 매사에 '이 정도면 됐다'고 적정선에서 타협하기보다 '이걸로는 부족하지 않나' 고민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갔으니 그런 울림이 나왔지 싶다.


  힐링 좋고, 마음의 여유 중요하고, 아무도 완벽해질 순 없다는 말도 사실이다. '이 정도면 충분해, 너는 최선을 다했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위로 3종 세트는 분명 세상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말들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려면 '아직 부족하지, 좀 더 노력하자, 더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욕심이 필요하다.


  감히 다른 사람에게 노력이 필요하다며 채찍을 휘두를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 그치만 나 자신에게는 꼰대질 좀 해야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욕심이다. 나야말로 글을 더 잘 써야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위로받는 게 아니라 위를 향해 가는 목표다. 이건 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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