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쓴 문장을 낯선 이의 목소리로 다시 들었다. 기시감처럼 다가온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낯선 책의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문체, 오래 품어 왔던 어휘의 촉감. 내 안에서 태어난 문장들이 누군가의 이름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조용히 책을 덮었고, 그 침묵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이름을 뺏긴 문장은 텅 빈 골목을 걷는다. 그곳엔 설명도, 항변도 없고, 다만 한 줄의 흔적만이 남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게 정말 당신의 것이냐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할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증명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건 내 안에서 천천히 익은 마음이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었다. 한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흘려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단어를 버리고, 지우고, 다시 적어야 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문장은 나에게 하루하루를 견디게 한 숨결이었고 어떤 건 손끝의 피로 찍은 듯했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아무 말도 없이 타인의 손에 들려 있다.
나는 침묵을 배웠다. 고요한 분노 속에서 나는 나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해도 돌아오지 않는 자리에서 더 이상 상처 입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문장을 처음 떠올렸던 오후의 햇살, 첫 문장을 적었던 불 꺼진 새벽의 공기, 그 모든 것이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 기억에는 이제 이름이 없다. 무명無名의 문장이 되어 나는 그 문장들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 세상은 무심했고 나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침묵은 익숙해졌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길게 망설이고 더 오래 쥐고 있었다. 누구도 닿지 못하게 내 안에서만 머물게 하려는 듯.
나는 아직 글을 쓴다.
침묵 속에서도 쓴다. 이름이 사라진 문장을 가슴에 품고 또 다른 문장을 낳는다. 문장이란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자란다. 그 누가 또 가져가더라도 그 누가 또 내 안을 지나쳐가더라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 문장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그 누구보다도 그 문장을 오래 품은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