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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토록 Sep 28. 2023

열정페이, 감당하시겠습니까?


“하는 일이 뭐예요?”

“공연계에서 일하고 있어요.”

“와, 멋진 일 하시네요. 진짜 재밌겠어요.”

“재밌을 때도 있지요. 그래도 일이 다 그렇죠 뭐...”


“OO야, 너 진짜 멋지다. 내 주변에 이렇게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에이, 멋지긴 뭐가 멋져, 배우들이나 멋지지”

“아니야, 내 주변에 공연계 종사하는 친구 있다고 하면 다들 엄청 부러워해”

“알고 보면 이쪽 일도 3D야. 죽어라 일해도 돈도 못 벌고 좋긴 뭐가 좋냐”   

  

이런 대화를 수도 없이 나눴다. 입이 쓸 때가 정말 많다. 내가 하는 일이 멋진가. 진짜? 출근시간은 있으나 퇴근시간은 없는. 남들 노는 주말, 휴일에 일하고, 밤낮없이 일해도 통장은 늘 ‘텅장’인데. 도대체 뭐가 멋지다는 건지. 화려하고 멋진 무대, 박수받는 건 배우들이지 내가 아닌걸.


나는 친구들에게 소위 ‘예술하는 친구’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고, 예술 관련 하나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고 있으니 그냥 예술가라는 부류에 어설프게 꼽사리 끼어 통칭되곤 한다. 


수많은 예술가가 가난에 허덕인다. 나도 거기에 자동적으로 포함되는 인생이다. 친구들은 예술가들에 따라붙는 ‘창작의 고통’, 그 언저리에 있는 무엇을 나 또한 품고 살 것이란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을 거다. 그래도 뭔가 창의적이고 즐거운 일이 더 많으리라는 기대감이 있는 듯하다. 


현실은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의외로 엉덩이 붙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 아프게 씨름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일반 사무직 직장인들처럼 거북목 증상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손목의 문제도 많이 달고 산다. 장시간의 회의도, 서로 언성 높이며 피 튀기게 싸울 일도 허다하다. 여기에 배우 스태프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노력까지 필요하다. 현장에선 관객 응대도 해야 하니 ‘감정 소모’도 꽤 크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일반 직장인들이 하는 업무에 ‘플러스알파’가 더 붙는다고 봐야 한다. 업무량이 많아지면 그에 따른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더 계산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보통의 직장인들에 훨씬 못 미치는 대우를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불안정하다.


문예회관 소속이 아니라면, 초과 근무나 야근, 주말 당직 수당 같은 건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꿈, 열정, 자아실현 등 허울 좋은 명목하에 우리는 젊음을, 열정을 다 쏟아낸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실속은 하나도 없는.


정규직으로 입사하고도 수년간 “이번 달엔 월급이 제때 나오려나?” 이 생각을 늘 했다. 늦어지면 얼마나 늦어질까. 카드값 독촉 전화를 받기 전에 입금은 될까. 일상처럼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 구질구질한 걱정들을 꽤 오랜 시간 안고 살았다. 월급의 많고 적음은 처음부터 초월했다. 제날짜에 통장에 찍히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넘쳤다.


내 입으로 아무리 열악하고 힘들다고 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친구들이 별로 없는 듯했다. 어느 때는 구질구질하게 내 밑바닥을 다 까발릴 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무얼 위해서. 그러니 허울 좋은 개살구의 모습으로, 그리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친구들의 그런 말에는 내가 힘들게 일하는 것도, 어려운 업계 현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곳에서 분투하는 나에게 힘내라고 응원하기 위해 던지는 것일 뿐 실제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담겨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따금 내 앞에 작은 분노가 쌓여갔다. 나와 내 동료들이 이토록 열심히 살고 있는데, 24시간을 25시간, 26시간으로,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고 있는 우리인데, 언제쯤이면 현실적인 보상을 제대로 받으면서 살 수 있는 것인지. 뮤지컬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다는데, 팍팍한 우리의 삶은 왜 이리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인지... 


솔직히 이 업계를 동경하는 학생들에게 내 직업을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가 없다. 현실적인 부분 생각 안 하고 꿈꾸는 삶을 쫓았던 건 내 선택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의 몫. 어렵고 힘들어도 내가 좀 더 가치를 둔 삶이 있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설레고 가슴 벅찬 날들이 더 많았다. 


아쉽게도, 아니 부끄럽게도 내가 이곳에 발 담근 지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바닥에 '열정페이'가 존재한다. 꿈을 담보로, 강요 아닌 강요로. 그 시절을 무사히 버텨낸다면, 요즘 말로 '존버'한다면, 웃으면서 추억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도 중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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