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뮤지컬은 <빌리 엘리어트>다. 2007년 런던 여행에서 한국에 있는 동료가 해외 송금해 준 돈으로 예매해서 만날 수 있었던 바로 그 작품.
나는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처음으로 춤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이전까지는 무용 공연을 보고 감동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극 중에서 빌리가 무용수라는 꿈을 갖게 되고, 가족과의 갈등 가운데 성장해 가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들이 몸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춤의 매력에 눈뜨게 됐다.
그 이전에도 피지컬 퍼포먼스 제작에 계속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과 메시지를 깊게 표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래서 <빌리 엘리어트>는 내게 신선한 충격과 가슴 깊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더욱이 영화를 보기도 전이었고, 영어 공연인지라 100% 대사를 따라갈 수 없었음에도 너무도 강렬하고 짙게 내 마음에 파고들었다.
그게 여행에서 돌아와 퇴사했던 회사와도 다름없는 또 하나의 법인으로 다시 입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그렇게 나는 춤꾼들과 작품을 준비하며 바닥에 질질 끌리는 통 큰 바지를 입고 다니던 스트리트 댄서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각고의 노력 끝에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의 수준에 이를 수 있는지, 그들의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재미, 감동, 시의성이다. <빌리 엘리어트>에는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적절한 웃음의 포인트가 있다. 또 꿈과 가족의 사랑을 얘기하며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거기에 탄광촌 광부들의 파업 시기를 배경 삼아 사회적인 이슈도 놓치지 않는다.
예술 작품이 단지 개개인의 즐거움을 위해서뿐 아니라 시대상이 반영되어 우리 사회를 함께 돌아보게 하고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안겨줄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걸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와 같은 작품을 꼭 만들어 보리라는 꿈을 갖게 됐다.
그게 사업적으로 온라인 콘텐츠 프로듀싱에 주력하면서도 문화예술기획일을 놓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아직 ‘내 인생작’이라고 꼽을 만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직도 무대를 바라고, 그곳에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10여 년 현장에서 직접 겪은 경험들과 노하우는 예비 공연기획자들에게 나눠주고, 콘텐츠 제작과 관련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면서, 언젠가는 인생 무대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작품 개발에 나서는 지금이 즐겁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에 한동안은 정신을 못 차렸지만 말이다.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지는 않는 편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런던에 이어 시드니 여행 중에도 봤다. 국내에서도 모든 캐스트의 공연을 다 볼 정도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작품이다. 매번 가슴 벅찬 감동을 안고 돌아온다. 국내 무대에서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면, 전용 극장이 아니다 보니 빌리의 2층 방이 무대 아래가 아닌(전용 극장처럼 바닥에 구멍을 낼 수 없기에) 옆에서 들어온다는 거다.
다시 살아난 싸이월드에 들어갔더니 처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만난 날의 흔적이 잔뜩 있었다. 혼자였는데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참 많이도 남긴 걸 보며 그날 내가 얼마나 설레고 좋았었는지 다시 알게 됐다.
<빌리 엘리어트>를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이 작품을 꼭 추천한다. 그 특별한 감동의 시간을 한 번은 만끽하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누구도 절대 후회 안 할 거라고 아주아주 강력하게 추천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