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는 배낭여행객들의 천국이다. 2007년 외교통상부 초청으로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투어 공연을 했다. <응답하라 1994>의 배우들이 <꽃보다 청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라오스로 떠날 때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다.
이제 라오스는 청춘들의 대표적 여행지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가 공연하러 갔던 당시만 해도 라오스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낯선 나라였다. 다양한 액티비티가 가능한 곳이지만 그런 여유를 즐기기엔 우리의 일정이 너무도 팍팍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호텔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스텝들과 함께 공연장으로 향했다.
서울 전용관 사이즈에 비하면 비엔티안(라오스의 수도)의 극장은 너무 컸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극장 안에서 비둘기들이 마구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보이는 창문과 문은 모두 다 열어 둔 채 무대 셋업을 시작했다. 현지에서 투입된 크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사라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외교통상부 초청에 라오스 한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공연이었지만 은근히 극장 측의 갑질도 있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사항들에 잘 협조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뒷돈을 조금 쥐여주면 가능한 부분들이 있었다. 작업의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리허설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우리가 공연했던 라오스 국립 문화 극장은 약 2천 석 규모로 비엔티안 중심가에 자리했다. 관객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라오스는 문화 인프라가 열악하다. 또 특별한 문화행사가 별로 없다. 공연을 접할 일이 거의 없는 그들은 한국에서 춤추는 배우들이 공연하러 왔다니 매우 높은 관심을 보였다. 미쳐 극장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야외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거기에만 모인 사람들이 족히 천명이 넘어간 것으로 안다. 단 한 번의 특별공연이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온몸에 소름 돋는 경험을 했다. 기본적으로 특별한 대사가 없는 공연이지만 우리가 의도했던 코믹적인 요소와 재미에 얼마나 반응해 줄까 하는 우려를 왜 했던 것인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객석 암전과 함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토록 열렬한 반응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늘 평온하고 조용하기만 했던 거리, 마주치는 시민들의 모습도 수줍어만 보였는데 그런 열정이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지. 오프닝을 위해 막 뒤에 대기하던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몇몇 배우는 너무 감동해서 순간적으로 울컥했다고도 했다.
그들은 이미 마음을 열고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음껏 즐길 준비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이 무엇을 하건, 우리는 손뼉 치고 환호할 거야. 같이 즐기자. 이렇게 먼 곳까지 와줘서 고마워!” 이리 말하는 듯했다. 셋업을 진행하며 쌓였던 이런저런 불만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커튼콜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신나게 즐기며 행복해하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 이 맛에 공연하지! 문화 외교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가슴이 벅찼다.
땀이 많은 편인 나는 더운 동남아 여행은 꿈도 꾸지 않는다. 하지만 라오스는 한 번쯤 여행객으로 다시 가고 싶은 나라다. 길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 수줍음 가득한 미소,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한번 내 눈에 꼭 담고 싶다.
라오스에서 진행한 공연은 ‘익스트림 댄스 코미디’ 장르였다. 2007년, ‘한국 비보이 공연의 세계화’를 목표로 탄생했다. 사랑스러운 다섯 명의 죄수가 꿈과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현란한 춤과 코믹한 스토리, 그리고 가슴 뭉클한 연기에 담아냈다. 대사 없는 넌버벌 공연이라 전 세계 14개국 해외 투어를 통해 글로벌 콘텐츠로도 인정받았다. 탄탄한 구성과 밀도 있는 연기력 거기에 고급스러운 코미디까지 조화를 이룬다는 평과 함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가 있었다.
지난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영향으로 댄서들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그리고 현재 시즌2 격으로 <스트릿 맨 파이터>가 인기리에 방송 중에 있다. 우리나라 댄서들의 수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그 프로그램들의 큰 성공을 보며 오래전 함께 했던 우리 배우들이 많이 생각난다. 그들도 시대를 잘 타고났다면 보다 많은 대중의 관심 속에 더 큰 날갯짓으로 화려하게 비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그들이 갈고닦은 바탕 위에 지금의 댄서들이 주목받으며 사랑받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뿌듯함으로 후배들의 성공을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