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토록 Sep 18. 2022

어느 회식자리에서 무릎을 꿇다

청주 공연이 있던 날. 주말 2일 4회 공연은 익숙했다. 셋업 속도도 빨라져 하루 만에도 무대가 뚝딱 올라갔다. 물론 스태프들이 쉬는 시간을 많이 양보해야 하지만 대관료와 제작비(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가끔은 감수해야 했다. 첫날 공연도 순조롭게 진행됐고 이튿날 공연만 마무리 잘하면 될 일이었다. 배우 콜타임은 공연 시작 3시간 전. 일찍부터 배우들이 나와 무대 위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악!”


무슨 소리지? 몸을 풀고 있던 중국 배우가 갑자기 발을 접질린 모양이다. 통증을 호소하며, 걷기는커녕 일어서 있기도 힘든 상황. 아, 어떡하지? 지방 공연은 한 팀만 움직이기에 대체할 배우가 없었다. 문제는 서울에도 없었다는 거다. 해외와 전용관 공연이 동시 진행 중이었던 터라 중국 배우 단 한 명 남아 있었다. 문제는 다른 배역을 맡고 있었다는 것. 아… 망했다. 어떡해. 서울 우리 전용관 공연이라면 공연을 취소하고 환불이라도 해주겠다만 지방 공연은 초청을 받아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공연 계약금을 이미 다 받았다. 일정에 맞게 공연을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심각한 사태를 인지한 배우들이 모여들었다.

 

Thank God! 짬밥이 좀 있는 배우들이 나섰다. 오픈런으로 수년째 진행되다 보니 이제 자신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다른 배역의 동선까지 다 꾀는 지경. 몇몇 배우들이 서로 배역을 바꾸기로 했다. 대신 서울에 남아 있는 중국 배우가 바로 청주로 내려와야 한다고. 그는 원래 자신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한국 배우들이 다른 배역을 맡아 새로운 동선을 익힐 것이다. 배우들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남아 있는 중국 배우에게 서둘러 전화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기본적인 대화만 가능한 그에게 지금 바로 광화문으로 나와 택시를 타라고 했다. 그리고 청주 예술의 전당까지 가자고 하라고. 정 안 되겠으면 일단 택시를 타고 내게 전화를 걸어 기사님을 바꿔달라고 했다.


공연이 2시간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쫄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제야 투어 공연을 기획한 지방 기획사에 사정을 이야기했다. “배우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공연을 할 수가 없다. 서울에서 배우가 한 명 내려와야 한다. 어떻게든 공연은 올라가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공연 시작 시간을 아주 조금만 늦춰줄 수 있겠냐” 간곡하게 부탁했다. 부상당한 배우는 자신으로 인해 공연에 지장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자책했다. 배우들은 ‘두 명의 배우’가 새롭게 도전할 배역을 위해 동선을 익히며 서로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틈틈이 서울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국 배우에게 어디쯤 왔는지, 도착 예정시간은 언제가 될 것 같냐고, 또 기사님을 바꿔 제발 부탁이니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사정했다.


우리를 초청한 기획사는 공연이 못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점차 얼굴이 굳어지며 사태 수습을 위해 어찌해야 할지 몰라했다. 자칫하면 관객 모두에게 환불 조치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하면서.


하지만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공연 시작 20분 전에 서울에서 출발한 택시가 도착했다. 10여 년도 훨씬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중국 배우가 분장실 문을 밀고 뛰어 들어오던 순간의 슬로 모션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들어옴과 동시에 셔츠를 벗고, 주위에서 무대 의상을 챙겨주고 바로 분장 선생님이 붙어 초스피드로 얼굴에 최소한의 분장을 하고 오프닝과 함께 무대 위로 올랐던 그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건 정말 모험이었다. 한편으로는 위험했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내리 쉬지 않고 달리시도록 기사님을 독촉했다. 아무리 대사 없는 무언극에 몇몇 배우가 다른 배역의 동선을 거의 다 외우고 있었지만 단 몇 시간 만에 새로운 동선으로 연습을 진행하고 그걸 무대 위에 올린다는 건 아주 작은 실수로도 공연이 무너질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극장을 찾은 관객분들께 우리는 큰 즐거움을 안겼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배우의 부상 없이, 배역 교체 없이 원래 예정했던 모습이었다면 더 훌륭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불가피하게 닥친 상황에서 우리는 나름의 최선의 방법을 찾아 그에 맞게 움직였다.


문제는 모든 공연이 다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터졌다. 2일 4회 매진과 함께 공연은 잘 마쳤다. 우리를 초청한 기획사에서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회식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끝이 좋으면 좋은 거라고 낮에 잠깐의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잘 마무리되었으니 웃으면서 회포를 풀자는 자리였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술 한 잔이 들어가고 시간이 흐르며 취기가 조금 오르기 시작하자 초청사 대표는 마음 한구석에 담아뒀던 속내를 표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 대표자를 찾았다. 지방 투어의 총책임자는 나. 바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분 앞에 앉았다. 오늘의 사고 경위에 대해 내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공연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분명 우리 팀에서 발생한 문제로 위기를 초래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 했다.


어느 순간 내가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연유로 그런 자세로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분의 언성은 점차 높아졌고, 나는 팀을 대표해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내가 한 회사의 머리 희끗한 대표님의 호통 앞에서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그런 내 모습이 비굴해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몸을 쓰는 공연에서 예기치 못한 부상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그걸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고 호통치는 모습에 화가 났던 것일까. 한 남자 배우가 욱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왜 이 사람 탓이냐고. 결국에 공연 잘 올라갔으면 된 거 아니냐고. 그러면서 회식 자리가 소란스러워졌다.


그쪽 직원들은 대표님을 말리며 오늘 좀 취하셨다며 사과했다. 나는 젊은 혈기의 배우가 참지 못한 성질을 가라앉히도록 말렸다. 보통의 술자리에서 한 번쯤은 볼 법한 시비. 그 회식은 시끄러움 속에 그리 아름답지 못하게 마무리되었다. 그 배우는 내게 미안했나 보다. 동료의 실수에서 비롯된 팀의 위기를 책임자라는 이유로 혼자 욕받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을 느꼈나 보다. 하지만 난 생전 처음 본, 술 취한 어떤 이 앞에서 무릎 꿇는 게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책임자로서 그까짓 게 뭐라고. 그렇게 해서 초청사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비록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회식 자리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몸싸움이 일어나 얼굴 붉히며 끝났을지라도, 내게 자식 같은 우리 팀이, 나의 배우들이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보호해 주려고 나서 줬던 그 마음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가끔은 ‘이런 일까지 내가 해야 하나’싶게 너무도 사소한 부탁과 잡일에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입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듯 나를 위해주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면 나는 정말이지 너무도 힘이 났다. 화를 내며 나서 주었던 그 배우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놀랐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배우는 내게 평생 ‘까방권’을 얻었다. 이후에 어떤 “후진 모습”을 보여줄지라도 그를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모를 테지만.

이전 12화 브레이크를 밟을 새도 없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