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0대 중반. 아직 면허가 없다. 이건 내가 가진 콤플렉스 중 하나다. 이는 지방 투어를 가서 당한 교통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어린이날이었다. 대전의 한 극장에서 공연이 있었다. 공연 준비를 다 마친 후, 무대감독과 함께 근처의 대형 마트에 필요 물품을 사러 갔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시간적 여유도 충분했다. 장을 다 본 후, 100개들이 믹스 커피만 가슴에 안고 보조석에 앉았다. 도로에 나와서야 차가 꽉꽉 막히고 있다는 걸 알았다. 5분이면 갈 거리인데 차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공연 시간 못 맞추는 거 아냐?
“에이 설마요~”
사거리만 지나면 바로 극장이다. 코앞인데도 갈 수가 없다니 마음이 쫄려왔다. 그러다 결국 앞길이 훤히 뚫렸다. 우리는 유턴해서 극장 뒷문으로 들어가면 됐다. 우리 앞에 차가 한 대도 없어 무대감독은 속도를 내기 위해 힘껏 밟았다. 근데 웬걸, 정면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돌진해 왔다.
“어~ 어~ 어~” 쾅!!!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전석에 앉았던 무대 감독이 브레이크를 밟을 새 없이 상대방의 차가 우리의 차를 향해 달려오던 그때가. ‘아… 사람이 이렇게도 죽는구나…’ 그건 그냥 공포는 아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정신을 잃었다.
… …
엇? 안 죽었다!
안고 있던 락앤락 통에 머리를 박고 있던 나는 정신이 들자마자, 운전석의 무대감독을 살폈다.
“괜찮아…?”
“네……”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우리 차량 주변으로 몰려와 문을 두드렸다.
안고 있던 ‘100개 들이 커피믹스 대용량’ 사은품으로 받았던 락앤락 통의 윗부분이 조금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내 앞니 하나 반쪽이 사라졌다. 락앤락 모서리와 부딪힐 때의 충격에 앞니가 부러진 것이다. 그 통이 그리 튼튼한 줄 처음 알았다. 덕분에 내 가슴팍에 가해질 충격은 줄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다음 기억은 인근 병원 응급실이다. 나와 무대감독 둘 다, 어딘가 찢어지거나 크게 다치는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그저 응급실에 누워 있다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사람들이 울고 불고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너무 시끄러워 도저히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딱히 아픈 데가 없으니 무대 감독과 나는 그냥 퇴원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고 소식에 급하게 서울에서 직원들이 내려왔다. 오픈런 공연 한두 번 하는 게 아니었으니 무대감독과 제작 PD 없이도 공연은 잘 마무리됐다. 하지만 입원 당일 바로 퇴원했다는 우리에게 직원들이 나무라기 시작했다. 차량이 폐차되고 이가 부러지고 결코 작은 사고가 아닌데 그렇게 병원에서 일찍 나오면 어떡하냐고. 생각이 있는 거냐,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무서우니 검사를 제대로 받아야 한다, 충분히 쉬어야 하고 합의도 잘해야 한다….
불법 유턴. 상대 차량의 100% 과실. 사고를 낸 차량 소유주는 우리 공연을 예약했던 관객이었다. 사고 당시에 티켓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운명도 참 얄궂지.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한 가장은 혹시라도 공연 시간에 늦을까 싶어 순간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것도 자신이 예약한 공연의 스태프가 탄 차량을 향해 돌진해 버리는 실수. 아이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재밌는 공연 볼 생각에 많이 들떠 있었을 텐데 아마도 인생 최악의 어린이날로 남지 않았을까. 근데 얘들아, 이건 분명히 하자. ‘너희들 아빠 탓’이라는 걸.
병원 앰뷸런스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져 한 달을 입원했다. 무대감독은 공연 스케줄에 조금 더 빨리 퇴원했고, 난 한방병원에서 2주를 더 치료받았다. 입원해 있는 동안 진행 중이던 지방 투어 계약 건과 관련해 기획사 대표님들이 병원까지 찾아오셨다. 마스크 쓰고 얘기하는 것이 답답할 테니 잠시 벗고 얘기하라는 말에 낚여 앞니 반쪽이 날아간 영구의 모습으로 미팅을 진행했다. 마스크 벗고 첫마디를 내뱉는 순간 그분들이 어금니 물고 웃음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스크는 끝까지 벗지 말아야 했다.
출장 가서 당한 사고였고 한 달 반 동안 일을 못했지만 산재처리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뭘 바랄까. 월급이나 안 밀리면 되는 때였으니. 그 이후 나는 타고 있는 차가 조금만 속도를 내도 심장이 벌렁댔다. 막차가 끊겨 귀갓길에 잡아탄 택시가 조금만 속도를 내도, 손잡이를 꽉 붙잡고 얘기한다.
“기사님, 저 안 급해요. 좀 천천히 가 주세요”
“아휴, 걱정 마요. 내가 운전을 몇 년을 했는데. 나 베테랑이야” (껄껄껄)
압니다. 압니다요. 기사님 베테랑인 거 잘 알겠는데 제 심장이 요동을 칩니다요. 사고 이후 한동안 앞 좌석을 기피했다. 버스에 타고 있을 때 택시와 한 번 더 부딪히는 사고까지 더해지며 내 인생에 운전이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동력의 부재로 인한 불편함이 커진다. 면허는 오랜 시간 감히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숙제가 됐다. 또 아직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내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를 달리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진 않는다. 여전히 두렵고 많이 무서우니까.
이 트라우마를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운전은 꼭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의 목표는 ‘면허 따기’다. 소형 차량 한 대를 이미 접수했다. 필기시험부터 도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