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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로김쌤 Sep 18. 2021

시를 다시 끄적인다.

여담 - 어떤 끄적임 #4

시를 적는다. 아니 말 그대로 끄적인다. 십몇년만에 시라는 습작들을 적어내려가니 정말 내가 그런 글들을 썼었는지 아련한 기억만 남는다.


시를 쓰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어려서부터 동시라는 것이 좋았고 멋있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마도 그래서 어린 마음에 시인이 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시를 보고 시를 따라 했다. 사랑이 담긴 시 속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졌고 이별이 담긴 시 속에서는 슬픔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시인이란 마냥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시를 잘 쓰는지 못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문인지 산문 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의 난 그저 힘든 삶을 살았고, 시인은 그런 힘겨움을 노래로 만드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도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시인은 가난한 글쟁이란 소리가 싫어 회계 학도가 되었지만 실상 글쟁이가 아니어도 내 삶은 그리 부유하지 못하다. 정확하게 보자면 글쟁이들보다도 더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렇게 십여 년을 나는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어 수백수천 개의 글을 쓰는 글쟁이였지만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못난이가 되어있다.

미친 듯이 십수 년을 글을 쓰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십수 년을 글을 놓고 살았다. 시인이 아니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사치인 것인 양 나를 몰아붙였다.

어느 날에는 사람들에게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느 날에는 사람들에게 핸드폰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날에는 함박눈 속의 건설 현장에 있었고 또 어느 날에는 옷감을 만지며 바느질을 했다. 펜보다 도구가 더 손에 익어가는 하루하루. 시를 쓰는 시간은 사치였고 얻지 못하는 꿈이기도 했다.


난 왜 글쟁이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글을 적는 것뿐인데. 마음에서 내고 있는 소리를 적어 내려가는 사람일 뿐인데.

작가라는 타이틀이 욕심이 났었나 보다.  평생을 욕심부리지 못해 고생해온 사람이 작가라는 허울은 욕심내고 싶었나 보다.

십 대의 나는 가난한 외사랑에 울고 있었고, 그냥 그 사랑을 끄적였었다. 이십 대의 나는 아픈 사랑과 고독에 젖어있었고 그래서 그냥 고독을 슬퍼했었다.

돌이켜보니 그냥 그런 것뿐이었다.

글쟁이로 살고 싶은 욕심은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면 거짓말일 게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의 습작들을 더 이상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그건 그저 젊은 날의 몸부림이요, 그냥 나 자체였기에 여기저기 어설픔이 묻어있어도 퇴고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언문도 쓰고 산문도 쓰고. 누군가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글쟁이가 아닌 것은 아니니.

책 한 권 낼 수 없는 천박하고 수준 낮은 시 일지라도 적어야겠다. 언젠가 여유로운 삶 속에서 아름다운 시를 적고 싶다던 욕심도 버려야겠다.

나는 지금 아프고, 또 가난하다. 그냥 나의 지금 삶이 그런 것을 그대로 적어야겠다. 돌이켜보면 글을 쓰고 있던 십수 년 동안에도 그저 나의 모습을 되뇌며 펜을 들었었다. 지금 나의 삶을 다시 되뇌어 적지 않을 필요가 없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유명 시인의 시구처럼 나 역시 그렇지 않은가. 그냥 힘든 시기에 힘들다고 노래하는 것도 나이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시를 쓴다. 공부를 하지 않아서 연습을 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습작이 없어서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핑계는 대지 않으련다. 등단을 하지 못해서 출판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작가가 아니라는 핑계도 대지 않으련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그저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글쟁이이지 않은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노래이지 않은가.

모든 것이 거짓이고 모든 것이 슬픔인 인생 속에서도 그나마 지금의 나를 기억해주는 것이 글이지 않은가.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할 수 있는 것. 돈이 되지 않아도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지는 것.

프로든 아마추어든, 막일꾼이든 한복 쟁이든 상관없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시인지라 다시 시를 쓴다. 글솜씨가 없어서 아름답지 않아도, 공부를 하지 않아서 비유와 은유가 없어도.

그게 나이지 않은가. 그냥 나를 적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게 또 다른 위안이 된다면 시를 써야겠다. 누가 봐도 못난 시라 해도 적어야겠다.

한때는 나의 전부였던 것이기에.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써야겠다. 적어도 실력이 없어 등단은 못하지만 작가가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를 쓰지 못했다는 후회는 없도록.

나는 나의 노래를 끄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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