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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로김쌤 Jun 11. 2020

나는 여기서 무얼 적고 싶은 걸까

여담 - 어떤 끄적임 #1

초등학교 시절 아니 국민학교 시절 내가 가진 첫 번째 꿈은 시인이었다. 동시를 읽고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꿈이었고, 누군가는 똑똑한 과학자가 꿈이었으나, 내 첫 번째 꿈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동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자랑스레 말하진 못했지만, 누군가가 꿈을 물어보면 난 항상 시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시를 잘 알지 못해도, 종이 위에 풀어지는 습작들은 항상 나를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꿈은 시인이었다. 정호승 시인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읽으며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했고, 김재진 시인의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를 읽으며 우리 가족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저 혼자 이겨내야만 하는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 아버지의 사업에 어려움이 생겼다. IMF의 여파가 지방에는 늦게 들이닥치면서 생각지 못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졌다. 물론 그 전에도 풍족한 삶은 아니었으나 조금씩 다른 가족들의 삶처럼 웃음을 지어가며 살아갈 수 있게 나아지고 있었는데.. 가장의 어려움은 한 집안의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빚쟁이에 쫓겨 도망치듯 더 시골로 이사를 들어가고, 안 그래도 턱 없이 부족했던 용돈은 달라는 소리조차 꺼낼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연히 우리나라 직업 소득 순위를 보게 된 나는 시인이 꿈이라는 말 대신 회계사가 되고 싶다는 말로 둘러대고 있었다. 물론 회계사가 될 수는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는 문과를 선택하게 되고, 대학 역시 회계학과로 진학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숨겨진 내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저, 혼자만의 운율에 맞추어 짧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누구에게 한 자 보여주지 못하는 미련한 습작들에 매달렸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노트에 시를 적지 않는다. 좋은 시를 찾아서 읽지도 않는다. 나는 어른이 되어있었고, 현실에 젖어있었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휘둘리고 있었다. 시는 사치였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도 시간 낭비였다. 어떤 이에게는 삶이란 행복과 아름다움의 연속일지 모르겠으나, 어른이 된 나에게 삶이란 항상 일과의 전쟁터였고 돈과의 사투였다.


불과 몇 개월 전부터 심한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뛰어내릴 곳을 찾아 헤매 보기도 했다. 유서를 적으면서 흐느끼던 눈물이 종이 위에 번지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직도 돈은 나를 짓누르고 있고, 또 가끔씩 일어나는 주체할 수 없는 심장 떨림도 여전하다.


나는 여기서 무얼 적고 있는 것일까.


이제 와서 시인의 꿈을 이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글쟁이는 가난하다며 참 힘든 꿈을 생각하고 있다던 어른들의 말도 이제는 이해한다. 글을 끄적이는 것이 지금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음에도 난 왜 의미 없는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살기 위해서일 테지. 누구에게나 있는 인생의 희비 곡선 속에 지금의 난 슬픔과 힘겨움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에, 즐거움의 곡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흔적으로 남기고 싶어서일 테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쓰는 글을 읽으며 때로는 동질감을 느끼고, 때로는 부러움도 느끼며, 또 때로는 이질감도 느끼는 공간에서 나도 살고 싶다고 애써 외치는 것일 테지.


아마도 한동안은 우울한 글의 연속이 될 듯싶다. 어느 순간 즐거움의 곡선 위로 살며시 내 인생이 올라타게 된다면 내 글도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며.. 삶과 인생의 흔적을 담담하게 적어가려 한다. 누군가가 인정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어쩔 수 없겠지.


언젠가 쌓인 내 글을 내가 보았을 때, 이 때는 정말 힘들었었어.. 하는 회상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련다. 그게 내가 나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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