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게든 유난히 힘든 하루가 있다. 어떤 날은 일이 많아서, 어떤 날은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리고 어떤 날은 아무런 이유 없이 힘이 들기도 하다.
오늘은 일이 많은 날이었다. 처리해야 하는 일들도 많았고, 때때로 거짓을 이야기해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몸과 마음이 힘든 오늘이었다.
늘 있는 하루였다. 오전에 타로 강좌를 하고 오후에 또 한 번의 타로 강좌와 애기들 수학 수업, 그리고 다시 마지막 타로 강좌. 그저 늘상 매일 반복되는 하루 중의 하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왜 이리 힘들게 느껴졌던 것일까. 쉬는 시간이 없어서? 말을 많이 해서?
모르겠다. 이른 아침 일어나 아이를 등교시키고 공부방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공부방 밖으로 나가는일 없이 한 공간에서 어제와 같지만 또 다른 그런 날이었다.
이런 하루가 일상이다. 타로 교육생이 부쩍 늘어 일이 많아지긴했지만 이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힘겨움도 때가 있나 보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일한 만큼 번다는 소리가 싫다. 이보다 더 많이 열심히 해야 입에 겨우 풀칠을 할 수 있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공평한 세상이라면 항상 부지런한 일반인들은 언제나 성공한 삶을 살아야 맞는 것이겠지.
하지만 요즘처럼 불공평함이 사람의 머리 꼭대기까지 싫증을 내도록 만드는 시기도 없었다. 언제나의 넋두리처럼 나의 가난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지만 요즘처럼 힘겨움이 여러 가지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매일 기도를 하고, 능엄주를 외고, 108배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 정신적인 어려움은 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타로를 하면
타로를 제대로 공부하면 타로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성장 가능성과 힘겨움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쉬는 시간도 가지라고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힘들어도 달리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전해주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타로는 내게 어떤 의미이려나. 맹신의 도구도 아니고 지금은 가르침의 도구이자 밥벌이의 대상이다. 어려움이 끝에 이르렀는지 이제는 스스로가 교육생들에게 하지 말라 이야기했던 전화 타로 상담까지 알아보고 있다.
웃긴 일이다. 나는 내 교육생들에게 내담자가 뽑아야만 올바른 타로라고 교육하면서도 이기적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선택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이중적인 나의 모습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일까?
언제쯤 나아지려나?
삶의 시간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좋은 시기가 있다면 나쁜 시기도 있는 법. 그래서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는가.
삶의 사이클에서 단지 나는 저점에 있는 것뿐인 것일까?
저점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오랜 시간 힘이 들었다. 그저 힘겹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어려움의 시간들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인데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고통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나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면 정말 나에게도 보상이라는 것이 주어지기는 하려나?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 사랑의 찬가를 적어 내려 가던 젊은 시절의 그날이 오늘은 왠지 더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