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flow) 행복과 스톡(stock) 행복
최신 기술과 경제는 인간을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기술과 경제 발전의 바탕에는 어려운 일, 힘든 일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여가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주자는 목표가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에서 후손 세대의 핵심 과제는 넘쳐날 것으로 기대되는 여가와 휴식을 어떻게 의미 있게 활용하느냐 하는 물음에 달려 있다고 예언했다. 1964년에 〈라이프(Life)〉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이 실렸다.
“미국인들은 이제 차고 넘치는 휴식 앞에 서 있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가나출판사, 2016), 34쪽
몇십 년 전에는 여가 시간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우리는 시간을 쪼개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시간 관리법을 배우는 지경이 이르렀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동속도가 빨라졌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동속도가 빨라진 것만큼 이동시간이 줄어야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그만큼 더 멀리 이동하게 되었다. 결국, 이동시간은 줄지 않았다.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등 가전제품이 가사 노동 시간을 줄여줬을까? 아니, 미안하지만 더 늘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새롭게 생겨난 일들을 가리켜 숨어있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고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더 복잡해졌다.
하루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24시간이지만 과거와 비교해서 우리의 하루 일과는 너무 바쁘다.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그림자 노동에 사용하는 이유는 소비가 행복을 만들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행복을 줄 거라고 기대되는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근대사회의 행복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소비가 안겨주는 행복’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 시스템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주장에 따르면 빈곤은 ‘계속 구입할 수 없게 된 상태’다. 행복을 줄 거라고 기대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곧 빈곤이자 불행이다. 우리는 행복을 줄 거라고 기대하는 상품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한다.
야마다 마사히로·소데카와 요시유키 지음, 홍성민 옮김,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뜨인돌, 2011), 22쪽
거품경제 시대에는 더 오랫동안 일해서 더 많은 소득으로 더 많이 소비하면 행복을 얻는다는 공식이 통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가정경제의 가처분소득이 거의 증가하지 않는 성장이 멈춘 시대에는 소비하면 행복을 얻는다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느끼는 짜릿함도 언젠가는 질린다.
경제학에 심리학적인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행복을 플로(flow) 행복과 스톡(stock) 행복으로 구분했다. 플로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행복이다.
복권에 당첨된 순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경기에서 1등 한 순간 느끼는 행복,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느끼는 짜릿함은 플로 행복이다. 스톡 행복은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느끼는 행복이다. 플로 행복은 물질적, 금전적으로 풍요로울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행복이고 스톡 행복은 행복한 순간이 많을수록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스톡 행복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가는 행복과 삶의 만족감에 큰 영향을 준다. 은퇴한 후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해보고 싶은 것이 여행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을 느끼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가나출판사, 2016), 34쪽
야마다 마사히로·소데카와 요시유키 지음, 홍성민 옮김,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뜨인돌, 2011), 22쪽
정경수 지음,《휴식, 노는 게 아니라 쉬는 것이다》, (큰그림, 2017), 24~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