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은 환경보다 마음의 여유와 더 관련이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 저는 할 일을 미뤄두고 걷습니다.
미술관, 박물관, 전시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걸으면서 이것저것 둘러보면, 마음은 가벼워지고 머릿속엔 무언가가 잔뜩 채워진 느낌이 납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미뤄둔 일을 시작하면 술술 풀립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공상이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자들은 하나의 생각에 몰두하다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 머릿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는 ‘마인드 원더링(Mind-Wandering)’의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을 쓴 예술가 오스틴 클레온은 “창의적인 인간에게는 그냥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최고의 아이디어 중 몇몇은 내가 지루해할 때 나타난다.”라고 했다.
마인드 원더링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은 그냥 쉬는 시간과 다르다. 그냥 쉬는 동안에는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에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생각으로 가득할 때, 영화를 보면 새로운 자극을 받아서 불현듯 해답이 떠오른다. 갑자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종로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지인은 직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창경궁을 찾는다. 직장인이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휴게실에서 동료와 잠깐 동안 차를 마실 때,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도 브리핑이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전달하는 것 외에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대강 설명하는 것도 일종의 브리핑이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나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골몰히 생각하던 중에 주변 사람에게 대강의 내용을 전달한다. 그러는 중에 새로운 발상을 하고 이렇게 말한다.
“아차!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사무실 주변을 걷는다. 바람을 쐬고 햇볕도 받으면서 동네 한 바퀴 돌듯 걷는다. 그러면 머리가 맑아진다.
특정한 문제에 몰두하다가 머리가 아프면 잠시 쉬거나 산책을 한다. 더 이상 생각의 진전이 없으면 산소가 부족한 회의실, 사무실에서 나와야 한다.
바깥으로 나와서 나무가 우거진 공원(산소가 많은 곳)에서 산책을 하면서 문제에서 한발 물러선다. 시야를 넓혀서 문제를 보면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외비가 아니라면, 골치 아픈 문제를 직장 동료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또는 문제를 잊기 위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영화를 보다가 뜻밖의 상황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수학자 김용운 교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을 통계로 정리한 결과, 조용히 쉬고 있을 때, 산책할 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목욕할 때, 기차를 타고 있을 때, 화장실에 있을 때 순서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아이디어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나온다.
심리학자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장소와 시간은 다르다. 차를 운전하다가, 운동을 하다가, 먼 산을 바라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순간은 모두 마음이 여유로운 상태다. 때문에 물리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이디어는 물리적인 환경보다 마음의 여유와 더 관련이 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는 공상에 빠져서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몰두해 있는 상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같은 개념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롬 싱어는 1960년대에 긴장이 완화된 상태를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호기심, 의사 결정, 고도의 연상 능력과 구체적인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공상’이라고 했다. 제롬 싱어는 주제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가치 있는 순간이 찾아오며, 바로 이 순간에 뇌는 문제의 해결책,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다고 했다.
이리스 되링·베티나 미텔슈트라스 지음, 김현정 옮김, 《발상》, (을유문화사, 2018), 106쪽
달리는 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보를 많이 수집하고 검토했다면 머리를 쉬게 놔둬야 한다. 그러면 정보는 머릿속에서 가공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배치되고 기존의 지식과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전에는 없었던 생각이 탄생한다.
출처
참고문헌
이리스 되링·베티나 미텔슈트라스 지음, 김현정 옮김, 《발상》, (을유문화사, 2018), 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