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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전달자 정경수 Feb 18. 2020

어림짐작으로 '될 것' 같으면 '시도해 보자'

그것이 기획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모래알, 한 줌의 흙이 모여서 산이 되고 물 한 방울, 한 줄기, 실개천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단어가 모여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서 고전이 탄생한다.

그렇다면 기획은 어떻게 시작될까? 

기억(머릿속에 축적된 지식)이 정보를 만나면서 생각이 시작되고 아이디어가 나온다. 생각을 깊게 해서 아이디어가 나올 때도 있고, 정말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에 떠오를 때도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금으로 만든 왕관에 불순물이 섞였는지 알아보라는 왕의 지시를 받고 고민했다. 그는 목욕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순금과 불순물이 섞인 금을 각각 물에 넣어서 넘치는 물의 양으로 불순물이 섞인 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외쳤다.

“유레카!”

너무 진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유레카는 그리스어로 ‘알았다(eureka) ’라는 뜻으로 기가 막힌 생각을 했을 때 외치는 감탄사다.

유레카와 어원이 같은 말로 ‘휴리스틱(heuristic) ’이 있다. 휴리스틱은 우리말로 해석하면 ‘어림짐작’이다. 휴리스틱은 자기가 가진 지식에 기초해서 적절한 답을 찾는 방법이다. 시간, 정보가 부족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이 들면, 무리가 없는 수준에서 '시도'하자.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완벽한 아이디어는 없다.
기획자라면, 기획자가 아니라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그게 잘 될까? 성공할까? 생각대로 될까?라는 물음표에 대한 해답은 판단을 나중에 찾기로 하고 
어림짐작으로 '될 것' 같은 걸 시작해보자.




휴리스틱이 '대충 어림잡아 생각하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기획자에게 이런 생각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상품 기획에 전적으로 휴리스틱을 사용하는 곳이 아이폰을 만든 ‘애플’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상품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사용자의 의견을 구하는 리서치 과정을 생략한다. 사용자의 의견을 수집하고 그에 기초해서 상품을 기획했다면 애플의 아이폰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MP3, 인터넷 등은 기존에 있던 상품과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만약 리서치했다면 여러 가지 기기가 가진 기능을 하나의 기기에 담는 것을 사용자들이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사용자는 자기가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플은 전통적으로 기획 단계에서 리서치를 하거나 모든 변수와 조건을 검토하지 않는다. 리서치를 한다고 모든 사용자의 생각을 읽을 수도 없고 모든 변수와 조건을 검토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휴리스틱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만족할만한 수 준의 해답을 찾는 것이다.


애플은 아이팟을 개발할 당시 MP3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음악을 듣는 방식, 기존 제품에서 느끼는 불만을 관찰하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음반 제작사마다 유통경로가 달라서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로드하려면 여러 사이트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사용자의 불만이었다. 애플은 음악을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레코드사, 저작권 단체 등과 협의하여 사용자가 음반 제작사와 유통사에 관계없이 음악을 다운로드하는 서비스 아이튠즈를 만들었다. 애플은 아이튠즈를 기획하면서 음악 유통 과정에 있는 기업과 단체를 이렇게 설득했다.
“특정한 레코드사와 계약하지 않아서 모든 기업에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오프라인 매장에 신곡을 프로모션 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음악을 다운로드하는 고객에게 직접 마케팅할 수 있다.”
애플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리서치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품과 서비스가 사용자를 만족하게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 가능한 이유’와 ‘ 해야 할 이유’를 무수히 많이 생각했다.

하야시 노부유키 지음, 정지은 옮김, 《애플의 법칙》, (살림Biz, 2008), 178쪽


초보 기획자는 뭘 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몰라서, 한 마디로 무모해서, 대충 이러면 되겠다 싶은 방법을 시도해서 성공한다.


기획자는 아이디어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기 기획을 평가한다. 시장의 크기와 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 홍보비용, 유통 경로 등의 항목에서 가능성에 따라서 점수를 매기고 평가한다. 여기서 기획자가 평가한 결과와 고객이 평가한 결과는 대부분 다르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고객의 평가를 우선시한다. 고객의 평가에 따라 기획하고 방향을 설정하면 평범한 아이디어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기획자보다 기획 분야에서 경험이 없는 초보 기획자가 낸 아이디어가 크게 히트할 때가 있다. 경험이 부족한 기획자가 성공을 거두고 단 하나의 아이디어로 스타가 된다. 영화와 드라마처럼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런 사례가 종종 나온다.


초보 기획자는 뭘 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몰라서, 한 마디로 무모해서, 대충 이러면 되겠다 싶은 방법을 시도한다. 실패,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래도 어쨌든 '되는 방법'을 찾아서 성공한다. 반면, 닳고 닳은 기획자는 자기 아이디어를 자체적으로, 객관적으로, 통계적으로, 과거 지향적으로 검열한다. 잘 알아서, 무엇이 안 되고, 현실적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잘 안다. 너무 잘 알아서 '되는 방법'을 찾지 않고 그냥 접는다.


아르키메데스도 물이 넘치는 걸 보고 대충 이렇게 하면 왕관에 불순물이 섞였는지 알아낼 수 있겠다 싶어서 유레카를 외쳤을 것이다. 만약,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생각해낸 방법으로 불순물이 섞인 왕관을 찾는 데 실패했다면 그는 또 다른 방법을 어림짐작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기획한 대로 했는데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어림짐작으로 '이러면 될 것 같다' 싶으면 시도해보기 바란다.

아이디어를 자체적으로 검열하면서 안 되는 이유만 찾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출처

정경수 지음, 《아이디어 기획서 최소원칙》, (큰그림, 2019), 55~57쪽

참고문헌

하야시 노부유키 지음, 정지은 옮김, 《애플의 법칙》, (살림Biz, 2008),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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